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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Apr 14. 2020

희망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김영하 <검은 꽃> 

코로나 19는 장기화되는 듯하다. 금방 백신이 나올 듯하는 기사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모두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한다. 코로나 19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의료진에서부터 항상 마스크를 쓰고 집 앞 놀이터를 가야 하는 아이들까지 모든 이들이 코로나로 인해 고통과 불편을 겪고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 마스크를 사고, 외출을 삼가고, 꽃구경을 미룬다. 분명 이 코로나는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은 망해가는 조선을 떠나 새로운 희망을 찾아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이야기이다. 실제 그들이 겪은 끔찍한 고통을 알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그들을 더 힘들게 했던 건 돌아갈 곳이 없는 조선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며 발급을 받은 대한제국의 여권은 이제 아무 쓸모없는 종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희망'을 되찾기 위해 싸우다 죽거나,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난다. 그런 희망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종도는 망해가는 제 나라를 꼭 닮았던 것이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폐족의 가장인 이종도는 새로운 희망을 찾아 가족을 이끌고 멕시코로 향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니 새로운 환경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병들어 죽고 만다. 조선이 망한 이유를 김영하 작가는 이렇게 한 줄로 표현하였다. 조선의 시대 상황 등을 구구절절 소설에 담아내지 않고 등장인물을 통해 간결하게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김영하 작가의 이런 한 문장들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껴진다. 이런 문장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신은 유카탄의 광신도와 조선의 신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함께 올린 그 기도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유카탄의 농장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마야 원주민들에도 개종을 강권했고 이주한 조선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농장주가 마야 원주민과 조선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토속신앙을 버리고 자신이 믿는 신을 믿지 않으면 폭력으로 굴복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종교의 회의감에 대해서도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참 깔끔하게 정리를 잘한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작가의 문장의 압축 능력에 대한 찬사로 마무리를 짓는 것 같다.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직하다. 곰탕 집에 온 듯하다. 곰탕 한 그릇에 깍두기만 나오는. 정성스레 끓여진 곰탕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진 느낌이 아니다. 며칠 동안 푹 고아서 깊은 맛이 느껴진다. 이런 곰탕 같은 작가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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