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H
- 직업 : 일용직 노동자
- 자녀(연령) : 여아 2(34세, 37세), 남아 1(31세)
- 기타 : 지혜의 엄마
- H : 엄마 오늘 이모들 만나러 갔다 온다.
- 지혜 : 오, 오랜만이네? 이모들한테 안부 전해 줘.
- 지민 : 오호, 이번엔 싸우지 말고 잘 다녀오라고.
- H : 싸우긴. 갔다 와서 톡 할 테니까 연락 안되도 걱정 말고.
딸들과의 단톡방에서 오늘의 일정을 미리 알리는 H였다. 모녀간 친목을 위해 만들었던 단톡방은 어느새 딸들이 H를 감시하는 창구가 된 듯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살아갈 딸들을 걱정하던 H였는데, 어느덧 입장은 뒤바뀌어 딸들은 고향에 남은 H와 그의 남편을 걱정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연락이 늦는다 치면 전화를 걸어와서 무슨 일이 난 거 아니냐, 아픈 거 숨기지 마라 호들갑들을 떨어댔다. 그 정도로 늙은 건 아닌데, 싶어 가끔은 딸들의 관심이 살짝 부담되기도, 씁쓸하기도 한 H였다.
H는 오랜만의 자매모임을 앞두고 평소 친구들과의 모임보다 한껏 더 신경 써 차려입었다. 위아래 세 살 터울의 언니와 동생은 H가 그런 것과 같이 묵직한 돌직구 날리기를 서슴지 않는 성격들이었다. 조금이라도 낡은 옷을 입고 왔다 치면 그 옷 언제 적 옷이야, 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 말들이 서운해 딸들에게 일렀을 땐 엄마도 우리한테 그러잖아,라고 대답하며 전혀 편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그랬나. 일주일 전 아울렛에서 건진 새 스카프를 목에 두르며 생각했다.
고상한 취향의 언니가 잡은 약속장소는 바닷가가 보이는 파스타집이었다. 이런덴 어떻게 알았대,라고 물으니 별스럽지 않다는 듯 친구들과 종종 오는 곳이라 답했다. 몇 입 먹자니 H는 자신의 친구들과 가던 칼칼한 닭볶음탕 집이 그리워졌다.
거의 1년 만에 만난 언니의 얼굴은 그보다 더 많은 세월을 담고 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돌아가시기 전 엄마의 모습을 언니는 많이 닮아있었다. 작년보다 머리숱이 적어졌고, 피부가 조금 꺼져있었다.
동생 쪽을 보자니 언니보다 더 못 볼 것이 되었다. 중력을 맞이하고 있는 피부를 어떻게든 끌어당겨 올려 보고자 무언가를 한 듯했는데, 차라리 자연스럽게 쳐져있는 언니의 얼굴이 낫다 싶었다. 우리가 하는 재밌는 이야기에 맘껏 웃지도 못하고, 입술은 벌에 쏘인 것 마냥 퉁퉁 부어있었다. 야, 너 이제 얼굴 건드리지 마,라는 말에 동생은 나 아무것도 안 해,라고 말했지만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부르퉁퉁했다.
딸들이 엄마 제발 다른 사람 얼굴 흉보지 말라고 했는데, 천성이 이래먹은 걸 어쩌나 반성 아닌 반성하는 H였다. 1년 만에 만난 자매들을 보며 곧장 눈코입 뜯어가며 평가하는 것이라니, 뜨끔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저들도 내 얼굴을 하나둘 조용히 살펴보는 것으로 보아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해 뭐 어떤가 싶기도 했다.
서로 자식들의 근황을 먼저 공유했다. 자랑할 일들은 앞서 다퉈가며 자랑하고, 숨기고 싶은 것들은 상대가 콕 집어 물어보면 어물쩍 답하며 넘어갔다. 먼저 말하지 않는 건 굳이 묻지 않았으면 하는데, 싶었지만 그건 상대들도 마찬가지겠지 싶었다. 하지만 도통 이놈의 버릇들은 고쳐지질 않았다.
예전에는 시댁 이야기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서로의 시댁을 헐뜯으며 네가 낫네, 아니 네가 낫네 서로 누가 누가 더 불행한 년인가 내기를 했었다. 자식들 얘기를 하며 내가 세상 행복한 사람이 된 듯 자랑을 하다 시댁얘기만 나오면 내가 천하제일 불쌍하다 이야기보따리들을 꺼내는 것이 참으로 모순적이긴 했지만, 언제나 대화는 그리 흘러갔다.
지금은 시댁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시댁 식구들과 연이 끊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제는 내가 시부모님이 되고, 시댁이 된 마당에 더 이상 시댁 흉을 볼 거리가 없었다.
그 영겁의 세월들의 고통을 어찌 견뎠을까 싶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곁에서 같이 흉을 떨어준 자매들이 있어 그나마 잘 버티지 않았나 싶어 새삼 그들의 존재가 고맙게 느껴지긴 했다.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받았던 일, 명절에 친정을 보내주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던 일, 음식을 잘하고 살갑던 형님과 비교당하던 일부터 해서 달에 걸러 한 번씩 있는 제사로 몸이 죽어 나가던 일, 시부모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똥오줌 받아가며 병간호를 했던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누이들한테 고맙단 말 한마디 못 들은 일까지.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이야기에 같이 욕해주고, 위로하고, 안아주었던 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일찍 돌아가신 자신들의 엄마를 더욱 그리워했더랬다.
딸 지민에게 배웠던 대로 파스타면을 포크로 집어 숟가락에 올린 뒤 돌돌 굴려가며 H가 말했다.
"얼마 전에 지혜가 그러더라, 엄마한테도 엄마가 있었을 텐데 보고 싶지 않냐고. 지 아들 낳고 키워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나."
"아이고, 지혜 철들었네? 그런 얘기도 할 줄 알고?"
못 본 지 한참인 조카가 어느덧 어른 같은 얘기를 했다는 생각에 H의 언니는 지혜의 얼굴을 힘겹게 떠올려보았다. 어릴 적 얼굴은 잘만 떠오르는데 몇 년 전 결혼식 때 보았던 얼굴은 도통 잘 떠오르질 않았다. 급히 떠오르지 않는 기억력에 병원을 가야하나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지혜는 요즘 뭐 하는데?"
H의 동생이 물었다. 그것은 H가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다. 도통 포크로 잘 말리지 않는 파스타면을 계속해 굴려보며 H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집에 있지. 아들도 보고."
"벌써 일 쉰 지 1년 된 거 아니가, 뭐라드라, 경력 끊기는 거. 그거 된 거 아니가."
대충 넘어갔으면 좋겠던 소재를 동생은 끈덕지게 파고 물었다. 그저 끄덕이고 있자니 이번엔 언니까지 합세해 물고 늘어졌다.
"그러게 H 네가 손주 좀 더 봐주고 내려오지 그랬노."
이야기가 점점 더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H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H의 덤덤한 반응에 동생은 무언가를 더 끌어내려는 듯 속을 박박 긁어댔다.
"그래, 회사도 좋은데 다녔는데 아깝다이가. 언니 내려와서 다시 청소일 하는 것보다 위에서 그냥 용돈 받으면서 손주 봐주는 게 더 낫지 않았나."
H는 파스타는 포기하고 니글거리는 속에 시큼한 피클을 집어먹다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만해라."
그제야 H의 동생은 만족한듯 입을 꾹 다물었다.
딸네부부는 저들이 알아서 아이를 보겠다고 H부부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물론 그 전에 몸이 삐그덕거리고 향수병 비슷한 마음의 병까지 찾아와 종종 우는소리를 하긴 했던 것 같다.
걱정 말고 내려가라더니, 딸 지혜는 H부부가 고향으로 내려간 다음 달, 일을 그만두었다고 고백했다. H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알아서 잘하겠다는 건 알아서 사람을 구해 아이를 잘 보겠다는 말인 줄로만 알았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딸이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둔다는 것인 줄은 몰랐다. 저 때문에 딸이 일을 그만둔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오는 H였다.
답답한 마음에 딸에게 모진소리를 했던 듯하다. 다른 딸들은 일 다니면서도 애 잘 보던데 너는 왜 그리 예민하냐, 알아서 잘하겠다는 게 이런 거였냐, 그러려고 대학까지 보낸 줄 아냐. 아이를 키우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다른 자식과의 비교를 함부로 해가며 딸의 마음에 생채기를 주었다. 어미로서 할 짓이 아니었는데, H는 후회했다.
내가 조금 더 버텨야 했을까, 그래도 친정어미라는 사람이 너무 내 생각만 한 것일까.
손주를 처음 봤던 날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세상천지에 그렇게 이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어린 시절 지혜를 닮은 것도 같고, 젊을적 남편을 닮은 것도 한, 눈코입 오밀조밀한 게, 뭐 이런 것이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애 셋을 장승처럼 키워놓고도 다시 갓난아기를 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림잡아 30년 전의 기억으로 애를 키우자니 모든것이 처음인 듯 서툴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손주를 안아주는 게 영 어설펐다. 제 아들 딸들도 손에 꼽게 안던 이였기에 손주라고 다를까 싶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H의 몸은 삭아갔다.
딸과의 싸움도 잦아졌다. 멀쩡한 내 집을 버려두고 낯선 곳에 올라와서는 셋방살이를 하는 신세를 하자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마님과 몸종이 따로 없었다. 딸은 칭얼대는 손주를 조금이라도 안아 올릴라치면 손때 탄다고 고함을 치질 않나, 어른 옷을 아기 옷과 함께 빨았다고 식겁잔치를 벌이질 않나, 무료한 오후에 티브이를 잠깐 틀었다고 난리난리 아주 생난리를 피워댔다.
사위는 또 어떤가. 장모님, 장인어른, 하면서 연신 살갑던 사위는 우리의 셋방살이와 함께 점점 퉁명스러워졌다. 퉁명스럽다기 보단, H네를 없는 취급했다. 그래, 그것이 맞는 듯했다. 우리가 용돈을 받아 타 먹어서 그리된 것일까. 여튼 사위는 예전같지 않았다.
되려 장인인 남편이 사위의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에 H의 속이 상한 적도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사위 좀 편하게 대해,라는 말에 남편은 어찌 그러냐 하며 마음속으로는 병을 하나 둘씩 쌓아갔다.
천사 같은 손주도, 달마다 손에 쥐어지던 용돈도, 상해 가는 몸과 마음 앞에서는 전혀 무용한 것이었다. 고향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손에 물을 묻혀 청소일을 하더라도 내 일을 하며 돈을 벌어먹고 쓰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툭툭 던지던 날, 딸 지혜가 먼저 제안했다.
"엄마, 이제 아빠랑 내려가도 된다.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분명 알아서 한다고 하던 딸이었다. 분명 알아서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