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달라서 인상적인 디자인들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지난 주 융융김님의 글, <식품 패키지, 꼭 맛있어보여야 할까?>를 읽고, ‘디자인이 먼저 전하는 인상’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식품은 식감도 식재료도 다양하기에 보는 재미가 있잖아요. 그래서 아예 식품 사진을 넣는다거나, 도무송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추가하여 침샘과 구매욕을 자극하죠.
하지만 주류의 경우, 겉보기에 색만 다르고 '액체'라는 텍스쳐는 동일합니다. 패키지에 이 액체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매우 중요한 카테고리인거죠.
그래서일까요? 인상적인 라벨을 보면 찍어두게 됩니다. 그런 라벨이나 패키지는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참 재밌는데요, 제 눈을 즐겁게 했던 디자인들과 함께, 몇 가지 브랜드를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와이너리 '슬로 다운 와인즈'의 섹슈얼 초콜릿. 작년, 방문했던 장소의 다찌석에서 우연히 이 병과 마주 앉게 되었는데요. 연필을 사용한 손글씨로 빽빽히 채워 쓴 라벨이 적당한 위치에 붙어 있는 게 좋았어요. 특히 마지막 마감 부분까지 블랙으로 처리해 블랙&화이트의 단촐한 인상을 강화하는게 마음에 듭니다.
이 라벨을 앞에 두고 읽지 않거나 찍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글씨만 보면 단 한번의 연습 없이 죽 써내려간 것처럼 글줄도 정갈하지 못하지만, 도톰한 질감이 보이는 종이를 택한 점, 사방이 45도의 사선으로 마감된 단호한 귀퉁이를 보세요. 대충 휘갈긴 글씨를 찍은 게 아닌, 의도된 디자인임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읽어보게 되더군요. 이 바틀의 시작을 담은 다소 디테일한 이야기가 적혀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지막에는 제작자들의 번호까지 남겨져 있어요.
이 와이너리가 궁금하다! 호기심이 들어 홈페이지에 방문해보았어요.
Seriously good wine that Doesn’t take itself too seriously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심각하게 좋은 와인
소개부터 'seriously' 위트 있네요. 이 와이너리는 20대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와인을 마시다가 직접 만들어 학생들에게 팔기 시작한 브랜드라고 해요. 그리고 제 시선을 사로잡은 라벨의 주인공, Sexual Chocolate은 첫 작품이자 오래도록 사랑받는 시그니처 작이라고 합니다. 유서 깊은 가업도 아니고, 돈이 아주 많았던 것도 아니며, 포도밭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던 독특한 와이너리. 마치 스타트업처럼 대학교 친구들과 우리도 한 번 해볼까 하며 얼렁뚱땅 시작한 곳. 독특한 라벨 디자인은 뻔하지 않은, 그들만의 유니크한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현 CEO인 Brandon의 인터뷰 일부를 보면 그가 디자인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어요.
Q. 소비자로서의 경험이 와인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A. 물론이죠.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제가 패키지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라벨이 멋지다고 생각되면 패키지가 마음에 들어서 너무 비싸지 않으면 보통 그 병을 사게 되죠. 사람들은 그게 함정이라거나 헛소리라고 말하지만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와인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와인 가게에 가면 우리 병이 진열대에 있는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패키지의 일부입니다.
출처 | VICE magazine 인터뷰
의도된 디자인으로, 남들과는 다르다는 의도된 다름을 디자인을 통해 보여주는 곳. Sexual Chocolate의 비주얼만 보았을 땐 프리미엄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존 프리미엄 와인 라벨이 바로크 음악이라면, 이 와인 라벨은 존 케이지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알아보며 광고 이미지나 웹사이트, 다른 와인 라인업을 보니 B급 감성을 추구해서 반전이었다는 점. Fun한 B급을 추구하는..? 알아볼수록 제 취향과 점점 멀어져 버렸어요. 하지만 그만큼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아닐지 싶습니다. 어떤 이미지냐면요, 이런 식의 이미지를 많이 쓰더라고요. (부담스러움 이슈로 한 장만 보여드릴게요) 참고로 이 분이 CEO랍니다?
이들이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바틀 단독으로만 보았을 때 프리미엄하고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건 해가 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소주는 제조 방식에 따라 희석식과 증류식,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희석식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초록 병에 든 대중적이고 저렴한 소주들이고, 증류식은 화요나 일품 진로처럼 프리미엄한 라인이에요. 같은 소주라도 희석식 소주들은 대체로 일상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를 원하고, 증류식은 좀 더 다양한 가치들을 담고 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같은 소주라도 두 라인이 추구하는 디자인도 다르지요.
우선, 증류식 중 눈에 띈 디자인들입니다. '프리미엄'을 애초에 밀고 나가기 때문에 초록 병을 탈출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바틀 디자인도 자유로워요.
원소주
박재범의 원소주. 출시 당시 품절대란의 대란의 대란을 일으키며 아주 핫했었지요. 한국 소주의 세계화를 목표로, 국가대표 소주가 되겠다는 원소주의 포부는 건곤감리를 활용한 디자인과 영문이 크게 박혀 있는 라벨에서 잘 드러납니다. '우리 소주는 소주다워야 한다. 하지만 소주답지 않아야 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출처 :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인터뷰) 그래서인지 라벨은 화려하게 디자인하되 뚜껑은 희석식 뚜껑의 재질, 즉 알루미늄을 유지해 돌려서 따는 소주만의 '경험'을 이은 점이 영리하다고 느껴져요.
내외 21
흡사 와인 바틀 같은 디자인인 내외 21. 2024년 8월 설립된 따끈한 '내외디스틸러리'에서 선보인 프리미엄 소주라고 합니다. 전통과 글로벌 문화를 조화롭게 담기 위한 제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해요. 사명인 '내외'도 국내, 국외를 포괄하는 브랜드가 되고자 하는 포부를 담았다고 하네요.
로고 또한 한글과 한자의 획의 특징을 알파벳 속으로 끌어온 것 같아요. N의 독특한 곡선과 A의 삐침, ㅌㅇㅌ로 보이는 EOE가 그렇게 보여요.
바틀과 라벨 디자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동서양 바틀의 특징을 모두 담았다고 합니다. 국내외 소비자들을 모두 타겟으로 나아가겠다는 지점을 디자인에 반영한 것이겠죠. 상품 자체만 보면 너무나도 (와인 같고) 소주같지 않아서 저는 많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렇게 하나 하나 설명을 해 둔 점은 인상적입니다.
패키지 라벨에 고려청자의 색을 반영했다고 하는데요. 그냥 보면 모르기에, 한국 주류로써의 직관적인 인상이나 경험 등을 좀 더 담았으면 더 좋았겠다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는 저도 모르는 어려운 문제
희석식 소주들은 대체로 우리가 아는 그 디자인이지만, 몇 가지 색다른 시도들을 간단히 짚어볼게요.
선양 오크 소주
어제 귀갓길에 GS25에서 본 신상. 초록병이 아닌 소주라 일단 눈길을 끌었어요. 선양소주가 GS리테일과 협업해 만든 신상품이라고 하는데요. 저렴한 라인에서 '오크' 숙성을 첨가해 가성비 프리미엄 틈새를 노린 듯 합니다.
희석식 소주더라도, 증류식 소주의 문법을 살짝 차용하여 초록병을 벗어난다면 오? 하고 눈에 띄는 것 같아요. 이 제품처럼 '오크' 와 같은 리즈너블한 이유가 있다면 더 기억에 남겠죠.
새로
과감히 초록병에서 벗어난 대기업의 희석식 소주, 새로입니다. 대기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안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녹록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한국적인 지점을 담기 위해 도자기 이미지를 활용했다고 해요. 용기 또한 투명해서 재활용이 용이한 장점도 있답니다.
소주 카테고리를 살펴보는 동안, 특히 증류식 소주의 경우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로 나타낼 것인가가 포인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원소주가 했던 고민처럼, 우리 마음 속에 각인된 소주라는 정체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가야 할까? 의 조정이 잘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희석식 소주는 초록병을 벗어나는 것 자체가 도전적으로 느껴지고요.
술과 디자인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찍어 둔 라벨이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UX/UI 디자이너 M
섬세한 후가공과 장식적인 장인 정신이 드러나는 패키지를 찍어둔 것이 평소 그녀의 미감을 추측할 수 있게 하네요.
패키지 디자이너 K
막걸리도 정말 아름다운 라벨이 많더군요..
브랜드 디자이너 J
울랄라~ 라는 프랑스인들이 많이 뱉는 감탄사가 적힌 이 프랑스 와인. 저도 무척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무궁무진, 시선을 사로잡는 라벨들이 참 많으네요.
각기 다른 이유로 인상적이었던 주류 디자인을 살펴보는 동안, 다양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리미엄 해보였던 Sexual Chocolate 와인을 보면서는 제가 오해하게 된 이유는 당당한 기세의, 명확한 태도의 디자인 덕분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고요.
증류식 소주의 케이스들을 보면서는 프리미엄 라인이니까 뭔가 다르기는 해야 하는데, 어느 정도로 기존 문법을 탈피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희석식 소주는 조금만 달라져도 이 브랜드 뭔가 새로워지고 싶어하고 뭔가 하려고, 뭔가 젊어지고자 하는구나, 느껴졌고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여러 생각과 감상이 떠오르는 토크였다면 좋겠습니다 : )
마지막으로 질문과 함께 이번 토크 마치겠습니다.
- 여러분이 생각하는 매력적인 라벨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 디자인 때문에 찍어두었던 주류가 있나요? (앨범에 '와인'이라고 검색해보기!)
- 주류를 구매할 때, 디자인이 미치는 영향은 어느정도인가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쉑 댓 브디브디는 더 흥미로운 주제와 함께 다음주 월요일에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