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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돈 코치 Apr 25. 2022

짐캐리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

은퇴코칭/커리어코칭


"난 내 조용한 삶이 정말 좋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정말 좋고, 영적인 삶도 좋다. 연예인이 또 이런 얘기하는 걸 듣고 싶어하지 않겠지만, 난 만족한다. 할 만큼 했다. 충분하다."

짐 캐리가 최근 연기 은퇴를 선언했다. 만 60세인 짐 캐리는 개봉을 앞둔 <수퍼 소닉 2>의 홍보 차 출연한 해당 쇼에서 은퇴를 계획중이라고 털어놓았다. 컨트리 아티스트 돌리 파튼은 짐 캐리에게 자신의 음악 파트너였던 故 포터 워거너에 대한 전기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짐 캐리는 “그것 참 좋은 얘기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근데 은퇴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짐 캐리는 “앞으로 상황에 달렸다. 만약 천사들이 황금 잉크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가져와서 나에게 이건 정말 사람들이 봐야 할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읽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쉴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해당 대답이 농담이 아니고, 아주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전시회를 열 정도로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짐캐리의 인생에는 반전이 있다. 

짐캐리(Jim Carrey)는 캐나다계 미국인으로 1962년 1월 17일생이다. 그는 영화 <마스크>로 일련의 과장된 연기로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출연하는 영화에 따라 짐 캐리의 거침없는 성격과 괴상한 표정, 그리고 기이한 유머 감각은 등장부터 많은 이들을 사로잡기시작했습니다. 21살에 <The Tonight Show>에서 공연을 한 후 몇몇 코미디 쇼에 출연하면서 짐캐리는 자신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갔고, 이후 <에이스 벤츄라>, <덤앤더머> 같은 코미디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인기 코미디 배우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짐캐리는 즐겁고 유쾌한 연기와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들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그에게 명성과 부를 안겨주었다. 짐캐리의 인생에는 반전이 있다.

 

그가 품은 천만달러 배우가 현실로 이루어지다

오랜 무명생활에 지친 짐 캐리는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당시 짐 캐리는 일거리가 없어서 버려진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세수도 공중화장실에서 했으며, 매 끼니를 햄버거로 때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할리우드의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가지고 있던 종이에 “출연료 천만달러”를 적었다. 명확한 목표를 지갑에 넣어 다니면서 천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로부터 5년 후, 놀랍게도 짐캐리는 영화 <덤앤더머>, <배트맨>, <배트맨 포에버> 등에서 출연료로 천만 달러를 받게 되면서 현실로 이루어졌다. 짐캐리가 이렇게 노력한 이유는 아버지에게 1000만 달러를 드리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약속을 지키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고.



짐캐리는 <How Roland Rolls> 동화 작가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저에게 자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부모님이 곧 죽을거라는 생각에 너무나 무서웠고, 몇 시간동안 화장실 안에 머물면서 울곤 했지요. 부모님은 심한 공포에 떨고 있는 저에게 빨리 밖으로 나오라며 화장실 문을 쎄게 두드리면서 고함을 질렀고, 그럴수록 제가 느끼는 공포와 무서움은 점점 더 커져만 갔죠. 그 당시 제가 그 공포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엔 그런 일들의 반복이었거든요.. 유독 어머니는 자신이 곧 죽을거라면서 죽음에 대해 너무나 자유롭게 이야기하곤 했어요. 제가 7살 때였는데,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갑자기 저에게 “짐, 나는 심장질환이 있어서 언제든 죽을 수 있어. 나의 뇌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매우 악화되고 있는거 아니?”라고 말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고 하루하루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어린시절에 겪었던 그런 일들로 인해 제 삶은 점점 황폐해지고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었어요.

짐캐리는 솔직하게 말한다. 어린시절에 흡연자였던 그의 부모님이 곧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늘 안고 있었다

고 고백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가 어린 그에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자주하는 바람에, 매일마다 극심한 공포에 떨어야만 했고, 이후 죽음에 대한 극심한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훗날 짐캐리가 <How Roland Rolls>라는 아동용 도서를 쓰도록 영감을 주었다. 그가 늘 이야기하거나 다루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흔히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심오한 질문들을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었다. 즉, 어린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으며 그들도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나요?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죠?”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저를 겁먹게 했던 어머니의 말과 행동이 당시에는 공포로 다가왔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런 어머니의 행동이 "관심을 얻고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됐어요. 어머니는 이것이 애정을 얻기 위한 잘못된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죠. 결국 어머니의 행동은 저에게 죽음에 대한 큰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제 방에 있는 거울을 보며 보냈어요. 왜냐하면 당시에 저는 주변 친구들이랑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잘 몰라서 혼자 있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렇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면서 앉아 있곤 했어요.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되게 만들었죠. 학교에 있는 그 어떤 학생도 제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아했고 나중에는 제 존재감마저 사라져서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특히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학교를 중퇴한 후에는 공황장애까지 생겼는데, 이 무렵 저는 집 밖에 나가거나 혹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두려웠어요.

죽고 싶을 정도로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던 그는 한 때 술과 마약에 의지하면서 스스로를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뜨렸지만, 재활을 통해 점점 정신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울증세가 더욱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삶의 정신적인 면”을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제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평화로운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믿는 것만으로도 저는 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이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했을 때 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아픔에서 벗어나게해 준 것이 바로 “그림” 이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는 제 방식대로 다양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치유받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짐캐리는 여러 여성들과의 만남과 이별을 겪었다. 그 중 그의 가장 유명한 연인은 동료 여배우였던 “제니

매카시” 였는데, 두 사람은 5년 동안 연인 사이로 지내다가 결국 이별을 했다. 결별 후 짐캐리는 매우 힘들어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제니가 지금껏 사겨왔던 여성들과는 매우 달랐고, 그녀만한 여자를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이 관계가 깨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려워했던 짐캐리는 그 무렵부터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을 때, 저를 편안하게 해준 유일한 것이 바로 “색”(color)이었어요.다양한 색으로 그림을 그리고 점토로 조각을 만드는 시간들이 실연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죠.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해왔던 그녀와의 이별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 그 이상이었어요. 한창 그림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집 안 구석구석 발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림을 그리는데 집착했었죠.집 안 가득 수많은 그림들이 있었던 덕분에 마치 정돈되지 않은 미술관처럼 보이기도 했어요.그림 그리는 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한동안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그림 그리는 것에만 집중했던 짐캐리는 마침내 “고난을 이해하는 능력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내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구원의 길이자 행복”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내던 시절에는 이 사실을 미쳐 몰랐어요. 진정한 행복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요. 이걸 몰랐다면 저는 분명 삶의 노예가 됐을거에요. 제가 영화계를 떠나 잠적했을 때, 저만의 해결책은 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또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었어요. 그 사람에게 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저는 더 많은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죠. 저는 제 인생의 많은 시간동안 심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림을 그리고 명상을하면서 점점 마음의 평안을 되찾아갔고, 이제는 우울한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해요. 오랜기간 저를 괴롭혀 왔던 우울증이 사라진 이유 중 하나는 이전에 영화를 찍으면서 매번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일을 중단했기때문입니다. 사실 전 연기를 할 때마다 해당 캐릭터에 지나치게 몰입했었고, 이 때문에 촬영이 끝나도 한동안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어요. 그들도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 반드시 깊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정말 중요한건 창의력이 삶을 자유롭게 한다는 거에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후,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는데 그 땐 글도 꾸준히 썼어요. 현재 제 자신이 직면하는 어려운 상황때문에 제 마음이 갇혀 있다고 느낄 때, 그림이나 글 같은 창작 활동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줍니지금 마음이 힘드신가요? 아니면 우울하세요? 그렇다면 창의적으로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과 영상을 찍고, 음악을 녹음하거나 대중 연설을 할 수도 있어요. 요즘에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체들이 정말 많잖아요? 부디 여러분이 가진 창의력을 발휘해서 스스로를 위한 삶을 찾고 소중한 자기자신이 되길 바랍니다. 

짐캐리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자신의 창의성을 통해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다. 당신은 어떤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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