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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r 18. 2021

재봉틀

선친의 자서전 중에서

*이하는 원고 내용이 치밀하지 않아 선친 생전에 들려주신 이야기로 보충하여 3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인명은 가명입니다.   

  

남편이 부대로 출근한 뒤 인숙은 오늘도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재봉틀 한쪽에는 수선할 군복을 담은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급히 수선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군복이 따로 놓여 있었다. 명찰에 이름을 새기는 일은 재미도 있고 값도 더 받았기에 반가웠으나 오늘은 명찰 건은 없었다.      


인숙은 군복 상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재단 가위로 수선할 부위를 좍좍 뜯고 솔기를 다듬은 뒤 재봉틀 바늘에 실을 꿰었다. 페달을 밟자 바퀴가 돌아가며 바늘이 위아래로 왕복하기 시작했다. 돌-돌-돌-. 오늘의 일과가 시작된 것이다.     


빠듯한 남편의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양장학원에서 기본적인 수선법을 배웠기에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재봉틀을 장만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재봉틀이 귀했던 시절, 아직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없고 일제나 미제를 구해야 했는데 인숙의 살림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비쌌다.      


돈을 주고 재봉틀을 빌려 수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남의 물건은 아무래도 조심스럽고 또 주인의 요청이 있으면 일하다가 돌려주어야 했으니 안정적으로 일감을 맡기가 어려웠다. 양장학원에서 만졌던 재봉틀이 인숙의 눈에 선했지만 몇 천 환의 돈을 선뜻 융통해줄 사람은 없었다.      


인숙은 고심하다가 친정오라버니에게 어렵사리 부탁을 했다. 인숙의 결혼식 때 군대에 있어 참석하지 못한 인환은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 인숙을 각별히 여겼다. 인숙이 요청하자 인환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삼천 환을 보내왔다. 오라버니에 대한 고마움이 새삼 인숙의 마음에 사무쳤다. 이 빚은 꼭 갚을 날이 있으리라.      


인숙은 튼튼하기로 소문난 일제 재봉틀 주키(JUKI)를 구입했다. 재봉틀을 구입한 날 인숙의 마음은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 이제 이것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아가 남편의 학비를 댈 수 있으리라는 꿈에 부풀었다. 학사모를 쓴 영락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영락은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비친 적은 있지만 더 이상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럴 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숙은 영락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있었다. 인숙 자신도 국민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지만 여자가 무슨 공부냐며 반대한 아버지로 인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한(恨)이 아직도 마음 한 구석 깊이 남아 있었다. 자신이 하지 못한 공부를 남편은 꼭 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직 남편에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재봉틀을 구입한 것은 그 계획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군복 수선을 해보겠다는 인숙의 말에 영락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양장 기술을 활용하여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여자들을 상대로 일할 것을 예상했지, 젊은 새댁 혼자 있는 집에 군인들이 드나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미군들이 부녀자를 희롱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어도 해당 미군이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조금 더 시끄러워지면 다른 곳으로 보내면 그만이었다. 설사 불미스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군인들이 드나들면 어떤 소문이 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인숙은 이런 영락의 마음을 알아챈 듯 낮에는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같이 바느질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제야 영락의 얼굴에 걱정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나 때문에 당신이 고생이구려.’ 영락은 말없이 인숙의 손을 잡았다.     


돌-돌-돌---.  윗도리 수선 하나가 끝났다. 한국 군인이 입기 위해 미군 군복을 줄인 것이었다.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에게 미군 군복은 너무 컸기에 대부분 수선을 해야만 입을 수 있었다. 미군들은 물자가 풍족해서인지 옷을 수선해 입는 경우는 거의 없고 조금 해지면 버리고 새 군복을 입었다. 그런 군복을 가져와 수선하여 자기가 입거나 내다 파는 사람도 있었다.   


동네에는 군복 수선을 하는 집이 몇 집 있었지만 인숙의 솜씨가 소문나자 찾아오는 군인이 점차 늘어났다. 덩치 큰 미군이 들어오면 작은 방이 꽉 찬 것 같았다.  인숙은 돈을 버는 재미에 밤낮으로 신나게 재봉틀을 밟았다.      


좍-좍-, 돌-돌-돌, 좍-좍-, 돌-돌-돌-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재봉틀을 밟고, 일감이 많을 때는 남편이 먼저 잠든 뒤에도 희미한 백열등 아래 또 밟고 또 밟았다. 눈이 침침하고 어깨가 뻐근하기도 했지만 꿈에 부푼 젊은 새댁은 힘든 줄 몰랐다.      


그리고 인숙은 또 몰랐다. 잠든 줄 알았던 영락이 사실은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재봉틀 바늘이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는 것을...     


몇 해 후 인숙은 자신의 결심대로 군복 수선일을 계속하며 영락을 채근하여 대학에 보냈다.      


영락은 노년에 당시를 회상하며 그때의 심경을 글로 남겼다.          


재봉틀      


이십 삼 세 시골 주부

낯선 시골 전쟁터 위에

어리둥절 겁먹은 셋방살이

전쟁의 포연은 멎었으나

아직 탄피조차 정리 안 된 시기

늦바람 난 남편은 공부하러 서울 가고

독수공방 외로움과 두려움을 너와 함께 이겨냈다.     


아줌마 호칭은 아직 설은 나이

좌-악 좌-악

뜯고 꿰매고 

밤새 밟은 보람없이 다시 해야 할 때는 한숨도 쉬었다.     


젊은 날 한 밤중에

자다가 깨어 보면

돌-돌-돌-

재봉틀 밟는 아내의 모습

‘여보, 미안하오!’      


주끼 미싱

너는 우리 집 재산목록 1호

간혹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남편 학업 성취만 일구월심

수십 일 만에 잠깐 내려와

“여보-” 

한 번 부르면 반가웠지만

떠날 때는 학비 염려, 여비 염려

네게만 일방통행 하소연했다.

그래도 명랑한 웃음은 끊이지 않았지.     


경황없이 성례 치른 두 사람

초례청이 얼굴을 처음 본 곳이었다.

초야를 치른 후에야 피차의 과거를 더듬고

서로 떨어져 이삼 년

싱거운 신혼, 

멋도 맛도 없는 연애였다.

그래서 남편보다 더 쓰다듬은 재봉틀

너는 내 정붙이였구나.     


강산이 네 번 변하고

인생살이는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넓어

네가 내 손에 잡힌 나이도 잊혀진 듯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빈집처럼

너는 짝 잃은 외톨이 신세였다.

이 곳 저 곳 옮길 때마다

사람들은 버리라, 남 주라 했지만

내 눈과 내 손은 너를 잊을 수 없네.     


“여보, 재봉틀 몸체 맞춰 놓았소.”

순간 청소하던 손이 멎고

피곤하던 얼굴에 생기가 반짝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집안 정리 때 실수로 몸체를 잃고 머리만 남은 재봉틀

찾아야지, 사와야지 벼르기 수 개월

이제 골동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누가 그걸 만들겠는가.     


아는 이의 도움을 받아

십여 개월 만에 옛모습 갖춰놓고

피곤을 모르고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실패꽂이 다시 꺼내 맞춰 놓고 안방에 들여 놓았다.     

“당신 꽤 기쁜가 보오.”

“그럼요. 이게 내 친구요, 오락인걸요.”     


쓰레기통에 이미 수십 번 갈 것을

옛정 잊지 못한 아내 가슴에는

새것보다 반가운 친구인 듯.

이제는 “이 옷 좀 기워 주소”하는 이 없건만

아내는 너와 무언의 대화를 계속 나누려 한다.     


재봉틀아, 너는 좋은 주인을 만났구나.

지금 네 주인이 이 세상 사는 동안

너는 재산목록 1호를 차지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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