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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창인 Dec 28. 2015

2011년 여름

걷다가 만난 벽화마을 _ 안동

  2011년 여름의 안동은 지금도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 날 들러 그 날 떠난, 조금은 매몰찬 일정 가운데서도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더랬지.



  안동은 예전부터 꼭 한 번 와 보고 싶던 곳이었다. 안동이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바로 '선비'. 그만큼 안동은 예로부터 수많은 선비들을 키워낸 동네다. 대표적인 인물만 거론하자고 해도 입 아플 지경. 그런 이유를 대며 어물쩍 넘어가 본다.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왔기 때문에 안동에 도착한 건 상당히 이른 시각이었다. 무얼 할까 하다가 일단 무작정 걸어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다. 뭐,  그땐 아직 그럴 시절이니까.



  전혀 의도하지 않은 파노라마. 묘하게 잘 맞네.


  도보는 어느새 부턴가가 등산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막다른 길에 다다라 보게 된 풍경이 바로 이 모습이다. 한 마디로 길을 잃었던 거다. 그래도 무성하게 자란 풀까지 헤치며 걷던 산길인데 막상 막다른 곳이 나오니 조금 허무했다.



  '어쩐다……'


  고민도 잠시, 내려다 보이는 마을에 마음이 동해 다시 또 발걸음을 부지런히 놀렸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참 그럴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날 길을 잃었던 건 아주 큰 행운이었던  듯하다. 때로는 아주 스마트하지 않아도 좋음을 종종 그리워하게 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 마을의 입구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벽화를 만났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남의 집 벽에 그렸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 거주하고 계신 분의 모습일 테지. 손자와 손녀일까. 할머니의 귀갓길이 아마도 조금은 덜 외로우시리라.



  입구의 담벼락은 아이들의 갤러리가 되었다. 한결같이 웃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 속 표정들. 이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내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한쪽 벽에서 진행되고 있는 작은 음악회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의 분위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신세동 벽화마을은 제법 가파른 언덕길을 자랑하지만 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올라가노라면 그 발걸음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다.



  시…시원하니?



  올라가는 길에 만난 고양이들. 사랑놀이 중인 커플 고양이도 보이고, 그 아래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도 보인다. 나무 위 저 아저씨는 개뼈다귀로 낚시질 중이시다. 포즈에서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이 모습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는 보는 이가 상상하기 마련. 파란 아이 표정 좀 보라지.



  다양한 벽화마을을 가 봤지만 이 곳은 정말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아니  그곳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작품들이 마을과 아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오로지 눈에 띄는 목적에 급급한 간판들을 많이 보게 된다. 어찌나 그 목적에 충실한지 어디서든 참 잘 보인다. 주위의 모습에는 아랑곳 않고 낮이나 밤이나 오로지 자신만 빛나면 그만인 그런 간판들. 전혀 조화롭지도, 조화되지도 못한 그런 간판들을 보고 있자면 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지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에 비해 이 곳의 간판은 참으로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휘황찬란한 네온과 원색의 뒤범벅이 아니어도 충분히 눈에 띌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름 또한 어찌나 옹골진지.


우리동네 수퍼


  한눈에 반한 이름과 간판에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사 먹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 날은 문이 닫혀있어 우리동네 수퍼 안까지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어어…… 하며 나도 모르게 몸과 고개를 갸우뚱. 저기에 앉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마을은 그 자체로 캔버스다. 누군가의 담벼락은 그 자체로 훌륭한 개구리들의 놀이터가, 무대가 되고 있었다. 마을에 주차되어 있는 차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마을 정상에는 정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안에 아무렇게나 놓인 아이들의 물건들에서 어릴 적 추억을 떠올려본다.



  부디 이 곳은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추억으로 남아있길.



  2011년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며, 2015년 추운 겨울 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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