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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y 02. 2021

삶이 갯벌 같을 때

1.

어릴 적 여름이면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인천 앞바다에 있는 용유도로 해수욕을 가고는 했다. 

지금은 바다를 메워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때는 기차를 타고 인천까지 가서

다시 여객선을 타고 가야 했던 섬이었다.

어린 마음에는 배를 탄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에 부풀었던 피서지였다.     


서해는 조차가 심하여 썰물이면 갯벌이 넓게 펼쳐졌는데

피서객들은 그 틈을 타 조개나 게를 잡으러 갯벌로 들어가고는 했다.     

어느 날 나도 형들과 누나들 사이에 끼어 갯벌에 들어갔는데

뻘밭에서 발걸음을 옮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형, 누나들과 달리

어린 나는 자꾸 뒤처졌다.      

형, 누나들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게 그 자리에 있으라 하고는 자기들끼리 바다를 향해 더 나아갔다. 

나는 서운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썰물로 한참 밀려간 바다는 아지랑이처럼 멀리 보이고

까만 점이 된 사람들이 꼬물거리며 무엇인가 줍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보다가 

혹시 게나 조개가 보이는지 주위를 살펴보기도 했으나

설령 있다 해도 뻘 속에 있는 그것들이 

잡는 요령을 알지 못하는 내 눈에 보일 리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밀물이었다. 

형과 누나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어느새 바닷물이 차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경사가 완만한 만큼 밀물이 밀려오는 속도도 빨랐던 것이다.     


돌아서서 뭍으로 가는데

이번에도 형, 누나들보다는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내 걸음보다 빨랐다.

처음에는 발목에도 차지 않던 바닷물이 조금씩 올라오더니

어느 새 종아리를 거쳐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리 멀리 나온 것 같지도 않은데

돌아가려니 뭍이 한없이 멀어 보였다.      


나는 덜컥 겁이 나 걸음을 빨리 했다. 

마음이 급하니 힘은 배로 들었지만

오히려 발은 더 느리게 느껴졌다.     


그렇게 용을 쓰다가

어느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물이 깊지 않았기에 곧 일어났으나

흙탕물 속에 머리가 잠긴 채 

미끄러운 갯벌에서 허둥대던 그 잠시 동안

나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다.     


수영을 배우려 시도할 때마다 실패하다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 배우게 된 데는

그 때 갯벌에서 넘어졌을 때의 공포심이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

사는 것이 갯벌을 걷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안간힘을 쓰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 않을 때다.

때로는 그렇게 애쓰다가 넘어져 온몸에 뻘을 묻히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다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은 시간도

지나고 보면 어느새 저만치 물러나 있다는 점이다.

뻘에서 힘겹게 발을 옮기던 시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빨리 차오르던 바닷물이 무서워 허둥대는 나를 보고

같이 갔던 형이 요령을 알려주었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조금씩 계속 가면 돼.      


그 말에 나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고등학생 쯤 되었던 그 형은

어린 내 눈에도 현명해보였다.     


태양을 등지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던 그 형의 실루엣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이제는 얼굴도 잊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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