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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선친의 자서전 중에서

by 유천

누님을 시집보내고 돌아오신 후 아버지 어머니 사이에 밤마다 다툼이 잦아졌다. 하루는 두 분이 심히 다투시더니 아버지께서 방망이로 쌀독을 깨뜨리는 일이 벌어졌다. 나는 기겁을 했다.

동짓달치고는 따스한 날이 대엿새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동생과 함께 집 앞 언덕에서 가을냉이를 캐며 놀고 있었다. 동생이 기침을 하기에 수건을 씌워 양지쪽에 앉히고 나는 다시 냉이를 캐다가 일어서 보니 아버지께서 갓을 쓰고 두루마기 차림으로 조그마한 봇짐을 지고 쑥골로 향하시는 것이 보였다.

“아배- 어디 가시는기요?”

“어- 춥다. 집에 가거라. 난 큰댁에 다녀오마.”

나도 간다, 하고 뛰어가니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태락이 데리고 집에 가라, 하시고는 가버리셨다.


집에 오니 어머니는 방성대곡을 하고 계셨다. 어매- 어매- 불러도 대답을 안 하시고 큰소리로, 아이고 내 팔자야 하시면서 방바닥을 치시는 것이 무서웠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남의 밭 소작만으로는 도저히 살림을 꾸려갈 수 없던 터에 날마다 어머니가 투정을 하시니 아버지는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떠나신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이 집에 와서 이십 년 간 고생만 했다고 푸념하시며, 우리 형제의 간절한 호소도 들은 체 만 체하셨다.


한 달 가량 지나 설이 다가왔다. 이웃들은 새옷 장만, 음식 준비, 집안 대청소, 다례 준비 등 설 준비에 바빴고, 아이들은 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금융조합원과 몇몇 사람이 우리집에 오더니 솥과 쌀독과 문설주에 빨간딱지를 붙였다. 나는 이게 무엇인가 하고 신기해하며 보는데, 어머니는 딱지를 떼어버리고 우셨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연대보증을 섰는데 돈 빌린 사람이 만주로 도주하여 연대보증한 사람들의 재산이 압류당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은 딱지를 붙이기는 했지만 솥과 쌀독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합쳐 봐야 십 원어치도 안 되니 조합장이 그 집은 그냥 두라고 했다 한다. 그 정도로 빈한한 살림이었다.

그해 겨울을 겨우 지내고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양지쪽에 매화가 움틀 무렵 시집 간 누님이 자형과 함께 왔다. 첫 근친(覲親)이다.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니 누님과 자형이 큰 보따리 두 개를 갖고 왔는데, 그 안에는 시댁에서 보낸 정성 떡과 고기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동네에 돌리기 위해 떡과 고기를 조금씩 나누었는데 그렇게 나누니 우리가 먹을 것은 십분지일만 남았다. 나는 속으로 불만이었다. 왜 우리는 안 먹고 동네 다 주는가.

어머니는 사위를 무표정하게 대했으나, 자형은 장모요, 장모요 하고 제법 살갑게 굴었고, 누님은 아버지가 안 계신 것을 알고 울기만 했다. 자형은 삼일 만에 가시고 누님은 한 달 가량 머물렀다.

누님이 오신 지 며칠 후 강원도 영월의 어느 광산에서 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왔다. 누님은 흥분해서 식사도 안 하시고, 큰형님과 둘째 형님과 어머니는 울기만 하셨다. 이튿날 어머니는 이웃에게 돈을 빌려 큰형님과 함께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셨다. 그 동안 누님이 우리 형제를 돌보기로 했다.


지루하게 기다리기를 열흘, 어머니와 형님이 새까만 얼굴로 다리를 절며 기진맥진하여 돌아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도착하기 사흘 전에 함경도로 가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낙담했다.

누님이 근친 온 지 한 달이 채 못 되어 자형이 누님을 데리러 왔다. 통례로는 일 년간은 있을 수 있으나 양식도 모자랐고 자형이 데리러 오니 누님은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누님은 자형을 따라 울며 다시 시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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