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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선친의 자서전 중에서

by 유천

우리 형제 모두가 누님을 좋아했다. 누님은 나보다 여덟 살이 많았다. 마당 앞에 큰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나는 그 대추나무에 올라 누님이 물 긷고 방아 찧어 나르는 모습을 보며 곧잘 소리를 지르고 웃고 노래를 불렀다. 내 눈에는 누님이 제일 예뻤다. 어디 가든지 따라가려 했는데 그러면 누님은 조용히 나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내가 갈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하셨다.


형님 두 분은 학교에 가고 동생은 철없이 놀고 누님은 부엌일, 길쌈 등 살림을 하시고, 나는 아침마다 아버지께 천자문을 하루 넉 자씩 배우기 시작했다. 열심히 외운 뒤 헌 신문지에 글을 연습하는 날이면 아버지가 잘 한다, 웃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 칭찬의 전부였다.


나는 중간이라 음식도 의복도 항상 중간을 받았다. 형님들은 학교에 간다고 좀 더 좋은 것을 주고, 동생은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았으나 나는 언제나 입던 옷, 기운 옷이었다. 명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나를 이웃집 아주머니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느니 언덕 밑에서 주워 온 아이라고 놀려댔고, 화가 난 나는 이십 리 넘는 육촌 누님 댁으로 달아나 집안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한약을 지어 오셨다. 어머니와 다투시기에 잠이 깨어 내용을 들으니 송아지를 팔아서 한약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여보, 그 애 얼마 안 있으면 제 집에 갈 터인데 지금 너무 약하잖소.”

그 말씀엔 어머니도 잠잠하시고 속상해하시는 것만 보였다.

“그리고 그 애 일 좀 그만 시켜요.”

나는 근심에 싸였다. 누님이 어디로 가시나.


이튿날 부엌에서 밥 짓는 누님께 물었다.

“누님 집이 어디야?”

“야가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니, 누님 집이 어디냐고? 언제 가나?”

그제야 누님은 정색하셨다.

“누나는 안 가. 여기가 우리 집이지.”

그리고는 내 두 뺨을 꼭 싸안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지으며 치마꼬리를 눈언저리로 가져갔다.

“누나, 못 가. 가지 마. 나도 갈 거야.”

옆에 있던 여섯 살 막내가 덩달아 매달리자 누님은 막내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얼마 지나 가을 추수가 끝났고 적으나마 우리 집 방구석에도 곡식이 쌓였다. 논 추수는 없고 남의 밭에서 지은 조, 수수, 콩, 목화, 배추, 무, 고추 정도가 생겼다. 대추나무에서 대추도 좀 따서 지붕에 말렸다. 나는 벼를 수확하는 집이 부럽고 흰 이밥이 그리웠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날 누님이 옷을 갈아 입으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새옷을 입으시고 길을 나섰다. 나는 동생과 같이 매달렸다.

“어머니, 아버지, 누님, 어디 가요? 나도 가요.”

형님들은 학교에 가 있었다. 누님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우는 나와 동생을 안고 울며 말했다.

“영락아, 태락아, 누나는 갔다가 봄에 다시 오마.”


누님이 시집가는 집은 안동군 도산면에 있었다. 청송에서 도산 가는 길은 걸어서 이틀길이라 중간에 안동 큰댁에서 초례를 치르고 그 이튿날 시집으로 가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딸 하나 둔 것 내 집에서 잔치도 못하고 큰집에서 혼례를 치르는 것이 속상하여 가는 길 내내 아버지와 다투셨다고 한다.


부모님과 누님이 그렇게 떠나고 난 후 이웃에 사시는 친척 누님이 오셔서 밥을 지어주고 우리를 돌보아주었다. 밤에는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함께 주무셔서 무섭지는 않았지만, 나는 누님이 왜 옷을 갈아입고 갔는지 알 수가 없어 아주머니께 자꾸 물었다.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누님이 시집간다고 했는데 나는 시집이 무엇인지 몰라 또 물었다. 시집이 뭐야?


누님이 가신 후 며칠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추나무에 올라 세 분이 걸어가신 골짜기를 보며 외치고는 했다.


어매— 아배-- 누님-- 어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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