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억지로 앉아 있어봐야 효율은 떨어지고 몸만 고될 뿐이니 일하다가 잠시 누워 눈을 붙이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데 어느 때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한다. 어젯밤에도 서재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웠다가 깨어 보니 이미 새벽이 되었다.
거실로 나오니 식구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고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푸르스름한 빛은 아침이 머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숙면으로 몸은 개운하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이 시간,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다.
간단한 스트레칭 후 아침을 먹는다. 과일, 베이글, 커피, 주스.
먹으며 하나 하나 맛을 음미해본다.
키위 한 조각, 사과 한 조각,
페스토 소스를 바른 베이글 한 조각
다 각각의 맛이 있다.
생명의 기운을 담고 있는 각각의 조각들이 내 몸에 들어와 나의 일부가 된다.
씽크대에는 어젯밤 딸내미가 파스타를 먹은 흔적이 있다. 되도록 물과 세제를 덜 쓰도록 유의하며 설거지를 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한 작가가 요가복 광고를 찍으며 말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명상의 한 방법으로 미국인들이 만든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지내던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 그러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나아가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 선불교의 참선과도 통하는 말이다.
이와 반대되는 말은 오토파일럿(auto pilot)이다. 생각 없이 습관대로 지내는 삶.
미국에서 요가나 선은 다분히 실용주의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마이드풀니스 역시 직장에서 일의 성과를 높이는 도구로 많이 활용된다. 역시 미국인다운 방향인데, 그렇다 해도 마인드풀니스에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문명의 덕에 삶의 많은 부분을 의식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되었다. 먹고, 입고, 이동하고, 일하고, 즐기는 것의 대부분을 돈만 주면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신경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세상과 나와의 연관이 점점 약해지고 때로는 삶이 공허해진다. 나 하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나의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에도 나는 분명 무엇인가를 먹고, 무엇인가를 입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의 진정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다. 오토파일럿 모드다.
아이들을 웬만큼 키우고 난 중년 즈음에 이런 공허감이 강해진다. 아이들과 씨름하며 사회에서 나의 입지를 구축하느라 정신없이 지내온 세월이 지나고 어느 정도 숨 돌릴 틈이 생겼는데 그 틈이 여유가 되기도 하지만 공허감이 되기도 한다.
정신 없이 바쁘게 지낸 세월, 나는 충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사회에서 정한 틀에 따라 살아온 것이 아닐까. 어쩌면 거대한 사회적 오토파일럿 모드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 삶의 운전대를 다시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은 나의 현재 행동 하나 하나의 의미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기도 한다.
내일 죽는다면 나는 지금 이것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불필요한 것을 과감히 줄이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늘 그런 생각만 하고 산다면 삶은 늘 긴장 상태일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는 삶을 제대로 음미하고 즐기기 어렵다. 초긴장 상태는 아니지만 집중력은 유지되는 상태가 일에도 삶에도 좋은 상태이다. 마인드풀니스가 지향하는 상태이다.
일상에서 이런 상태를 쉽게 경험하게 되는 시간은 운전이다. 물론 운전도 익숙해지면 어느 정도 오토파일럿 상태가 되기도 한다. 또한 차선유지장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 여러 가지 보조장치의 발달 덕에 운전은 점차 오토파일럿을 향해 가고 있다. 현재 전세계 자동차회사들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운전시 도로 환경과 차의 상태에 대해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긴장은 하지 않지만 집중력도 놓지 않은 상태다. 어떤 심리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동차를 운전할 때가 일상 영역에서 집중력이 가장 좋은 시간 중 하나라고 한다.
일상에서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때때로 자신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운전대를 다시 잡는 효과가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내려가니 공기가 선선했다. 이른 아침, 얇은 옷인데도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코로나로 움츠러 들고 세상사로 어지러워진 마음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계절은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쏴~~~
바람에 흔들리는 신록을 보며 심호흡을 하니 내 마음에도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