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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y 27. 2021

모차르트를 좋아하세요?

* 이 글도 몇 년 전 올렸다가 브런치를 잠시 닫으며 내렸던 글입니다. 오탈자를 바로잡고 문장을 약간 다듬어 다시 올립니다.



동창회 총무 역할을 자청해서 맡고 있는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ㅇㅇ이가 서울에 왔단다. **일 *시 시간 되는 사람 연락 바란다.” 


그 이름을 보고 내 기억은 대학 4학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이 떠올랐다.


“모차르트를 이해하는 사람은 좋은 애인이 된대.” 


그 말의 의미는 아직도 수수께기다.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내게 그 말을 했을까.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한 말이라면 너무 심한 장난이었다. 나는 심장으로부터 퍼져가는 통증을 감추기 위해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는 탁자에 놓인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대학 4학년 봄, 노래 잘하고 피아노 잘 치고 유쾌하고 호리호리한 미인이었던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가슴 한 켠에 통증을 느꼈다. 그것은 어렸을 때 운동구점 진열대에 놓인 야구 글러브를 보며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간절히 갖고 싶지만 어쩐지 내 것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가슴 저린 예감. . .


나는 야구소년이었다.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 야구는 사치스런 운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누를 수 없어, 공을 몇 번 받으면 뜯어지는 헝겊 글러브와 친척 형이 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낡은 배트를 가지고 틈만 나면 동네 아이들을 모아 야구를 했다. 


글러브가 없는 아이들이 불평을 하여 엄마를 졸라 천 글러브를 몇 개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아홉 개를 채우기는 무리였다. 게다가 헝겊 글러브로 공을 받으면 손이 아팠다. 몇 번 하다가 아이들은 공 하나만 있으면 놀 수 있는 축구를 하기 위해 가버렸다. 


나는 진짜 야구 글러브가 간절히 갖고 싶었다. 진짜 글러브가 있으면 아이들이 같이 야구를 하자고 하겠지. 


하지만 가죽으로 만든 진짜 글러브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내 것이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운동권이었던 두 사람은 제법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남자와 여자 모두 잘 알던 나로서는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속마음을 감춘 채 두 사람 주위를 맴돌았다. 대인 관계가 넓은 그들에게 나는 친구들 중 한 사람이었고,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저 조금 더 친한 친구에 불과했다. 


그렇게 가슴 시린 3학년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맞은 4학년 봄, 그 여학생이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소문이 들렸다. 어쩐지 그 남학생이 학교에 잘 안 보인다 했더니... 


하지만 그녀는 나를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전치 친구로, 그저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만나는 친구로 대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두 사람이 헤어진 것을 기뻐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했고, 그 기회를 틈타 그녀 옆에 재빨리 끼어들 만큼 노련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애처로운 노력을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오후, 수업을 마친 뒤 학생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시다가 그녀가 느닷없이 모차르트 얘기를 했다.


“모차르트를 이해하는 사람은 좋은 애인이 된대.”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이제 다시 남자 친구를 사귈 마음이 든 걸까. 하지만 나는 모차르트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 자신은 없으니 나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될 자격이 부족한 것일까. 만일 이해한다고 했다가, 클래식에 해박한 그녀가 모차르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물어보았을 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역효과가 나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내게 자기 애인이 되려면 모차르트를 더 연구해보라고 권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차피 모차르트를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친구 이상의 관계는 거절한다는 표현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표정을 살폈지만 평소처럼 싱긋 웃는 그녀의 얼굴은 수수께끼 같았다. 나는 공연히 커피잔만 다시 입으로 가져갔다. 빈 잔이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흐르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볼 때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를 보며 그녀는 옆에서 말을 걸기도 어려울 만큼 집중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 ‘데이트’를 통해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오히려 더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모차르트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그녀가 다시 언급한 모차르트. 


그녀에게 모차르트는 어떤 의미일까. 모차르트의 어떤 면에 그녀는 끌린 것일까. 그녀는 어떤 사랑을 원하는 것일까. 


내가 아는 작곡가별 특성을 떠올려 보았다. 한없이 깊은 바하, 온화한 할아버지 같은 하이든, 남성적이고 장엄한 베토벤, 섬세한 미소년같은 슈베르트. 이 모든 특성에 유쾌함과 부드러움을 더하면 아마도 모차르트일까. 


아, 피아노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느껴지는 영롱한 슬픔도 있었지.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운동권에서 겪었던 굴곡 많은 경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일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답을 몰라 안타까웠고 애가 탔지만 그녀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말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녀에게 나는 아직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모차르트의 의미가 무엇인지 끝내 묻지 못했다. 그저 여러 의미에서 시린 늦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봄 같은 남자를 찾던 그녀에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비치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었다. 


졸업이 다가올 무렵, 그녀는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작별 인사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잘 가라고 했던가. 건강하라고 했던가. 아마 그리 중요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든 이미 중요치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그 후 몇 년 동안 내 마음에는 좀처럼 봄이 오지 않은 채 늦가을과 겨울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 해 사월, 나는 아내를 만났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아내가 비발디의 봄을 들려주었을 때, 나는 드디어 내 마음에 봄이 왔음을 직감했다. 모차르트를 이해하는 남자가 되지 못해 괴로워하던 내게 비발디의 봄을 들려준 아내는 온화한 봄과 같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내에게 청혼했을 때, 아내는 봄을 맞은 아기사슴 밤비 같은 춤으로 화답했다. 


동창이 보내 준 사진을 보니 그녀는 푸근한 중년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마 모차르트 얘기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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