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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친의 자서전을 연재하며

by 유천

선친이 가신 지 어느 덧 십 수년이 훌쩍 지났다. 평소 생활 속 감정을 글로 남기기를 즐겨하셨던 선친은 말년에 자서전을 쓰셨는데, 초고를 완성하여 내게 정리를 부탁하셨을 때 나는 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이라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선친의 글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선친이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적빈한 환경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책을 읽어나간 선친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이유로 한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기에 당신의 글은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선친이 원고를 주시면 당신의 뜻을 짐작하여 앞뒤가 맞는 문장으로 정돈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선친의 글을 정리하는 데 있어 또다른 어려움은 당신의 악필이었다. 선친의 글씨는 다른 사람이 알아보기 어려울만큼 흘려쓴 글씨라 마치 한자의 초서체 같은 느낌이었다. 학교에는 다니지 못했지만 한문과 한자는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점이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짐작하기도 하였다.


절약이 몸에 밴 당신의 습관에 따라 누런 이면지 수백 장에 기록된 선친의 원고는 공부하던 짬짬이 정리하기에는 벅찬 분량이었다. 그리하여 일부 정리한 후 차일피일 미뤄두고 있었는데, 그 사이 선친은 갑자기 발견된 암으로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게다가 선친이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우리집 모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선친의 원고를 분실하고 말았다. 장례 후 경황이 없어 선친의 많은 책들을 정리할 엄두를 못내자 선친의 지인들과 제자들이 정리를 도와주었는데, 누런 갱지에 흘려쓰신 종이 뭉치를 아마 이면지인 줄 알고 버렸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선친께 불효한 마음이었다.


선친의 원고는 그렇게 영영 사라진 줄 알았으나......


작년에 이사한 후 낡은 서류와 책을 내어놓던 차에 빛바랜 바인더에 끼워진 선친의 원고를 발견했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어 어둑어둑한 저녁,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 앞에서 플라스틱 바인더와 종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아무래도 낯익은 글씨가 눈에 띄어 살펴보니, 바로 그토록 찾던 선친의 원고였다. 그러면 그렇지! 내가 버렸을 리는 없는데! 혹시나 잃어버릴까 하여 튼튼한 바인더에 끼워두고서는 선친의 입원과 뒤이은 장례로 경황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선친은 생전에 당신의 삶 중에 몇몇 에피소드를 들려주시기는 했으나 당신의 이야기만으로는 당신의 삶을 온전히 알기는 어려웠다. 선친의 원고를 읽으니 내가 몰랐던 당신의 모습이 많았고, 특히 당신이 겪으신 고생이 짐작보다 훨씬 커서 마음이 많이 아파 읽다가 중간 중간 쉬는 일이 많았다.


선친의 자서전은 개인의 기록이면서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격동기를 온몸으로 견디며 그 와중에서도 나름대로 신념을 지키고 삶을 향상시키려 했던 민초의 삶을 보여주는 미시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에 선친의 자서전 중 공개해도 좋을 만한 부분을 발췌하여 여기에 싣는다. 공인이나 역사적 기록에 남아 있는 인물의 이름은 그대로 기록하되 가족이나 지인의 이름은 가명으로 바꾸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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