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지내다 보면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고 있다던지 설거지를 하고 있다던지 하며 머릿속에 잡생각이 가득해질 때,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갈 때가 있다. 당장 어디다가 적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나는 이걸 잘 기억했다가 나중에 적어놔야지라고 생각하지만 생활은 바쁘고 차분히 메모할 시간은 나중에 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앉아서 펜을 들면 몇 시간 전 좋은 생각이 이미 저 멀리 가버려 뒷모습만 흐릿하게 보인다. 분명 있었는데. 기분 좋은 감각만 남기고 사라진 생각은 아쉬운 첫사랑 닮은 이의 뒷모습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아! 기억력이여! 20대 아니 30대에도 기억력이 이렇게 낮아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제 스쳐 지나가며 들었던 맛집 상호도 30초 정도면 더듬어 낼 수 있었고 약속을 기억해 내지 못할까 봐 어딘가에 메모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40대 중반이 되고 나니 메모는 필수요, 그 메모를 한 것도 잊을 때도 많다니….
그런데 형편없어진 기억력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예전엔 어떤 물건이 눈에 들어오면 가지고 싶은 기분이 몇 날 며칠이고 잊어버려지지 않아서 결국엔 사고 말았다. 하지만 요새는 가지고 싶은 기분이 들다가도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욕망이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집에 물건도 줄고 생활비도 줄었다. 과연 이게 좋은 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