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이상의 긴 들숨과, 짧은 날숨.
불안한 호흡만큼이나 삶을 다그치는 삶.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혼신을 다해 나 아닌 다른 것을 위해 사는 삶. 요리사는 손님을 위해, 야구선수는 관객을 위해, 재벌은 회사를 위해, 왕은 국가를 위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수없이 피고 지는 노력론이 나를 옥죄어도, 나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사는 우리는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뿐.
오로지 나만을 돌아보며 사는 삶은 좋은가? 산골짜기 오두막 하나 짓고 채집과 수렵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자연을 만끽하는 삶, 혹은 도시 한복판 너른 집 쾌적한 환경에서 오롯이 나만의 자유를 누리는 삶. 책을 스스로 집필해서 볼 게 아니라면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쓴 책을 사야 하고, 매번 끓인 쌀과 바닷물을 말린 소금만 먹을 게 아니라면 밖에 나가 토마토소스와 파스타면을 사야 한다.
사회를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무정부주의에 찬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쌓아 올린 사회 질서는 온갖 풍파를 거치며 진일보해 왔다. 전제 군주, 포악한 귀족, 손버릇 나쁜 마름, 사기꾼과 아첨꾼, 연쇄살인마, 그 모두를 잠자코 견딘 민중 모두가 어렵게 쌓은 질서다. 그 질서 덕에 어느 작은 나라에서는 한밤중 편의점에 맥주 한 캔을 사서 으슥한 거리의 벤치에 앉아 있어도 아무 해코지 없이 고요한 밤을 즐길 수 있다.
세상 사람 모두를 구원하는 길은 없다. 언제 어디선가 누구는 사기를 당하고, 사고로 다치고, 끔찍하게 살해된다. 고대 사회나, 중세 사회나, 근대 사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정하고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은 우리를 덮친다. 어렵게 쌓아 올린 사회 질서는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신 역시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구원이란 없다.
구원은 없이 강렬한 표현들이 세상을 뒤덮었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면, 곳곳에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음을 느낀다. 잔잔한 물결이 아닌 거센 파도와 같다. 뛸 듯이 좋은 감정과 매서운 눈매의 나쁜 감정이 주변을 오간다. 고른 호흡이 아닌, 바쁘고 일정하지 않은 호흡으로 살아야 한다.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
우리의 사회를 아껴야 하고, 그 안의 질서를 잘 지키면서, 강렬한 감정들이 곳곳에서 밀려들어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이때, 나는 왜 살아야 하나? 나를 위해? 나 아닌 다른 무엇을 위해? 그게 아니라면 살아야 할 이유는 없나?
견딘다는 것은, 조급해하지 않는다는 것.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을 때, 조급한 결단을 내리지 않고 관망하는 것. 앎을 가졌다고 자신하지 않고, 가지지 못했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것. 나를 부당하게 옥죄는 너를 죽일 듯 노려보는 게 아니라, 다만 안쓰러운 마음으로 담담히 한 발 물러서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아는 것.
견딘다는 것은 나의 구원. 그리고 너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