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퇴사 사유: 영혼의 파괴

서공양_#프롤로그

by 윤달



30년 하고도 7년을 살았다.

서른일곱 살의 나는 80년대의 맨 끝자락에

태어난 89년생.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백업이 안 된 것 같은, 뒤가 텅 빈 듯한 어딘가 균형이 아쉬운 89년생.


그런 내가 서른일곱 살이 된 지금, 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하고, 입사 경쟁률은 가뿐히 몇 백 명을 넘는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을 그만뒀고, 결혼 날짜를 잡아도 모자랄 이 나이에 사귀던 남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아! 그래,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다. 아니, 망했다.
서른일곱에 자진 퇴사에 애인과의 이별이라니—

인생의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에게 더 비참한 요소가 뭐 있었지?)


그런데 이렇게 보기 좋게 망한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던 날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지난 2년 동안 회사에서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그 여자는, 내가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뜻밖에도 따뜻한 위로와 마지막 응원의 말을 건네며 눈물을 훔쳤다. 언제나 나와 단둘이 있을 때마다 일그러진 얼굴로, 격앙된 목소리로 나를 몰아세우던 그 여자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낯선 그 표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인간은 왜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살아갈까?

진저리가 난다..”


그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마치 뇌에 산소 공급이 잠시 끊긴 듯, 순간적인 현기증이 몸을 휘감았다.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직서는 전산으로 신청하지만, 내 정보를 기입해서 출력한 종이에 내 이름과 사인은 직접 해야 한다.



“이런 것도 그냥 전자 사인하면 안 되나?

이 사인하기 싫다.”



그러고 보니 7년 전 입사할 때도 그 수많은 종이에 사인은 직접 했었는데—회사를 들어올 때, 그리고 나갈 때, 그 두 번의 순간에는 반드시 ‘직접’이 필요한가 보다.


“그렇다면 인간이 태어날 때와 죽을 때도

어떤 ‘직접’ 사인이 필요한 걸까?”


출력한 사직서를 들고, 나는 혼자
조용히 불 꺼진 회의실로 갔다. 내 이름, 현 부서, 입사 일자, 퇴직 일자를 빠짐없이 기입하면서 하얀 종이를 쭉 내려오니, ‘퇴직 사유’ 작성칸이 날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만두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


그리고 나는 그날따라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밝은 해가 잘 드는 회의실. 매일 들어가 회의를 하고 괴롭힘을 당하던 그 회의실에서 나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를 결심했고, 그 종이 위에 퇴직 사유를 작성했다.


ᄋ 퇴사사유: 영혼의 파괴

(지독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하여 제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에 더 이상 주어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없으므로 퇴사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서른일곱의 나는 꽤나 큰 회사 안의 다소 작은 내 자리 하나를 반납하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그날 나는
내심 비라도 시원하게 오길 바랐지만,

6월 중순의 그날은 초여름의 생기가 너무나도 싱그럽게 반짝거렸다.


일 년 중 아주 잠깐만 찾아오는

그 초여름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내가 올해 서른일곱 살이거든요.

그런데 사귀던 남자랑은 헤어지고, 다니던 번듯한 회사는 그만뒀답니다.


혹시 그런 기분 아세요?


회사는 점점 더 번듯해져 가는데, 나는 점점 더 안 번듯해지는 느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요.

그날 사직서에 내 이름은 썼는데 도저히 사인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한참을 망설였어요.


왜냐고요?

이 마지막 사인을 하고

여기서 나가면, 안 번듯한 나를 이제는 정말 마주해야 할 것 같아서요.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서 두려웠나 봐요. 크고, 번듯한 것 뒤에 숨어 있으면 속으로 망가져가는 나를 계속 안 볼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이 회사에서 나가면 그런 진짜 내 모습을 봐야 하니까요.


아무튼 그날, 날씨는 더럽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렇게 눈물이 났나 봐요.

잠깐 왔다 가는 그 짧은 초여름 날씨가 눈물 나도록 좋아서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