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 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H
- 직업 : 일용직 노동자
- 자녀(연령) : 여아 2(34세, 37세), 남아 1(31세)
- 기타 : 지혜의 엄마
딸 지혜를 떠올리자 아픈 손가락이 깨물린 듯 가슴께가 영 아프고 도저히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 H였다. 언니는 왜 이런 소화도 안 되는 밀가루 음식점에 데려와서는, H는 괜스레 언니를 원망했다.
예상보다 더욱 길어지는 H의 침묵에 그의 동생이 조금 미안해져서는 말문을 열었다.
"근데 뭐, 지혜가 맞지.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요즘 애들은 친정엄마가 지들 애 봐주는 거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잖아?"
H의 언니 역시 H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보탰다.
"맞다. 내도 작년에 첫째 손주가 학교 들어간다고 갑자기 내 손 필요하다해서 서울 갔다왔다이가. 가시나 웃긴게, 사돈네는 애들 집에서 20분 거리에 살고 내는 비행기 타고 가도 네다섯 시간은 걸리는 거리에 사는데 내를 부르드라. 근데 뭐 어쩌겠노. 딸이 부르니까 갔지. 내가 안 가면 딸이 고생하니까."
언니의 고충을 듣고서 그제야 마음이 조금 눅어진 H는 입을 열었다.
"맞재. 내가 안 가면 딸이 고생하니까 안 갈 수가 있나. 지도 뭐 엄마 고생 시키고 싶었겠나. 하다 하다 안되니까 손 뻗쳤겠지. 뭐 딸 같은 며느리라고 한다 해도 어디 그게 진짜 딸 같겠나. 진짜 엄마 같겠나. 그래도 엄마가 제일 편하고 의지되니까 부른 거겠지. 그랬던 거를, 내 욕심에 버리고 온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
언니들의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막냇동생이 답답하다는 듯 반박했다.
"웃긴 가시나들 아니가. 30년 가까이 고생해서 지들 키워놓고 이제 좀 편해져서 살라카는데, 애 덜렁 낳아놓고 또 애 봐달라 하고. 그라고 어디 친할머니는 자기 손주 아닌가. 육아는 친정 시키고, 제사는 시댁 가서 하고. 아직 우리나라 멀었다 멀었어. 내는 우리 딸내미가 애 낳아도 절대 손주 안 봐줄 거다. 허리상하고 무릎상하고 이 나이에 그 무거운 거 들고 다니면서, 좋은 소리는 하나도 듣도 못하고."
딸이 결혼을 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손주 소식이 없어 내심 전전긍긍하던 동생이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를 자기는 봐줄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는 그를 보며 태어나면 말해라,라고 내뱉을 뻔 한 걸 꾹 삼키는 H였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한 말이었다. 말을 삼킨 자신이 대견했다.
하지만 H는 제 입을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다른 이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삼켰던 말을 옆자리 언니가 내뱉고 있었다. H의 것보다는 조금 순화해서.
"그래, 걔네는 와 아직 소식 없노?"
동생은 입을 삐죽 대며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손주를 절대 봐주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피력하던 기세는 어디 가고 축 쳐져서는 대답했다.
"몰라, 애들 생각을 도통 알 수가 없다. 아 낳을 생각은 안 하고 어디서 개를 데리고 와가지고는 키운다고 안 하나."
'개'의 등장에 H와 그의 언니는 동시에 아이고, 탄식했다. 그들에게 있어 개는 출산의 최대 적이었다. 암묵적인 딩크선언과도 같았다.
"우짜노."
짧은 단어로 모든 심정을 표현해 보는 H였다. 동생 역시 딸네의 생각에 속이 답답한 듯 명치 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대답했다.
"우짜기는. 알아서 하겠지 뭐. 언니네 딸들 애 낳아서 고생하는 거 보면은, 그냥 개나 키우면서 살아라, 싶다가도 또 언니들 카톡 프사에 손주사진들 보면은 하나 정도는 보고 싶기도 하고. 다시 그저 내 욕심인가 싶고. 하루에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그제서야 자신의 속마음을 기탄없이 털어놓는 동생의 한숨 섞인 말에 H와 그의 언니는 동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중 막내가 벌써 이렇게 늙었구나, 싶다가 H는 문득 조금은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버린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지금 언니의 나이에 엄마가 돌아가셨구나, 싶어 세월의 속도에 다시금 놀라며.
"엄마는 우리 세 자매, 아니다, 우리 사 남매를 어떻게 그래 혼자 키웠나 모르겠네."
H는 집안 살림을 거덜내고 자취를 감춰버린 오빠의 존재를 잠깐 잊었다가 불현듯 떠올라 고쳐가며 말했다. 그 모습에 그의 언니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는 뭐, 육 남매가 기본이고 칠 남매, 팔 남매 이래 키웠으니까 그게 대수롭지 않았겠지. 오히려 우리 집이 애들이 적은 편이었잖아."
언니의 말에 동생들은 웬일로 박자를 맞춰가며 하나가 되어 고개를 주억댔다. 하지만 애들이 적은 편이라고 해도 각기 다른 개성의 4남매를 키우기에 엄마는 만만치 않았을 성 싶었다. 원양어선을 타던 아빠는 한 번 배를 타면 대여섯달은 기본으로 집에 들어오질 않았었다. 엄마 혼자 키웠다고 해도 무방했다.
큰 오빠를 밑으로 줄줄이 딸만 셋을 낳았던 엄마였다. 이번에도 혹시나 아들, 이번엔 혹시나, 이번엔, 싶어 낳았는데 딸만 셋이 더 늘었다고 엄마는 종종 신세 한탄하듯 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런 엄마는 공부에 흥미 없던 오빠를 좋은 고등학교에 넣으려 뒷돈을 대기도 했고, 사업을 하겠다고 손을 벌리는 그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온 집안 재산을 탈탈 털어줬었다. 엄마 제발, 제발, 이번엔 오빠한테 돈 주지 마라, 아무리 뜯어말려도 소용없었다.
환갑이 넘어 엄마는 그간의 고생에 대한 대가를 한꺼번에 받는 듯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갔고, 갖가지 합병증을 얻은 채 병상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딸들을 떠났다. 임종까지 오빠는 엄마의 앞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더 이상 아낌없이 줄 돈이 없어진 이후부터 그는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마지막까지 눈앞의 딸들을 두고서 행방이 묘연한 오빠만을 찾았더랬다.
엄마의 애달픈 외사랑을 기억하고 있자니 어쩐지 입이 까슬하니 쓴 맛이 나는 듯한 H였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니 언니가 엄마를 닮은 얼굴로 그의 입장을 대변하듯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우리 애 낳을 때마다 딸네들 집에 들러서 적어도 일 년씩은 손주 봐줬던 거 생각 안 나나. 내 낳고 난 니 첫째, 다시 내 둘째, 다음에 니 둘째, 아주 줄줄이 해마다 우리가 번갈아가면서 애 낳고 엄마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산후조리 해줬다이가."
그랬다. 엄마는 경상도 권역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H의 자매들이 아이를 낳을 때마다 돌아가며 그들의 집을 방문해 손주들을 돌봐줬었다. 결국 엄마 역시 그들과 같았다. 딸을 가진 엄마였다. 오빠에게 물색없이 돈을 퍼주었을지언정 딸들에게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H가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딸을 낳은 때였다. 엄마는 행여 제 딸이 시댁에서 구박받진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를 낳은 그날 바로 H의 집으로 달려왔다. 우짜노, 우짜노 걱정하면서도 두텁고 손맛 좋은 그 손으로 미역국 한솥을 금세 뚝딱 끓여냈었다.
뭘 우째, 이미 낳은걸. 괜스레 퉁명스레 엄마에게 내뱉은 말들에도 엄마는 대꾸 않은 채 미역국에 몇 가지 반찬을 차려놓고 얼른 먹으라 이른 뒤 묵묵히 갓난아이를 들쳐업고 엉덩이 두드려가며 낮잠을 재웠더랬다. 사실 시댁의 예상되는 핀잔에 H는 두렵기도, 걱정되기도 했지만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는 것이었다.
소고기 미역국을 싫어하는 까탈스런 딸을 위해 하얀 가자미살을 넣고 끓여낸 뽀얀 미역국을 후루룩 떠먹으며 베란다 창가의 햇살 받고서 손주를 둥게질하는 엄마를 바라보던 때가 선연히 떠오르는 H였다. 그의 눈에 괜스레 눈물이 맺혔다.
"시대가 변한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변했다. 그체?"
엄마 생각을 떠올리다 눈물을 훔친 게 조금은 민망했던 H는 말꼬리를 돌리며 자매들을 향해 말했다. 자매들 역시 H의 발언으로 그제야 자신들만의 생각 속에서 빠져나온 듯 한동안 멍하게 H의 말을 곱씹다 이내 고개 끄덕였다.
"그러게, 딸이 애 낳으면 친정엄마라서 달려가고, 혹시나 딸 낳아서 시댁에 밉보이진 않을까 걱정하고."
그 옛날의 엄마와 본인, 그리고 딸을 순서대로 떠올리며 H가 말했다.
"내처럼 애 낳고 집에 앉지 말라고 공부시키고 다 해놨드만 다시 내처럼 집에 앉아있을까 봐 걱정되고 그라네. 내가 계속 도와줬어야 되는 게 맞는데. 아니면 애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공부를 시켰어야 하는 긴데."
계속되는 H의 자책에 자매들은 그렇지도 않다고 그를 토닥였다. H의 언니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봐라. 둘째 딸내미 애 낳고서도 일 계속하라고 선생님 시켜놨드만은 이제 와서 가르치는 게 자기랑 안 맞다고 다른 거 한다 안 하나. 어디 자식들이 내 마음대로 되겠나. 애 낳고도 계속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게 당연한 세상이 와야될낀데. 이때쯤 되면 안 오겠나 싶었드만 아직이네."
자신들의 삶과 다른 듯 닮은 딸들을 떠올리자니 미안하기도, 안쓰럽기도 한 마음이 하나둘 떠오르는 자매들이었다. 서로를 뜯어가며 비교하고 이리저리 재던 시간들은 옅어지고 같은 마음으로 서로의 처지를 나누고 토닥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제야 핸드폰을 열어보는 H였다. 식사 중에는 핸드폰을 잘 열지 않아 연락을 받지 않았더니 메신저가 14통이나 와 있었다. 딸들과 있는 단체방이었다. 또 걱정을 끼쳤나 싶어 미안한 마음에 방금 모임이 끝났다고 얼른 단체방에 일렀다.
- H : 이제 집에 간다.
- 지혜 : 재밌게 노셨나요?
- 지민 : 재밌는 소식 없어?
- H : 막내이모 얼굴이 빵빵해서 터질라 하드라.
- 지혜, 지민 : 아 엄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딸들의 활짝 웃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반응에 H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이게 H였다. 딸들을 웃기고 싶은, 아직은 그들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싶진 않은, 내 손으로 내 일을 하고픈.
딸의 힘든 육아에 도움은 되지 못하고 발을 뺀 무정한 엄마였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야겠지만, 지금으로서 그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딸에게도, H 자신에게도, 더 나은 세상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