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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Mar 15. 2024

17화. 라떼파파(2)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G

  - 직업 : 중소 제조기업 영업직원

  - 자녀(연령) : 남아1(1세)

  - 주양육자 : 아빠(G)

  - 기타 : 지혜의 이웃



 육아휴직으로 인해 G는 회사에서 유별난 별종으로 낙인찍혔고, 그의 편에 선 이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그럴거면 회사에 왜 다니냐, 민폐 장난 아니다, 혼자만 애 낳았냐, 별의 별 뒤엣말과 앞엣말을 구별없이 들었다. 

 휴직 직전날, 책상을 정리하고 회사를 떠나는 G를 상대로 팀원들은 나름 덕담을 건넨답시고 "잘 쉬다오세요."라고 인사했다.



 잘 쉬라니.

 "육아휴직"에서 중점 단어는 "휴직"이 아닌 "육아"였다. "휴직"은 회사 일을 쉰다는 뜻이지, 모든 일을 쉰다는 뜻이 아니었다. 집안일이 남아있었다. 

 하루종일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차라리 회사가 낫다라는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는 G였다.

 다행인건 아들 건의 분리불안증세가 G의 휴직을 시작으로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엄마의 우울증과 아이의 분리불안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선 아빠인 G의 역할이 크다는 담당의 말대로였다. 덕분에 아내의 웃는 얼굴도 날로 늘어갔고, 건의 증세도 완화되어 돌이 지나며 무사히 어린이집에 입소 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린이집 적응기를 거치는 중인 건이는 등원 후 딱 3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데려와야했다. 하지만 그 짧은시간 마저도 G에겐 꿀같은 시간이었다. 

 G는 유모차를 끌고서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따뜻한 카페라떼를 시키며 이것이 사람사는 거구나, 싶을 정도의 희열을 느꼈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아직 쌀쌀한 날씨였다. 오른손에는 온기가 적당한 라떼를 들고 왼손으로는 유모차를 밀고 있자니, 이것이 선진국 스웨덴의 '라떼파파' 아닌가 싶어 괜스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 바로 나, 라는 깨어있는 남성이 된듯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전쟁 직후 같은 집을 정리하고 청소, 빨래 등을 해놓자니 시간은 벌써 2시간을 훌쩍 지나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계에 급하게 한 끼 때웠더니 어느덧 건이를 데려올 시간이었다. 

 G는 다시 유모차를 끌고 어린이집을 향했다. 햇볕은 아침시간보다 더 따뜻해져 있었고, 차가웠던 바람마저 태양의 온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집에 곧장 가지 않고 건이와 놀이터라도 들러야지 마음먹었다.

 "오늘 건이, 엄청 잘 놀았어요. 친구랑도 사이좋게 잘 놀고, 응가도 시원하게 한 번 했어요. 이유식 싸주신것도 다 잘 먹었어요." 

 건이는 싱글거리며 G에게 다가왔다. 아직 주변에 관심 없는 듯한 건이가 친구랑 사이좋게 놀았다는건 선생님의 과장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어쨋든 잘 지낸 것은 맞는 듯 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건아, 오늘은 놀이터 들렀다 갈까?" 

 아직 말은 제대로 못 하지만, 알아듣기는 찰떡같이 듣던 건이는 "놀이터"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신이나서 양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우!우!" 소리내기 시작했다. G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흥이 오른 건이는 유모차를 거부하고서  제 발로 놀이터로 가겠다는듯 기저귀 불룩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새끼오리같은 귀여운 뒷태에 G는 핸드폰을 꺼내 연신 사진이며 동영상을 찍어댔다. 아내에게 귀여운 우리아이의 모습을 공유할 생각에 벌써부터 웃음이 나던 G는 놀이터 도착과 동시에 웃음을 거두었다. 


 놀이터에는 아이가 넷, 아이들 엄마로 보이는 이들이 넷, 총 여덟이 있었다. 아이들은 그네며 미끄럼틀이며 사방에서 제각각 놀고 있었고 엄마들은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선 각자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G와 건이 놀이터에 입장하자 그들을 위아래로 슬긋 훑는듯한 고압적인 그 시선이 G는 조금 거북했던 것이다. 


 G는 유모차를 구석쪽에 주차한 뒤 시소를 향하는 건의 뒤를 바짝 쫓았다. 시소 근처에서 돌멩이를 쌓고 놀고있던 여자아이 둘은 건이 다가오자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리 가! 이거 우리가 한거란 말이야. 밟지 마!"

 "그래, 가! 여기 우리 자리야. 너 여기 올거면 우리 허락받고 와."

 건이보다 많아야 두 어살 많아 보이는 당돌한 여자아이들의 텃세에 G는 어른답지 못하게 조금 화가 났다.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는데 혼이 나 어리둥절한 채 누나들의 돌쌓기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건이 안쓰러워보였다.

 "동생이 누나들거 건들인 거 아니잖아, 시소 타고 싶어서 온거야. 놀이터는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잖아."

 G는 상대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분노를 꾹 눌러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기세는 꺽일 줄 몰랐다. 심지어 소란의 기세를 눈치 챈 다른 곳에 있던 나머지 아이 둘까지 합세해 일을 크게 벌이고 있었다.

 "이 꼬마애가 여기 와서 우리거 부수려고 했단 말이예요!"

 냅다 소리를 치는 꼬마아이를 상대로 G는 같이 소리쳐야할지 망설였다. 진실로 열이 올랐던 것이다. 상대의 소란에 놀란 건은 이내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넷은 한 팀이 된 양 아 시끄러워! 소리치며 일제히 양 손으로 귀를 막았다. G는 한 대씩 쥐어박아주며 너네가 더 시끄럽다 혼내고 싶은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꾹 참고 나란히 서 있던 아이의 엄마들로 시선을 돌렸다. 구원의 요청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여전히 각자의 팔짱을 낀 채로 이곳에는 관심이 없는 듯 계속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그 중 한명이 G의 눈빛을 잠깐 살피고서는 고개를 아주 조금 빼며 이쪽을 보는가 싶더니 이내 수다로 돌아갔다. 무슨 할 말들이 저리 많을까.  

 어른들은 도저히 이쪽으로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아이들은 시끄럽다고 귀를막고선 자기들이 더 시끄럽게 소리쳐대고, 건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G는 그 곳을 떠나는 선택밖에 할 수가 없었다. 



 "놀이터에 오랜만에 간건데 10분도 못 있다가 나왔다고, 그 아줌마들 때문에. 왜 중재를 안 해."

 저녁을 먹으며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푸념하듯 털어놓는 G였다.

 "애들끼리 일이니까 그랬겠지. 자기가 애들을 잘 타이르지 그랬어, 아니면 아줌마들한테 도와달라고 직접 말 하든가."

 자신에게 공감해주길 바라며 말을 꺼냈던 G는 되려 야단을 맞는듯한 느낌에 항변했다.

 "애들이 타일러지는 애들이 아니더라니까. 귀막고 다른사람 말은 듣지도 않아. 잠시동안 성악설을 믿게되던데. 아줌마들도 아주 다리가 나무처럼 바닥에 딱 붙어서는 움직이질 않잖아. 고개만 쭉 빼더니 아예 무시하던데? 내가 아저씨라서 무시한건가?"

 아내는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떠먹으며 그게 무슨말이야? 라고 물었고, G는 식탁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그 시간에 남자라고는 나 하나뿐이거든. 등원할 때나 하원할 때나. 온통 엄마들 뿐이니까, 낯선 이 아저씨는 만만해보였나 싶고."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자기가 똑부러지게 얘기했으면 됐잖아. 이상한 열등감 있네?"

 "나도 하루아침에 이런게 아니라... 건이 데리고 마트라도 가잖아? 그럼 애기 이쁘다고 막 어르신들이 다가오신다? 몇개월이냐 묻고 그러면 답하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결국, 엄마는 어디갔어?라든지 아빠는 왜 회사 안 나가?같은 말들을 한다고. 그것도 한 두번이지, 계속 들으니까 내가 뭐 잘못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아내는 젓가락을 식탁에 탁 놓으며 말했다.

 "잘못은 무슨 잘못을 해. 진짜 웃긴 사람들이네. 엄마 어디갔긴 회사갔지. 아빠 왜 회사 안나가긴, 애 봐야되니까 안 나갔지. 별 오지랖들이야 진짜."

 G는 드디어 아내가 자신의 마음에 공감해주는 듯 해 그의 노여움을 반겼다. 본인보다 더 화를 내는 아내를 보니 자신의 것은 어느덧 가라앉는 것이다.

 "그래도, 난 육아휴직 쓴거 후회 안 해. 건이 보면서 자기가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느낄 수도 있고, 고마운 마음도 들고. 또 건이도 나한테 더 많이 붙고, 요즘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니까? 회사 복직하면 육아휴직 전도사라도 될까봐."

 G의 너스레에 아내는 미소지었다.




 '쓰지 말았어야 했나, 쓰지 말걸... 쓰면 안 됐어.'

 외따로 떨어진 공간의 텅 빈 책상에 앉아 G는 지난 날들을 후회하고 있었다. 때묻지 않은 하얗디 하얀 텅 빈 새 책상은 제 크기보다 커보여 G를 더 작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복직한 G는 조직도 내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감추었다기보다는 잘 숨겨져 있었다. '영업2팀'이었던 G는 이름도 생소한 '인사_기타'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런 팀이 있었나 싶었다.

 처음엔 인사팀에 발령이된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조직도 제일 구석에 숨겨져있는 '인사_기타'팀에는 수 년째 명예퇴직을 거부해 오고 있는 영업1팀이었던 부장12호봉 김부장, 네 번의 크리티컬한 업무실수와 다수의 자잘한 실수들로 입사 이래 최하위 고과만을 받았다던 전설의 개발1팀의 이주임, 그리고 G가 속해 있었다. 

 김부장과 이주임이 어디있는지는 G도 모른다. 그들도 G가 어딨는지 모르듯이. 

 인사팀이 안내한 자리는 창고인 줄 알았던 빈 공간의 자리였다. 뒷쪽에 물품 박스들이 잔뜩 쌓여있는것으로 보아선 창고가 맞긴 맞는 듯 했다. 


 처음엔 노동청에 신고를 할까 싶었다. 하지만 아내가 만류했다. 신고를 하는 즉시 회사원으로서의 생활은 마감되는 것이며, 아직 건이는 1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떻게든 인사팀에 잘 보여 작은 업무라도 조금씩 다시 맡아가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이 방을 보지 못해 하는 소리였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은 친구마저 그저 버티라 일렀다. 지방에 지사가 없는걸 다행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본인의 회사에선 육아휴직을 썼다가 연고 없는 지방으로 발령받았다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이다. 창고더라도 본사에 있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만 했다.



  텅 비어있던 책상 위에 건이와 아내의 사진 액자를 올려둔다. 신입시절에 읽었던 엑셀 책을 꺼내 의미없이 눈동자를 굴린다. 취업사이트를 뒤지다 적당한 공고가 없어 꺼버리고, 노동청 사이트를 들어갔다 책상 위 가족사진을 보며 이내 핸드폰을 엎는다.


 아침 출근길에 식사 대용으로 사두었던 따뜻했던 라떼가 어느덧 싸늘하게 식어있다. 

 미적지근한 온도에 향긋했던 커피향은 사라지고 비릿한 우유냄새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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