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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패키지, 꼭 맛있어 보여야 할까?

언제나 고민되는 패키지 디자인 방향성

by 융융김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안녕하세요? 이번주의 호스트 융융입니다.

요즈음 디저트 패키지 디자인을 공부할 일이 생겼어요. 여러 방면으로 리서치를 하는데 문득 궁금하더라구요.

"식품 패키지, 꼭 맛있어 보여야 할까?"

패키지 디자인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식욕을 돋구는 컬러, 맛있는 식감이 느껴지는 그래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됩니다. 반대로 어느정도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목을 끄는 과감한 방향성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저와 동료 디자이너들은 늘 그 갈림길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는데요. 때문에 클라이언트 보고 때 아주 맛있어 보이는 시안과 개성이 뚜렷한 시안이 함께 가곤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직접 하나의 디자인을 결정해야 한다면, 우리는 이 갈림길 중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오늘은 각각의 사례를 살펴보고 나름대로의 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해요.





먹음직스럽다!


패키지를 맛있어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로는 컬러, 그래픽, 레터링, 씨즐컷* 등이 있겠습니다. 그러한 요소들을 잘 활용한 사례를 살펴볼게요.

(*씨즐컷(Sizzle Cut): 음식 사진에서 음식의 맛과 식감, 풍미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진 기법)




#01 매그넘 Magnum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브랜드 매그넘의 패키지를 볼까요? 매그넘의 가장 큰 특징인 초콜릿 코팅이 바삭하게 깨지는 모습을 패키지 전면에 적용했어요. 이 이미지를 보는 순간 입 안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진한 초콜릿과 그 속에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의 맛이 떠오릅니다. 맛있게 먹은 기억을 자극하는 패키지네요.





#02 버거킹 Burgerking

제가 정말 좋아하는 리뉴얼 사례인 버거킹입니다. 풍부하고 과감한 일러스트, 식욕을 돋구는 난색 계열의 컬러감, 포장지에 꽉 차있는 타이포그래피까지 굉장히 맛있어 보이지 않나요? 재료를 아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살짝 부연하자면,

버거킹은 2021년 리뉴얼 당시 브랜드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네 가지 디자인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첫째, 군침이 돌게(Mouthwatering)
둘째, 장난스럽게(Playfully irreverent)
셋째, 크고 과감하게(Big & Bold)
넷째, 위풍당당하며 진정성 있게(Proudly true)


위 방향성 정말 잘 반영되었죠? 이 리뉴얼을 통해 버거킹은 더이상 주목받는 가치가 아닌 패스트푸드의 속도감에서 벗어나 이전의 로고로 돌아갔습니다. 브랜드의 본질을 찾은 의미있는 리브랜딩 사례라고 생각해요.


버거킹 로고 변천사 (출처: 1000 Logos)




#03 초바니 Chobani

미국 그릭요거트 대명사 브랜드인 초바니입니다. 초바니 또한 리뉴얼을 통해 브랜드 톤앤매너를 재정립했는데요. 리뉴얼 전과 후를 비교해보니 확연히 제품이 맛있어 보입니다. 딱딱한 고딕서체에서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지는 레터링으로 변화하면서 그릭요거트 브랜드다운 로고가 되었어요. 아이시한 화이트보다는 약간의 미색이 더해져 부드럽고 풍부한 인상을 전하면서, 고급스러운 원재료 일러스트를 사용해 제품의 맛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주 비싼 유기농 마트에서 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좌 - before / 우 - after


좌 - before / 우 - after






버거킹과 초바니 사례를 보니 통통하고 유기적인 레터링 획에서 느껴지는 '맛있어보임'이 상당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제과브랜드인 메이지에서도 식감이 느껴지는 레터를 사용했는데요. 글자를 입에 넣으면 왠지 크리미할 것 같죠?


메이지 로고



위에서 살펴본 패키지 디자인들, 식품 패키지의 정수를 보이고 있습니다. 색감, 식감, 연상 등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 “우리 진짜 맛있겠지!”를 외치고 있어요. 그렇다면 ‘맛’이 아닌 다른 것을 어필하는 패키지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맛있을라나? 그치만 눈길이 간다!



#01 포틀럭 Potluck

포틀럭은 미국에서 런칭된 한국 식료품 브랜드입니다. 깔끔한 고딕서체, 채도 높은 별색, 직선적인 면 그래픽. 패키지만 봤을 땐 문구류 브랜드 같아보이기도 해요. 그러고보니 얼마 전 선물 받은 노트와 닮은 것 같기도?!

한식을 먹으며 자란 한국 혼혈인 포틀럭 설립자 젠 아르노스는 한식이 포틀럭(Potluck: 사람과 음식이 모이는 모임)같다 생각했대요. 패키지에 활용된 그래픽은 한국의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았는데요, 한식은 하나의 요소로 정의되지 않는 태피스트리와 같아서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보자기와 닮은 그래픽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전에 본 적 없던 장 패키지, 이건 뭘까 궁금하게 만듭니다. 만약 한국 마트의 매대에서 타 브랜드들과 놓여있다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겠네요. 어쩌면 호기심에 브랜드를 한 번 검색해 볼지도요!




왼쪽부터 포틀럭, CJ제일제당, 청정원, 샘표 고추장 패키지




#02 토니스 초코론리 Tonny's Chocolonely

이제는 올리브영에서 볼 수 있는 초콜릿입니다. 2년 전 회사에서 선물로 받았을 때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알록달록한 컬러와 장난스러운 레터링, 제멋대로 조각난 초콜릿까지. 다른 제품에선 본 적 없는 특징들이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거든요.


당시 선물받았던 토니스 초코론리


알고보니 삐뚤빼뚤한 초콜릿 조각, 초콜릿 산업의 비대칭성을 보여주는 의도된 불편함이라고 해요. 2005년 네덜란드의 기자가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실태를 보고 충격을 받아 노동 착취 없이도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토니스 초코론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카카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이 브랜드는 카카오 1톤을 구매할 때마다 공정무역 프리미엄 200달러와 더불어 자체 프리미엄 175달러까지 총 375달러를 지급합니다. 때문에 네덜란드의 다른 초콜릿보다 두 배 이상 비싸요. 하지만 네덜란드 초콜릿 시장점유율 1위, 무려 20%를 붙잡고 있습니다. 공정성과 수익성을 모두 잡은 셈이죠.





#03 유나이티드 소다 United Sodas

팬데믹 시기에 나왔던 미국의 소다 브랜드입니다. 캔 패키지에는 오직 컬러와 텍스트만 쓰였습니다. 정말 미니멀하죠? 패키지에서 이미 보이듯 유나이티드 소다는 '단순함'에 중점을 두었다고 합니다. 간단하고 건강한 재료로 만든 심플하게 맛있는 소다, 매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심플한 쇼핑경험. 그 뿐만 아니라 '무지개로서의 미국', 즉 미국의 다양성을 가장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고자 했대요. 오늘날 많은 브랜드가 혼잡해지고 있는 시장에서 유나이티드 소다는 단순함과 맛에 집중함으로써 되려 두드러집니다.






실제로 구매에 영향을 미칠까?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몇가지 품목을 살펴보았습니다.



먼저 치즈 코너를 볼게요. 종류가 정말 많아요. 확실히 음식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거나, 딱딱한 고딕 계열보다는 곡선적이고 꾸밈있는 폰트를 활용한 패키지가 더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유기농 아기 치즈는 좀 물티슈 같다는 생각도...




그 다음은 파스타 소스 코너입니다. 깔끔하고 미니멀한 스타일부터 장식적인 디자인까지 다양합니다. 손수 정성껏 요리할 것 같은 폰타나의 빈티지한 패키지가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어요. 왠지 이 브랜드만의 맛있는 레시피가 있을 것 같달까요?



그리고 저는 현재 도쿄에 있습니다. 온 김에 일본의 편의점과 마트도 살펴보았어요.

비교보다는 기억에 남는 패키지들을 가져왔습니다.



제 발길을 멈춘 패키지입니다. 씨즐컷의 윤기가 남다르지 않나요? 따뜻하고 녹진한 국물과 바삭한 크루통이 참 먹음직스러워요.




이 아이스크림은 반드시 쫀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건 살짝 충격이었던 즉석밥 코너예요. 블랙, 레드, 채도 높은 컬러..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미지...! 제가 이 순간 즉석밥을 사야했다면 도대체 무엇을 사야하나 꽤나 망설였을 것입니다.


확실히 육안으로 볼 때는 미묘한 색감 차이와 사진 퀄리티가 제품을 선택하는 데에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특히 외국어로 된 패키지에서는 언어 장벽이 있다보니 이미지가 미치는 영향이 더 크게 느껴졌어요.






In a Shake!


오늘은 식품 본질에 충실하고 먹음직스러운 디자인과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디자인을 살펴보았어요. 대체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중적인 제품들은 ‘맛있어 보임’을 통해 제품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함께 입점한 경쟁사 제품들 사이에서 소비자의 즉각적인 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니까요.

그에 반해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패키지는 브랜드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지언정 고객들이 언제 알아봐 줄지, 알아봐주긴 할지 확언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시간을 들여 브랜드 철학과 메시지가 끝끝내 소비자에게 닿는다면 비교할 수 없는, 소위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만들게 되겠죠? 소비하고 싶은 제품을 넘어 브랜드가 되는 순간일 겁니다. 결국 '당장 팔아야 하는가?'의 질문 아래 브랜드를 어떻게 포지셔닝 하느냐에 따라 패키지는 달라질 거예요.


- 먹음직스러운 패키지는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구매 데이터가 적은 카테고리에서는 더욱!

- 하지만 꼭 맛있어 보일 필요도 없다. '맛'보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면!


오늘도 몇 가지 질문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 만약 여러분이 F&B 패키지 디자이너가 되었다면, 어떤 디자인 전략을 택할 것 같으신가요?
- 평소에 식품을 구매할 때 가장 고려하는 요인은 무엇인가요?
- 유독 좋아하는 식품 패키지가 있나요?


오늘도 쉑 댓 브디브디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쟈님의 글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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