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세 번째 차

by 윤기





이번 주 목요일은 아버지의 세 번째 차에 첫 초대 손님이 되었던 날이었다.


작년 12월이었다. 아버지에게 전화가 걸려 와 받았더니 다짜고짜 집으로 오라고 했다. 사정을 묻는데도 일단 와보라길래 하던 일을 멈추고 본가로 갔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소파에 앉아 있던 그는 내게 얼른 옆으로 와보라고 했다. 그러고는 휴대폰에서 뭔가를 급하게 찾더니 이거 어떠냐고 물었다. 화면을 채우고 있던 건 최고 등급 사양의 SUV였다.


"혹시 차 바꾸려고요?"

"어. 지금 타는 건 폐차시켜야 할 것 같다."

"아··· 그럼 그냥 제 차 같이 타면 안 돼요? 어차피 잘 타지도 않는데···."


나는 출퇴근할 일도 없고 대부분 서울 안에서만 다니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아직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 갑작스럽게 만나는 장면에도 카메라를 꺼낼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운전하는 시간을 독서로 교환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내 차는 거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잠자고 있는 신세였다. 그래서 여분의 키를 아버지에게 드리고 함께 타면 괜찮을 거로 생각했다. 더군다나 부모님 댁은 우리 집에서 도보 3분 거리에 있으니까 주차장을 오가는 것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였다. 내 제안을 들은 아버지는 말을 아끼더니 불편한 안색이 되었다. 왜 그러시느냐 이유를 묻자 차를 쓸 때마다 자식에게 연락하는 게 번거롭다고 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매번 자식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영 못마땅한 것처럼 보였다. 일흔 중반의 나이지만 아직 체력이며 경제력까지 짱짱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듯하기도 했다. 그에게 되물었다. 이제 연세도 있어서 걱정되는 데다가(하루가 멀다고 뉴스에 등장하는 고령 운전자의 가속페달 조작 미숙 사건이 떠올랐다) 내 차가 아버지가 고른 차와 동급이고 더 신형이니까 그냥 같이 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주유비와 추가되는 보험료는 물론 사용 시간이 겹치게 되면 택시도 불러드리겠단 말도 보탰다. 옆에 있던 엄마는 아들 말을 듣는 게 좋겠다며 거들었다. 엄마의 말이 끝나자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가 버럭 하면서 큰 소리로 화를 내는 거였다. 자기가 사고 싶다는데 왜들 그러냐고 했다. 나의 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말수가 적은 데다 온화한 성격으로 엄마를 닮은 나와는 달리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거기다 검소함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며 평생을 살아온 남자였다. 그런 사람이 이런 식으로 화를 낸다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나도 참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굳이 지금 그렇게 비싼 차를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가상각이 1년에 천만 원은 넘을 텐데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느니 내 차를 그냥 타셔라. 아니, 그냥 내 차를 드릴 테니 내가 빌리는 형태로 하자며 아버지를 가르치려 했다. 그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 그때, 몇 년 전 아버지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에 차를 바꾸면 제네시스를 타야겠다.라고 했던 말이었다. 당시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던 건 아무리 경제력이 뒷받침되어도 평생 검소한 소비를 해온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엔 꽤 고가의 차량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자 오만이었다. 그는 그 말을 뱉은 순간부터, 어쩌면 훨씬 그 이전부터 휴대폰 화면 속에 있는 차를 갖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아들이라는 놈이 나타나 자기가 뭘 안다고 이래라저래라 해대니 온화하던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던 거였다.


가족끼리는 그런 게 있다. 누구보다 내가 너를 제일 잘 안다는 태도. 어떨 때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안다는 듯한 말을 거리낌 없이 뱉어내는 것. 가족들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친구나 지인들도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를 더 성급하게 판단하는 일이 잦아진다. 나는 그게 싫었다. 마치 나를 다 안다는 듯한 그런 얼굴을 볼 때마다 당신이 아는 내 모습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우리 엄마는 당신 뱃속으로 나은 자식이라 본인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였다. 피아노 선생님이 무서워 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다며 사정사정했던 걸 엄마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모자지간이지만 이렇게까지 체질이 같을 수 있냐며 놀랐던 한의사의 표정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해 낸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절친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와 가장 밀도 있게 지냈던(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 시절) 시기를 잘라내서 그것을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인지하고 있다. 친구들에게 나는 재밌고 끈기가 부족하며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놈이다. 하지만 끈기가 없다고 하기엔 지금 하는 일을 13년째 지속하고 있다. 그러니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를 모르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그토록 싫어하던 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왜 갑자기 차를 사겠다는 건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를 이해하진 못해도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어야 했다. 그것이 내가 정한 세상의 상식이었다. 언제부터, 왜, 이 차를 가지고 싶었던 건지, 외장은 그렇다 치고 시트까지 검은색이어야 할 이유가 뭔지 물어야 했다. 굳이 사륜구동을 사야 하는 까닭도 그의 입을 통해서 들어봐야 했다. 늙은 아버지의 욕망을 내 두 귀로 담아야 했다. 그러지 못할 바에는 잠자코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부모님과 동생과 친척들과 절친과 지인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를 다 안다는 듯이 대했다. 혼란스러웠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머릿속이 납작해져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내가 고작 꺼낸 말은 그럼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라는 남보다 못한 말이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다. 수요일 오후, 엄마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아버지는 결국 차를 샀고(사실 그 사이 아버지는 내 차를 몇 번 빌려 갔으므로 차를 샀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출고 중이라는 것을. 메시지를 보는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오죽하면 내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당장 달려가 아버지를 안아주며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옳은 일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연남동에 있었고 밤늦은 시간까지 그곳에 있어야 하는 처지였다. 휴대폰 즐겨찾기에 저장된 두 글자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엄마는 3초도 되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신난 목소리였다. 스피커 폰이라는 말에 나는 축하한다고 전했다. 고맙다고 답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맑았고 무해했다. 엄마는 얼른 구경하러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고 싶었지만 사정이 있어 내일 가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아버지의 세 번째 차가 아니라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목소리 넘어 보이던, 빈 곳 없이 행복이 깃든 그들의 주름 진 얼굴이었다. 파주로 드라이브나 가자는 말에 다음 날 오전 11시에 맞춰 부모님 댁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파주는 머니까 가까운 동쪽으로 가자고 했겠지만 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유로를 달리는 내내 당신은 운전해야 하니 옆에 앉은 나보고 이것저것 만져보라며 들뜬 목소리로 지시했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오랜만에 들어본 남자의 말투였다. 22년 만에 차를 바꾼 아버지에게 요즘 차는 스마트 폰을 처음 배울 때만큼이나 어려울 거였다. 나라고 익숙할 리 없었지만 대부분의 기능이 직관적이었기에(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차근차근 설명했다. 파주에 도착해선 한우를 먹었고 이런 날은 아들이 내야 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무슨 말이냐며 서둘러 계산을 마쳤다. 이미 전날 보험을 들어놨다며 돌아가는 길엔 나에게 운전하라고 했다. 기어코 아들을 운전석에 앉히려던 아버지의 계획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혀를 내두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게 운전을 맡기려 했던 건 당신이 얼마나 이 차를 갖고 싶었는지 그 자리에 앉아 함께 느껴보길 바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 시트와 룸미러를 적당히 맞추고 나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53분 내내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며(반자율주행 기능이나 패들 쉬프트 같은 것들) 아버지가 한 번에 절대 이해하지 못할 그런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부모님 집에 도착해서도 아버지와 나는 20분 동안 차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 기호에 맞게 잡다한 설정을 마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함께 있는 동안 뭐라도 해드릴 게 없을까 싶어 가죽으로 된 키 케이스를 선물하려고 슬쩍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까짓 거에 왜 돈을 쓰냐고. 그러면서 허튼 데 돈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늘 봐왔던 익숙한 모습의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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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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