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친구들과 만나고 온 아들이 밥을 먹으며 주식 얘기를 꺼냈다.
“요즘 이십 대들이 주식 정말 많이 하더라고. 그게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던데. . . ”
“주식 뿐만 아니라 코인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맞아. 코인도. 친구 중에 좀 특이한 애가 있는데 그 애는 만나면 주식 얘기, 코인 얘기만 해서 좀 그래.”
아이는 코인은커녕 주식에도 별 관심이 없다. 지금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심이 있다 해도 아직 학생이기에 투자할 만한 돈도 없다.
“이십 대들이 주식이나 코인에 몰리는 이유도 이해는 가지. 대학 나와도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기 어렵고, 공무원 시험도 경쟁이 치열하고, 취직해도 집을 사기까지 한참 걸리고.”
“음. 나도 그런 점은 이해하는데. . . 직장인들도 직장에서도, 퇴근해서도 주식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 .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니는 건데 직장 내에서도 또 다른 돈벌이를 위해 주식에 신경쓰고, 퇴근해서도 또 주식이나 코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자기 삶은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이는 아직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직장인의 현실적 고민이 잘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을 하니 돈벌이에 대해서는 약간 나이브하다고 할까, 순진하다고 할까, 이상주의적으로 바라보는 면이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양극화가 심화되며 나타나는 문제의 일부지. 우리나라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현단계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양극화가 점차 심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단적으로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이 마련한 시스템은 일단 자리잡으면 계속 돈을 빨아들이는 구조거든. 그걸 플랫폼이라고 하지.
한국의 네이버, 카카오도 비슷한데, 그런 시스템에 참여하지 못한 작은 기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참여하면 거기에 계속 수수료를 주어야 하고. 개인은 특출한 재능이 있거나 의사, 변호사 같은 국가 자격증이 있거나 그런 시스템에 합류한 기업에 들어가거나 하지 못하면 점점 가난해지는 것이 현재 자본주의의 구조가 되어가고 있지.”
“음. . . 마르크스는 사회가 기본적으로 진화한다고 본 것 같은데, 현재 자본주의 단계가 지나면 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단계가 올 거라고 했더라고. 그런데 현재 사회를 보면 과연 그 일이 언제쯤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근래 에리히 프롬을 통해 마르크스를 간접적으로 접하더니 현실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고민이 드는 모양이다.
“맞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본적으로 진화론 시대의 사상가라서 사회도 진화한다는 생각이 강했지. 그래서 원시공동체사회로부터 봉건주의 시대, 산업화시대를 거쳐 생산력이 충분히 커지면 인류가 노동에서 해방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본 다소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졌지.
그런데 진화의 방향은 그리 명확하게 정해진 건 아니야. 진화론은 목적론이 아니거든. 다음 단계가 어떤 모습이 될지 정해진 게 아니라는 거지. 물론 크게 보면 원시사회로부터 문명사회로 진화했고 윤리, 도덕, 법도 더 인간적이고 평등한 방향으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좋은 방향으로만 나아간 건 아니다. 무기는 발달하는 데 지혜는 부족하여 대규모 전쟁이 나기도 하고. 지금 세계에 있는 핵만 해도 자칫 잘못하면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고,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류가 공멸할 수도 있고. 이게 다 문명의 발달의 결과니까. 마르크스는 이런 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살던 시대의 한계지.”
아이는 묵묵히 밥을 먹으며 이런 모순된 시스템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듯했다.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어렵다. 그저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알지? SF 소설가.”
“응.”
“그 사람은 소설도 썼지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 방향에 대한 대단한 선각자이기도 한데 그 사람이 말년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책을 보면 현재 로봇과 인공지능의 모습을 50년대, 60년대에 이미 예측하고 있어. 가령 산업용 로봇 뿐만 아니라 비서나 도우미 로봇, 원격교육, 원격근무, 클라우드 컴퓨팅 등은 이미 그 사람이 다 예측한 거야.
이 사람은 로봇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노예를 대체할 거라고 기대했어. 그러면 사람들은 그리스, 로마의 시민들처럼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로봇을 누구나 소유할 수 있게 되거나 국가에서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든가 해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현실에서 로봇은 대부분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고 그걸 이용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으니까. 노동자들은 오히려 로봇에 밀려나고.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생산력의 증가가 로봇과 AI의 발달로 거의 현실화되어 가는 셈인데 생산수단은 여전히 소수에게 있으니까 실제로 그가 꿈꾸던 세상은 요원한 셈이지. 이 점에서 아시모프도 나이브했다고 볼 수 있고.
게다가 더 문제는 군사용 로봇이야. AI를 장착한 로봇이 군사용으로 쓰이면 굉장히 효과적인 살상 무기가 될 수 있지. 아시모프는 로봇공학 창시자이지만 군사용 로봇은 절대 반대했는데 현실에서는 이미 군사용 로봇과 드론이 이미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지. 아마 특정 용도의 로봇은 제한하자는 국제 협약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각국 무기업체들이 군사용 로봇 개발에 열을 올릴 것 같다.”
아이는 더 깊은 생각이 잠겼다.
개인이 대처하기에는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 개인이 거대 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도 정답을 알 수 없는 문제다.
“일단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이런 시스템이라는 것은 알아야 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스템을 내가 바꾸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안에서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너 같으면 곡을 써서 저작권료 수입을 확보한다든가. 많이 벌 필요는 없지만 남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을 정도로. 그래야 당당하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아이도 동의할 수 있는 얘기일 것이고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의 자립 기반을 턱 마련해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자립할 방법을 찾는 과정이 더 큰 인생공부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모의 ‘능력 부족’을 자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