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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키키 Feb 28. 2020

 나는 계속 열심히 살 계획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고

아주 위험한 책을 한 권 읽었다. 30대 후반 인 지금 나이에 읽어서 망정이지 아주 큰일 날 뻔했다. 잘 다니는 회사를 퇴사하게 만들법한 책이다. 약간 이 책은'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베짱이가 쓴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이 이야기는 각색이 되어 베짱이가 나중에 기타 연습만 하다 슈퍼스타K에 나가 연예인이 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던데. 이 각색된 이야기 역시 굉장히 위험하다. 왜냐면 슈퍼스타K에서 우승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 나온김에 경쟁률을 한번 살펴보자. 안정적이며 딱 개미 같은 직장 공무원(사실은 공무원도 굉장히 힘들지만 평균으로 잡는다는 기준으로 생각하자)과 비교해 보자.  직렬별로 다르겠지만 2019년 9급 공무원 경쟁률이 기본적으로 20:1이 넘었다.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직렬은 171.5:1을 기록한 교육행정직이다). 그에 반에 수퍼스타K의 경쟁률은 어떨까? 2012년 슈퍼스타K4의 예선 경쟁률은 73만 6589:1이다. 각색된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는 로또 당첨 수기와 같다고 보면 된다.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되지만, 살려면 적어도  인분의 밥값은   알아야 한다.


저자가 즐겨 듣는다는 법륜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다람쥐는 죽어라고 열심히 도토리를 먹지 않는다. 소도 졸라 열심히 풀을 먹지는 않는다. 그저 먹을 뿐이다 생존을 위해서. 사람으로 따지자면 최소한 의식주 정도는 해결을 해야 할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인간인 만큼 한 달에 한번 치맥 정도는 해결할 능력이나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찍을 핸드폰 정도는 있어야겠지. 즉 어느 정도 인간사회에 어울릴 정도의 사회활동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뒤받침 된 다음에야 열심히 사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열심히 '안' 살기로 한 저자의 스펙을 한번 살펴보자. 홍익대 미대를 나왔다. 미술로서는 최고의 학벌이다. SKY 출신이 과외를 해서 돈 벌기 쉽듯이 저자 역시 이미 미술학원 강사 경험도 있겠다 미술 과외를 한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림 실력으로 취업을 했었고 현재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책을 쓸 정도로 글솜씨마저 뛰어나다. 이 정도 스펙이면 그가 가진 능력으로 충분히 노후보장이 된다고 본다. 프리랜서를 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알바시장에 나가야 된다. 그리고 십 대와 실버세대들과 경쟁해야 된다.


나중에 밥을 작게 담을지언정 밥그릇은 일단 크고 봐야 한다.


이 책은 특히 십 대 20대들에게 더욱 위험하다. 최소한의 밥벌이를 위한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이 시기에는 가능하면 열심히 사는 것이 필요하다. 이 시기에는 자신이 준비하는 만큼 나중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다. 예를 들면 일본어를 배운다던지, 헬스 트레이닝 자격증을 딴다던지. 이 시기에 열심히 준비를 한 만큼 나중에 먹고 살 걱정을 덜하게 된다(사실 저자도 삼수까지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나는 이 시기를 스펀지에 물을 흠뻑 적시는 시키라고 늘 생각했다. 일단 물을 최대한 많이 적셔야 스펀지에서 짜낼 물이 많듯이 열심히 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건 나중에 열심히 안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내가 원래 좀 느려. 나는 예전부터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렸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숨기지 않고 말하고 다녔다. 신기한 건 주변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거나 한심해하지 않고 내 느린 속도를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나 역시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함보다는 천천히 간다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단골 막걸리 집에서 주인장의 느린 손을 탓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을 즐겼던 것처럼…….

「느려도 괜찮아」 중에서


이 책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저자가 열심히 안 살고 놀고먹는 부분이 아닌 삶에 대한 태도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고 그 삶에 책임을 지고 그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 어떤 사람은 저자에 걱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을 때 모아두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저자와 같은 삶의 태도라면 어떠한 미래가 닥쳐와도 만족스러워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건 그가 좋은 스펙을 가져서도 멋진 그림 솜씨를 가져서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데?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자, 이제 처음부터 다시 이 책을 읽어 보세요."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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