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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Apr 04. 2021

산 지식과 죽은 지식: 영화 <자산어보> 단상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 서문에 기초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친 창작이지만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식인은 현실에 파편화된 앎과 정보를 모으고, 거기서 이치를 발견하고 정리하여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체계가 현실과 부합하는지, 세상을 이롭게 하는지 늘 살펴볼 책임이 있다.      


그러다가 시대가 달라져 그 지식이 현실을 제대로 밝혀주지 못하고 이롭게 하지 못하면, 낡은 부분은 버리고 남은 부분은 시대에 맞게 새로이 해야 한다. 이것이 온고지신의 본 정신이다. 그 책임을 게을리할 때 지식은 죽은 지식이 된다.     


주자의 지배를 받은 나라 조선에서 1800년대 쯤에 이르면 성리학은 여러 번 온고지신의 대상이었지만, 지식인의 본디 임무를 게을리 했던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통치 이념인 성리학을 혁신할 마음이 별로 없었다. 새로운 지식에 목말랐던 지식인들이 서학에 끌렸던 배경이다.      


세상과 유리된 지식과 이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민초는 그 지식과 이념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과 지아비를 공경하라는 것이 남존여비를 정당화할 수 없듯, 그 지식과 이념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민초는 그런 모순을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민초는 그러한 지식과 이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도 그에 대한 대안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황구첨정과 백골징포 등 시스템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도, 그것을 깨고 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큰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 때문이다.     


어부 창대는 정약전으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을 떴으나 출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낡은 이념에 끌려 과거를 보고 관직에 나아가지만,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거나 시스템을 바꿀 힘이 없음을 깨닫고 결국 흑산도로 돌아온다. 


정약전은 현실을 이롭게 하는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자산어보>라도 남겼지만, 참 지식인이 되려 했던 창대는 패배한 것인가.     


영화는 이런 저런 묵직한 질문을 던질 뿐,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당연하다. 답은 관객들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므로.     


<동주>에서 흑백 영화의 질감을 빼어나게 보여준 이준익 감독이 이 영화에서 흑백을 사용하는 데 더욱 자신감이 붙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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