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점 우물 Oct 01. 2018

용기

-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새벽 3시- 티벳 사자의 서를 이어서 읽고 있다.

잠이 오지 않아서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파리 여행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았다. 그리고 인생의 오랜, 소박한 소망 하나를 이룬 것. 한편으로는 삶을 이루는 속성에서 볼 때 아주 잠깐의 아름다운 너울거림을 눈에 담고 온 것일 뿐. 이제 다시 일과 일상에 집중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이 가을과 겨울을 살 것이다.


파리에서 돌아온 후 이 시간 나를 잠시 사로 잡은 것은 냉장고 속의 바게트 샌드위치다. 파리 숙소 근처 슈퍼에서 산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로, 내가 마지막 날 계속 가방에 넣어 다니던 것. 들고다니기 좀 거추장 스러웠지만, 사놓은 재료를 소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의 선물을 사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에 한입 먹지도 못하고, 끼니라고는 생제르맹 레되마고에서 쇼콜라쇼 한잔 마신 게 다였다.

몽쥬약국으로 가는 길에 난 한 부랑자를 보았는데,

‘저는 정말 배가 고파요’라고 쓴 종이를 가방에 붙이고 앉아있었다. 여러번 뒤돌아보며 내 가방 속의 샌드위치를 꺼내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공항에서 무거운 짐 사이에 든 그 샌드위치를 다시 꺼내 볼 때도 거리의 걸인이 생각났다. 결국 내가 이 빵을 먹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휴지통에 넣을 순 없었다. 그 바게트는 검색대를 통과하고 나와 함께 비행기 까지 타고 대륙을 건너, 서울로 왔다.

단지 용기를 조금 내서 그 샌드위치를 건냈으면 그도 좋고 나도 좋은 일이 되었을 텐데. 샌드위치는 아직 버리지도 않고 우리집 냉장고 속에 있다.

예전에 명동에서 한 걸인을 봤을 땐, 내가 거의 새것과 다름 없는 먹다남은 포장된 돈까스를 들고 가는 중이었는데,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조심스럽게 놓고 왔었다. 그때 나는 까닭없이 슬펐다.

맛있었다면 남기지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주는 게 아까웠겠지. 내게 필요가 없는 것을 주는 건 사랑이 아니고, 베품이 아니니까. 그냥 버리는 곳을 달리 하는 것일 뿐.


세상의 부랑자들을 볼 때면, 동네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 입혀주셨다던 우리 외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매거진의 이전글 까치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