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을 바라보면서 performer & watcher
요새는 당분간 차를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자주 마시는 우롱차와 보이차에도
카페인이 있으니 조금 자제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체온을 위해 뜨거운 물을 주로 마시고 있습니다.
차 대신 와인을 자주 마시네요 그러고보니... 늘 대체물이 있는 법인가 봅니다. ^^
그래서 요새는 출근 후 누렸던 그 차우리는고요한 시간이 없어져 조금 아쉬웠지만,
뜨거운 물을 찻잔에 담아 두고, 식기를 기다리며, 아침식사로 바나나 한개를 들고
회사 카페에서 창밖을 주시하면서 천천히 먹었습니다. 뜨거운 물 한 잔은 등 뒤의 탁자 위에서 알맞게 식어가고 있는 걸 느끼면서요 :)
창 밖에는 8층 짜리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미처 발견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빌딩은 옆 빌딩과의 사이가 좁아 중간에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공간만 띄워놓고 짓는 건물이었습니다.
아래에서는 시멘트를 끌어올리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고, 그 긴 파이프는 8층까지 올라가 있었어요.
위에서는 5명의 인부들이 바삐 혹은 천천히 이동하면서 건물의 바닥과 벽 그리고 지붕을 함께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중 안전모를 쓰지 않고 빨간 모자를 쓴 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여유 있는 걸음으로
지붕 없는 8층 위를 오가는 사람을 계속 지켜 보았습니다.
그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총감독을 하는 '십장'으로 보였습니다. 그 사이에 그 사람의 지시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어느새 7층에 또 한 명이 내려가서 열심히 작업 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요.
이 모든 걸 가만히 보고 있는 동안 제 등 뒤에서는 몇 명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가는 걸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 건물의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십장이 건물 저편의 저를 가만히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철근 빔에 살짝 기댄 포즈로요.
그 모습을 사진 처럼 담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극복 하기 전인 ㅎ 고소공포가 조금 있는 저에게는 그 자세 자체가 무척 위험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발레리노가 바를 잡고 몸을 푸는 듯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마 비치는 유리라서 제가 있는 이 쪽 건물 안은 안보일텐데, 정확히 제 방향으로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상한 공감이 일었습니다.
건물이 지어지는 모습을 보는 제 마음 속은 어떤 인과에 의해 벌어지고 생겨나고 완성되는 마음 속 하나의 상징으로 느껴졌고, 건물을 바라보면서도 사실은 그 마음을 주시하는 자가 되어 보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건물 속을 보면 행위를 하면서도 계속 주시하는 십장이 있었는데, 일종의 내부와 외부의 주시자인 십장과 제가 동시에 서로를 보는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그때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민트향이 나는 듯 화~ 하게 사라지고,
단지 현실 속에 지어지고 있는 건물 한채와 바나나를 다 먹고 물을 마시려는 제가 있었습니다.
현실의 인과속으로 사뿐하게 내려 온 것이었죠.
참으로 신비로운 순간이었습니다.
바나나 명상 혹은 공사장 바라보기 명상이라고 하면 될까요? :)
행위자와 주시자 라는 개념 그리고 내부와 외부의 통합 혹은 사라짐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