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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r 22. 2021

톱밥 같은 글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늘 더디 오는 법이다. 막차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만큼 간절히 기다리기 때문이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어서 가서 고단한 몸과 마음을 쉬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간절함을 잠시 달래주는 것이 톱밥 난로다. 대합실 전체를 데우기에는 온기가 턱없이 약하고, 그 온기마저도 수시로 톱밥을 한 움큼씩 집어넣어야 겨우 유지되는 난로이지만, 퍼렇게 언 손을 그 불 앞에 펴고 있노라면 얼었던 몸도 마음도 어느새 조금씩 풀어진다.    

  

그렇게 말없이 난로 주위에 앉거나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쩐지 닮아 있다. 고단한 삶에 지친 표정들.     


산다는 것이 때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초라한 모습으로 막차에 오르는 귀향과 같다. 굴비 한 두름 또는 사과 한 광주리. 그 마저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민망함을 대포 한 잔으로 감추고 막차를 기다린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언제 다다를지 기약 없이 목적지는 아득한데 몸은 이미 천근만근 무겁다.     


굴비 한 두름, 사과 한 광주리, 대포 한 잔에 담긴 삶의 무게는 누구도 대신 져줄 수 없지만 각자 짐을 지고 가는 도중 쉬는 대합실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동병상련의 정이 생겨난다. 당신도 나처럼 힘들게 걷고 있구려.      


그렇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난롯불을 쬐다 보면 가슴 속에 쌓인 아픔과 서러움도 조금씩 누그러진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듯 창밖에는 눈이 세상을 덮어간다. 잘난 나무도 못난 나무도 눈 덮인 설원에서는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물론 그 위로가 한없이 이어질 수는 없다. 막차가 오면 고단한 몸을 일으켜 각자의 길을 다시 떠나야 한다. 그러다가 기차에서 내린 뒤 다시금 추운 벌판에 나서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톱밥 난로가 준 온기로 한동안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공간이 때로는 간이역 대합실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곳에 오고가는 말들 하나 하나가 주는 온기는 그리 대단치 않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온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변변치 않은 글이나마 올릴 때면 누군가에게 톱밥 한 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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