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만큼 따라오지 않던 마음에 대하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얼떨결’로 시작된다. 분위기에 이끌려, 타이밍에 기대어, 때론 외로움이라는 충동에 밀려서. 우리도 그랬다. 어떤 확신도 없이 시작된 사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며 여느 연인처럼 데이트를 했지만 마음은 늘 그보다 한 발짝 느렸다. 마치 계절이 바뀌었는데 꽃이 피지 않는 것처럼 어딘가 부족하고 어딘가 공허했다.
그때는 몰랐다. 관계가 굴러가기만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어색한 순간들을 애써 메우고 대화의 공백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어떻게든 서로에게 잘 맞추려는 마음이 결국엔 우리를 더 가까워지게 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억지로 조율된 박자 위에선 자라지 않았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심지가 약한 초는 금세 꺼져버렸다.
우린 서로를 잘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싶을 만큼의 마음도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연애를 했지만, 사랑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설명되지 않던 무기력함의 정체가 드러났다. 아픈 감정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서글픈 건 내가 기울인 노력과 시간들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졌다는 느낌이었다.
헤어진 뒤에도 이상하게 허탈했다. ‘정도 안 들었으면서 왜 이렇게 힘들지?’ 생각했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건 사랑이 주는 고통이 아니라, 애쓴 내가 버려진 듯한 감각 때문이었다. 나를 아껴준 기억은 없는데 나 자신을 애써 붙들며 버틴 시간들만 기억나서.
그 관계는 끝났고,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관계를 지속하려고 애썼던 나를 기억한다. 마음은 오지 않았지만 진심은 있었다. 그러니 이번엔 상대가 아닌, 그런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다가갔던 그 마음이, 결국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해 줬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