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목요일은 반나절 남짓의 여유가 허락된 날이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서였다. 소장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진집 중 하나인 사울 레이터(Saul Leiter)의 「All About Saul Leiter 」를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찬찬히 페이지를 넘기는데 단출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깊이 존경한다"라는 말이 남겨져 있었다. 그의 말을 곱씹다 보니 괜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후쿠오카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알게 된 경기도의 어느 한 곳이 머릿속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그 순간, 당장 그곳으로 떠나야 한단 감정에 이끌리고 말았다. 그러나 손에 쥐어진 건 고작 네 시간이 전부였다.
수년 동안, 셀 수 없이 잠실 월드몰을 들락거렸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잠실광역환승센터. 가장 먼 곳에 있던 18번 게이트엔 이미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영혼 없어 보이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길을 제대로 찾았단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견고하게 설계된 지상 아래에서 빠져나와 태양이 가득한 세상으로 올라왔다. 빛은 커튼의 봉제선을 타고 흐르며 허벅지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무릎과 커튼이 아닌 그 주변 어딘가를 응시했다. 내 몸에 배어드는 빛을 따라 잠겨있던 시선은 버스가 출렁일 때마다 커튼 사이의 창밖으로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다.
삼십 분 남짓한 시간이 흐르자 나는 경기도 북부 어느 신도시 외곽에 덩그러니 서 있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넌 후에 만난 길을 따라 오 분 정도 걷자 그림자를 가득 머금은 커다란 건축물 앞에 설 수 있었다. 불과 오전까지만 해도 내가 의정부에 있는 미술 도서관 앞에 있을 거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단하고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리창이 네모나게 조각된 한쪽 면에서 파편 같은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빛을 한껏 받던 곳은 온통 미술 도서로 가득 채워진 서가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느 곳을 향해 걸었고 발걸음이 멈춘 곳은 ‘사진’이라고 적힌 곳 앞이었다.
빼곡하게 꽂혀있던 수많은 사진집 중 세 권을 골라 자리로 들고 왔다. 그것은 살가도와 모리야마가 기록한 것이었다. 꼬박 두 시간 삼십 분이 지나서야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었다. 그들의 사진을 보는 내내 생각에 잠기는 것과 벗어나는 것을 반복했다.
도서관에서 나와 다시 잠실로 돌아가는 광역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서, 대략 삼십 분 남짓한 시간 동안 살가도와 모리야마의 사진과 내가 기록한 것을 번갈아 떠올려봤다.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기록해 왔으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파인더 밖으로 세상을 보고 셔터를 누르는 걸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혼란스러웠다.
다시는 복구될 수 없는 휴지통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글과 사진이 버려질 때조차 그 이유를 뚜렷하게 찾지 못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나의 기록은 왜 존재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