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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함과 브랜드

사소한 경험이 브랜드 이미지가 된다

by 융융김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안녕하세요? 오늘의 호스트 융융입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고민하던 중 정말 사소했던 브랜드 경험들이 떠올랐어요.

구매를 결정하는 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만큼 사소한데 왜 이렇게 기억에 남을까?

그래서 오늘은 직접 겪어본 브랜드 경험들과 그것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 공유해 보려고 해요. (비록 디자인 토크는 아니지만!)




#1 손님, 죄송하지만 안 되세요.


여러분은 무형의 브랜드를 '체감했다'고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저의 처음은 프라이탁이었어요. 5년 전 지갑을 사러 프라이탁 매장에 들렀습니다. 고른 지갑을 결제하러 가니 종이백 대신 3,000원에 리유저블 에코백을 살 수 있더라구요. 디자인도 예쁜 데다가 쌀포대(?) 같은 방수 재질이 곧 다가올 여름에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죠. '이 멋진 에코백이 고작 3,000원이라니!' 저는 추가로 하나 더 구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거절당해버렸다!


이유는 구매한 제품 수량에 맞게만 에코백 제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아니, 돈을 더 내겠다는데도 살 수 없다구요? 하지만 거절당했음에도 전혀 기분나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프라이탁의 철학을 위배하지 않기 위한 방침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챘으니까요.


- 종이 쇼핑백 대신 리유저블 에코백 판매
- 사용한 에코백이더라도 매장에 되돌려주면 금액 환급
- 구매 수량 이상으로 에코백 추가 구매 불가능


'브랜드도 고집을 부릴 수 있구나!'

이유있는 불응, 제가 처음으로 브랜드를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구매했던 지갑과 리유저블 에코백




#2 박스를 만졌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진다?


또 사소하지만 인상적인 기억이 뭐 있을까 더듬어보니 애플의 패키지 박스들이 떠오릅니다. 화려한 후가공 없이 고급진 무광코팅, 보드러운 감촉, 상단 박스를 들어올릴 때 꽉 차 있지만 스무스하게 열리는 감각... 너무 비싸네, 카메라가 징그럽네 불만하다가도 박스를 여는 순간만큼은 다 잊고 그냥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맥 박스를 처음 개봉할 땐 정말로 범블비가 변신하는 줄 알았어요. 박스 내부 공간을 허비하지 않고 구성품이 완벽하고 완전하게 들어맞는 쾌감.. 미감과 기능 뭐 하나 놓치지 않습니다. 이게 좋아서 괜히 버릴 수가 없어요. 아마도 용도 잃은 애플의 박스들을 어딘가에 소중히 모아두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좌 - 아이폰 패키지 / 우 - 아이맥 패키지 언박싱



애플 박스에 갖는 애착, 사실 우연이 아닙니다.

2007년 첫번째 아이폰 출시 당시 애플은 2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고 그 중 하나가 이 패키지 박스라고 합니다. 상단 박스를 들어올릴 때 잠깐 멈추는 적절한 저항력은 당연하게도 의도되었고, 상자가 열릴 때 나는 '후우-' 소리 또한 박스에 주입된 공기 때문이라고(...) 아이폰을 경험하는 '첫 단계'인 패키지를 만드는 데에만 수천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요.


아래는 애플 포장의 심리학을 정리한 글입니다. 정말이지 변태 같아요..


https://www.readtrung.com/p/psychology-of-apple-packaging




#03 제가 그리우신가요? 그렇다면 또 가는 것이 인지상정


캐나다의 Aritzia라는 의류 부티크 브랜드가 있습니다. 당시 워홀러였던 저에게 Aritzia의 옷은 부담스러운 가격대였어요.(지금 생각해도 비싸네요...) 고심 끝에 구매하고 집에 돌아와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는데 쇼핑백 바닥에 이런 문구가 써있었어요. "we miss you already." 이 문장 하나로 '비싼 옷을 산 기억'이 '또 가고싶은 기억'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받은 Aritzia의 쇼핑백



인터뷰를 찾아보니 Aritzia 브랜드의 대표, 사소함에 진심이었습니다.

40년 전 설립된 이후로 매장의 계산대, 탈의실 동선, 전신 거울, 퍼스널 스타일리스트 직원, 커피바 등 작은 디테일 하나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Aritzia의 고객들은 매장 방문을 선호해 팬데믹 이후로도 오프라인 매출이 온라인 매출보다 여전히 높다고 해요.


"리테일 매장은 단순히 옷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죠.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이제는 선택권이 생겼으니 고객이 다시 매장을 찾을 만한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죠." - 맨 브라이언 힐 (Aritzia 창립자)





브랜딩의 권위자 데이비드 아커(David Aaker)에 따르면, 브랜드 정체성과 브랜드 이미지는 주체가 다릅니다. 브랜드 정체성이 브랜드가 스스로 정의내린 본질이자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라면, 브랜드 이미지는 소비자가 실제로 브랜드를 인식하는 감정, 인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소함’은 브랜드 이미지의 ‘한 끗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해요.

앞서 공유한 경험에서 쇼핑백이나 패키지는 브랜드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도 아니며 직접적인 제품 구매 요인도 아닙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에 더 인상적으로 와닿는 건 아닐까요? '어머머,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쓴거야~?'


이쯤 되니 다른 사람들의 경험도 궁금합니다.

지인들에게 '이런 것까지 신경썼다고?' 싶은 기억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대학 동기 J (패키지 디자이너)



J가 보내준 환타 캔의 바코드 사진이에요. 페트병 모양의 바코드라니! 귀여운 디테일입니다.

어랏?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는데 페트병 실루엣이 대칭이 아니네요? 찾아보니 환타 페트병 디자인 중 과일을 착즙하듯 트위스트된 형태의 'Sprial Bottle'이 있었습니다. 늘 캔으로만 마셔서 몰랐는데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재밌는 포인트였어요.




직장 동료 M (브랜드 디자이너)



M이 최근 방문한 카페에서 받은 대기표입니다. 직접 그린 손그림과 무심코 찢어준 종이가 진동벨과는 확실히 다른 인상을 주었을 것 같아요!




직장 동료 Y (브랜드 디자이너)

원티드 뉴스타트 패키지 (슬프게도 2023년 제공이 종료되었다고 합니다)


원티드를 통해 이직한 Y는 합격 보상금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뉴스타트 패키지를 받았다고 해요. Y는 이 기억이 좋아서 다음에도 원티드를 또 이용하고 싶다고 생각했대요. (하지만 나를 떠나선 안 돼...)


아래 글에서 뉴스타트 패키지를 만든 과정과 사용자를 위한 세심한 고민을 엿볼 수 있어요. 자신의 업무 유형에 따라 매칭되는 캐릭터도 하찮고 귀엽습니다.


https://brunch.co.kr/@wanteddesign/16




직장 동료 B (전략 컨설턴트)

최근 가민 스마트워치를 산 B. 가민을 쓰기 이전에는 애플워치를 사용했었는데요. 가민을 써보니 애플워치는 알림 종류에 따라 햅틱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대요. 듣고나서 생각해보니 저도 진동 강도로 전화인지, 앱 푸쉬인지, 운동 알림인지 미리 구분하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버튼 클릭감도 차이 난다며 눌러보라는 그..)



좌 - 가민 포러너 165 / 우 - 애플워치 10






In a Shake!


저는 지금 '사소함' 게슈탈트 붕괴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대체할 단어를 찾지 못했어요.ㅎㅎ

지겨우시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사소함'을 언급해도 될까요?

허락해 주심에 미리 감사드리며 저는 이만 오늘의 토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 사소한 디테일은 브랜드 이미지에 한 끗 차이를 만든다.

-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더 인상적일 수도?


자, 여기서 질문-!

- 의외의 사소한 순간에 브랜드를 인지한 경험이 있나요?
- 그 경험을 통해 브랜드에 더 호감을 갖게 되었나요?
- 반대로 사소한 일로 좋았던 브랜드 이미지가 깼던 기억이 있나요?


기억나는 브랜드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쉑 댓 브디브디는 다음주에 더 재밌는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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