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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그저 달리기 위함이 아니다

이색 경험을 제공하는 별의별 마라톤 대회들

by 융융김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공유합니다.
디자인 토크쇼 쉑 댓 브디브디





안녕하세요! 이번 주 쉑 댓 브디브디의 호스트 융융입니다.

아무도 관심 없으시겠지만 작가소개에 나와있듯 저는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건 23년 4월이었어요. 벌써 2년 정도 된 애정하는 취미입니다.




종종 마라톤도 나가는데요, 저의 완주를 기념하는 메달들이에요. 잃어버린(?) 메달도 있지만 모아놓고 보니 하나하나 얼마나 값지고 뿌듯한지! 올해는 더 열심히 메달을 모아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사진을 보게 됩니다.



세상에... 이게 메달이라고?


지난 2월 제가 추첨에서 무참히 탈락했던 나이키 <After Dark Tour>의 메달이 공개되었습니다. (아니 요새 마라톤 인기 초절정이라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거 매우 속상하다) 너무 예쁘죠? 이 스우시 모양의 메달은 신발 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나이키의 러닝 DNA가 담겼다고 해요. 심지어 마그네틱 클로저가 있어 개개인에게 어울리는 핏으로 착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메달의 형식을 과감히 깨버린 패녀서블한 메달! 아아, 정말 너무 탐나서 눈물나요. 나이키 일 왜 이렇게 잘해-!


After Dark Tour는 여성 러너들을 위한 마라톤으로 시드니, 상하이, 서울, 뭄바이, 로스앤젤레스, 멕시코시티 등 6개 주요 도시에서 개최됩니다. 여성의 참여와 연대를 지지하는 이 마라톤을 기획한 대부분의 팀원이 여성이라고 해요. 세계의 여성들이 함께 달리며 강한 에너지를 만든다니! 멋지다.


좌 - 나이키 레이스 메달 / 우 - 레이스 포스터



평범한 대회와는 뭔가 다른 마라톤, 10km가 아직은 두려운 입문 러너는 물론이거니와 평소 달리기에 관심 없던 사람도 참가하고 싶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무언가 남다르고 별난 마라톤 대회들을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살찌는 건 싫지만 빵은 먹고싶어, 빵빵런


완주하면 빵을 주는 ‘빵빵런’입니다. 참가자 1인당 1개의 빵을 기부하는 캠페인도 진행해요. 달리기는 싫어해도 빵 싫어하는 사람은 못 봤거든요. 게다가 귀여운 세계관도 있는데요, 우주로 맛있는 빵을 찾아나선 곰돌이 팡이가 빵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우주선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지구에 불시착하며 펼쳐지는 스토리입니다. (이때 얼굴에 낀 빵이 빠지지 않는대요! 이런~)


2024 빵빵런 (출처: 1986 프로덕션)
2024 빵빵런 리워드

2024 빵빵런의 식음료 리워드만 가져와 보았어요. 누가 봐도 먹는 것에 진심인 마라톤입니다.


대회 사진을 보니 온갖 빵으로 코스프레를 한 러너들도 있더라구요.

코스튬, 포토월 등 즐거운 현장 사진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어요.

https://www.1986.co.kr/20240414-2





즐겁게 장도 보고~ 신나게 러닝도 하고~

배달의민족 장보기오픈런


배달의민족에서 주최했던 ‘2024 장보기오픈런’입니다. ‘달리기’와 ‘장보기’를 결합한 이색 러닝 마라톤 대회인데요, 출발지에서 준비된 장바구니에 원하는 상품을 담고 완주하면 장바구니 안의 상품들을 전부 리워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장바구니가 무거워서 도저히 완주를 못하겠다구요? 코스 중간에는 과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는 '무소유 카트'도 있답니다.


2024 배달의민족 장보기오픈런 (출처: 배민다움 today)


완주에 성공한 최대 무게 장바구니는 무려 19.2kg이었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장보기의 달인! 시상식에서는 꽃다발이 아닌 채소다발도 주었대요. B마트 서비스를 운영하는 배민다운 대회였다고 생각해요.



좌 - 장보기오픈런 상품 / 우 - 시상식 채소다발 (출처: 배민다움 today)



장보기오픈런의 비하인드는 아래 글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story.baemin.com/6674/





무도키즈 모여라! 무한도전 RUN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무한도전을 보며 자랐죠. 무한도전 20주년을 맞아 쿠팡플레이에서 기획한 마라톤입니다. 대회 현장에서 대표 에피소드를 오마주한 체험형 부스가 운영될 예정이래요. 벌써 웃기다. 게다가 6명의 멤버들의 참여는 물론 무한도전과 깊은 인연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피날레 공연을 한다고 하니! 참가 신청에 성공한 무도키즈들은 이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Fun Run이라고 하죠. 즐기기 위한 마라톤 대회들은 저마다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달리기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달리기 붐이 한창인 국내에 이색 마라톤 대회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 그럼 해외사례도 살펴보겠습니다.





아마추어도 함께 뛰는 올림픽

Marathon Pour Tous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개방된 마라톤입니다. Marathon Pour Tous는 '모두를 위한 마라톤'이라는 뜻인데요, 2024 파리 올림픽의 모토인 '완전히 개방된 대회'를 바탕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올림픽 공식 마라톤 코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올림피안의 경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니! 제가 만약 이 마라톤에 나갔다면 손주가 "할머니, 제발 그만!"을 외칠 때까지 자랑할 것입니다.


참고로 프로선수들과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평균 완주시간은 여성 기준 2시간 5분, 남성 기준 1시간 59분 정도 차이가 났다고 합니다.






연대하는 여성들을 위한 풀코스 마라톤

Every Woman's Marathon


2024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처음 개최된 여성 중심으로 설계된 마라톤입니다. 이 마라톤, 아무리 풀코스라지만 제한시간이 7시간 45분이나 됩니다. 그 이유는 초보자, 장애인, 노인 등 모든 여성들을 위한 행사이기 때문이에요. 코스 중간에 있는 화장실에는 탐폰, 패드, 머리끈이 비치되어 있고 수유소도 있었다고 해요.




메달의 반짝이는 크리스탈이 너무 예쁘더라구요. 컬러풀한 비주얼 아이덴티티가 소재에도 반영되어 브랜딩 퀄리티가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아래 페이지에선 참가자들의 '왜 뛰는가?'에 대한 답변들을 모아볼 수 있어요. 인터페이스가 심플하고 멋있습니다!

https://everywomansmarathon.com/whywerun/





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

Marathon du Médoc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메독(Médoc) 지방에서 매년 9월 개최되는 이 마라톤은 "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이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코스튬을 한 러너들이 달리다 멈춰서 와인을 시음하고, 음식을 먹고, 춤추고, 사진을 찍기 때문이에요. 중간에 와인 스탑만 무려 23곳에 마라톤 후반부에는 굴, 스테이크, 치즈, 아이스크림 등 코스요리도 나온다고 해요. 대회 포스터 좀 보세요. 저렇게 취해 갈 지(之)로 뛰니 세상에서 가장 긴 마라톤일 수밖에!


어째 평범하게 입은 러너가 없다..




국내외 사례들 모두 개성이 엄청나죠?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니 그만큼 비주얼도 재밌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역시 재밌는 기획에 재밌는 디자인이 깃드는 법이네요.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만약 마라톤 기획자가 된다면?' 상상하며 떠오른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드려 볼게요.




호그와트 마라톤



러너들이 호그와트 4대 기숙사에 소속되어 펼치는 대항전 마라톤입니다.

우선 대회를 접수하면 마법의 분류모자가 당신의 기숙사를 정해줍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월하는 너는... 이곳이 맞겠군, 슬리데린!




<키트 구성>
- 기숙사의 상징색과 엠블럼이 그려진 기능성 티셔츠
- 줄무늬 목도리를 닮은 러닝밴드와 양말
- 페퍼업포션 (에너지겔)

<House Cup 우승 제도>
기숙사생들의 평균 완주 시간을 측정하여 가장 기록이 좋은 기숙사를 올해 최고의 기숙사로 선정

<장단점>
장점: 팀 대항전으로 소속감과 팀워크 향상
단점: 기숙사 별 경쟁 과열




Run&Think, 철학 마라톤



철학의 황금기였던 고대 그리스를 모티브로 기획한 마라톤입니다. 러너들은 출발점에서 철학적 질문을 받게 되고 골인지점인 아고라*에 도달하면 자신이 달리는 동안 정의내린 생각을 주고 받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서 자유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던 장소)




<질문 예시>
- 일주일 뒤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 후회되는 과거를 지울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마실 것인가?
- 내 기억을 복사해도 여전히 나일까?
- 나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하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완주 리워드>
화관 메달, 고대 양피지 인증서

<장단점>
장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장시간 달리기 동안 자아 탐색과 깊은 성찰 가능
단점: 생각을 비우고 달릴 수 없음







In a Shake!


여러분이 러너가 된다면, 혹은 이미 러너라면 위의 대회들이 꽤나 흥미로웠을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생애 첫 마라톤을 출전하고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계절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놀이를 알게 된 것 같다'라고 적었더라구요. 사실 10km든 하프든 혼자서 뛰려면 뛸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공식 기록을 만들기 위함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라톤은 러너들의 '축제'가 아닐까요? 이제는 문화로 자리잡은 달리기가 앞으로 어떤 재밌는 콘텐츠를 보여줄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 드리며 마치겠습니다 :>

- 달리기 좋아하시나요?
- 마라톤에 참가해 보셨나요? 그 경험은 평소에 달릴 때와 어떻게 달랐나요?
- 여러분이 마라톤 기획자라면 어떤 아이디어로 대회를 만들어볼 건가요?


오늘도 쉑 댓 브디브디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브디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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