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올렸다가 브런치를 닫으며 내렸던 글입니다.
오래 전 읽은 소설의 첫머리는 젊은 남편이 삼 년간 자리보전을 하던 아내를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종의 목적에 쓰이기 위해 소년 시절에 부잣집에 팔려온 그는 어느 순간부터 주인의 손녀를 사랑하게 된다.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불치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살인 청부까지 하며 약을 구해 오지만 그런 그의 노력은 그녀의 생명을 그저 몇 년 연장할 수 있었을 뿐이다.
제비라는 이름처럼 지저귀기 좋아하던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해골처럼 마른 얼굴로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남편에게 마지막 농담을 건넨다.
“새 장가 가면. . . 원망할 거야.”
그렇게 아내를 보낸 후 젊은 남편은 오랫동안 허깨비처럼 살아간다.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이 생전에 서로 극진히 사랑한 것은 분명하지만 죽어서도 자기 생각만 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읽을 때마다 생각해보아도 답을 알 수 없었다.
우리 부부는 실없는 농담은 거의 안 하는 편이지만 그 소설을 읽은 뒤 약간 궁금하기도 하고 약간 짓궂은 마음도 들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만일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재혼할 거야?”
아내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한 번 했으면 됐지 뭘...”
나도 같이 웃고 말았지만, 돌아서서 생각해보니 그 의미가 묘했다. 이번 생에 남편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말일까. 아니면 결혼생활이 늘 즐겁지만은 않으니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일까.
남들을 칭찬할 때는 넘칠 정도로 하면서 식구들이나 나를 칭찬할 때는 오히려 돌려서 말하는 아내의 말투를 고려하면 전자일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자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려웠다.
결혼 전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부부 중 한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금슬이 좋았던 부부는 빨리 재혼하고, 별로 좋지 않았던 부부는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고.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사람은 그 행복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 재혼을 서두르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람은 결혼에 미련이 없기 때문에 혼자 산다는 것이다. 그 선배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고 했으니, 그것은 어른들이 공유해온 삶에 대한 통찰인지도 모른다.
물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서 재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다. 아내는 어느 쪽일까. 나는 어느 쪽일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새장가를 가고 싶을까.
당면한 일이 아니라서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기왕 질문을 던진 김에 억지로 상상을 해보니, 한편으로는 연애 시절의 설렘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현재의 안정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과정을 되풀이 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아니, 다시 재혼하면 그간 쌓아온 노하우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도 있으니 그 기간이 단축되려나(...).
한동안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고민에 빠져 있다가 결국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내는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니 굳이 대답을 듣고자 한다면 진심을 얘기할 텐데 아내의 답이 내 마음에 꼭 들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 대신 아내는 내게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 배려(!)를 해주었다.
부부가 서로의 속마음을 다 아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아는 것보다 믿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더구나 닥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내게는 지금의 아내가 최고의 아내이고, 아내에게는 지금의 내가 최고의 남편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