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귀신이어야 했나?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삶이 죽음보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삶보다 무겁다. 삶의 경계면 안쪽에 속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입에 올리길 꺼린다. 하지만 사실 죽음 역시 삶만큼 흔하고 익숙한 것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이제 자유롭게 이야기해봐야 한다. 삶만큼 죽음도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다른 방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귀신이란 뭘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존재 ‘귀신’에 대한 소문과 호기심. 우리는 그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들을 모를까? 어떤 이들은 귀신이 그저 육신이 없을 뿐 살아있는 우리와 같다고도 말한다.
우리에게 해악을 주는 영혼은 ‘귀’. 복을 주는 존재는 ‘신‘이라고 해서 귀신 이란 육신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인간세상과 상호 작용을 하는 존재이며 성서와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부터 현재의 다양한 매체의 소재로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이야기되고 있다.
세상의 탄생, 이 우주의 제1 원인을 찾는 인류의 궁극적 질문 속에도 ’ 신‘이 존재하니까.
모든 것의 끝이 아닌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 속에 그들은 존재했을지 모른다.
삶은 너무 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서 결코 인간의 단선적 시선으로 그 큰 그림을 완벽히 이해하고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에 겸손해야 한다.
하지만 차원을 넘어선 존재에게 우리의 삶과 영혼의 여정은 손바닥 안을 보는 것처럼 훤하게 드러난다. 귀신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살아있을 때 다 못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한을 풀고 싶어 한다.
그 한이 풀리지 않으면 귀신은 계속 같은 사고 속에 갇혀 같은 공간을 떠돌고 같은 메시지를 되풀이한다.
어? 가만…
우리의 내면 속에도 그 귀신같은 요소가 있지 않은가?
이 소설을 1000피스 조각 퍼즐이라고 생각해 본다. 각각의 조각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천 씨 집안사람들과 작은 마을 용징에 사는 많은 인물들 각각의 삶과 그 삶 속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서로 얽혀있다.
주인공은 천 씨 집안의 일곱째이자 둘째 아들 천텐홍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을 방문 중이었던 천쓰홍 작가는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남자가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했다. (‘호러 소설’이 아니다는 코멘트와 함께 후훗.)
귀향하는 인물의 서사는 이미 많은 문학에서 다뤄졌다. 이 귀향 문학 또는 귀향 소설로 유명한 것은 ‘마르탱 게르의 귀향’, ‘삼포 가는 길’, ‘무진기행’ 등이다.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나온 사람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서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노란 손수건’도 떠오른다. 이런 귀향문학은 정체성, 상실, 회복과 같은 이야기를 주로 이야기하고 있고, 갈등의 화해, 자기 발견, 과거 현재의 대립, 치유와 성장 등의 결론으로 향하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의 서사만큼 그 주변 인물들의 서사도 긴밀히 엮여 있다. 왕 씨와 천 씨 가족 그리고 현대화되는 대만의 역사와 보수화되는 유럽, 사상과 성향과 욕망들은 한데 얽힌다. 여자와 소수자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의 시간들을 소설은 담담히 그려 낸다.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도 존재했던 시간들 혹은 존재라고 있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상처와 슬픔의 농도가 짙다. 하지만 어둡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유머를 잃지 않는 자가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된다. 읽는 동안에는 무조건 재밌다.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예측되지 않는다. 어떤 귀신이 불쑥 나와 이야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화자는 다양하게 변모된다. 화자만 변하는 게 아니라 시점도 변한다. 그래서 이런 귀신같은 종잡을 수 없는 서술방식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서술 방식에 익숙해지면 인물들 각자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변화된 고향에서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계속 오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비선형적으로 얽혀있다. 하지만 소설은 마치 흩어 뿌림 방식으로 씨를 뿌리듯 물음표들을 던져 놓는다. 그 물음표를 하나씩 느낌표로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
천텐홍은 딸만 다섯인 집안에 태어난 둘째 아들이고 게이이다. 엄마인 아찬은 그를 쓸모없는 자식으로 여기고, 집안의 수치로 생각한다. 텐홍에겐 죄가 없지만 아찬의 입장에서 텐홍이란 존재는 비록 살아 있으나 자신의 삶을 죽도록 괴롭히는 귀신이나 다름없다. 텐홍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소설가가 되고 독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결혼했던 한 독일 예술가 T를 죽여 감옥에 간다. 이 살인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룬다.
그리고 용징의 마을에서 죽은 사람들. 천 씨 집안 다섯째 딸 안 메이라고도 불리는 천 챠오메이의 미스터리 한 죽음도 끝까지 호기심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텐홍의 첫사랑이자 높은 학력을 지니고 있지만 양타오 농장을 운영하러 귀향한 그. 빨간 바지라고 도 불이는 왕 씨의 둘째 아들 징쯔총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죽은 아버지 아산과 징쯔총의 증언에 의해 은색 물탱크 속의 비밀도 밝혀진다.
뱀 잡는 사나이라는 미스터리 한 인물 역시 이 소설에서 허를 찌르는 장치 중 하나였다.
과연 누가 이 이야기의 최종 승자일까를 되짚어보면 자신의 욕망을 가장 격렬하게 밀고 나간 천 씨 집안의 폭군 엄마 아찬이 아닐까 한다. 이 소설의 결말은 대소동극이 끝나고 유쾌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중화권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 눈물 속의 웃음. 해학의 미라는 것은 아시아권 문화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코드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현대 소설에서는 자주 보이지 않는 것이라 신선한 느낌이었다.
통속적인 시선으로 인간사의 갈등과 사건들만 보면 인간의 욕망은 참 하찮게 느껴진다. 뉴스 지면에 자극적인 말로 팩트 만으로 요약된 한 인물의 범죄 사건 사고 속에는 어떤 진실도 없다.
진실은 오직 그 인물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을 펼쳐 열었을 때 보이는 것이다. 이 소설처럼 인물들의 감정 결을 섬세하게 훑는 작품을 만나고 인물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인간들 각자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못한 모든 소망들’이 모두 그 자체로 가치 있게 느껴진다.
어떤 소망들은 모이고 모여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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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5. 독서모임 발제
1. <왜 ‘귀신’이어야 하는가?>
소설 속에서 죽음과 삶을 넘어서는 존재로서 ‘귀신’이라는 상징이 가지는 의미에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해 봅시다!
소설에서 '귀신'은 단순히 초자연적 요소만이 아니라 때론 인물의 갈등과 죄의식을 반영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귀신으로 자신을 묘사하는데요.
현재와 과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귀신의 존재는 이 소설 속 인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봅시다.
2. <문화 충돌과 가치 갈등>
소설의 배경이 된 대만과 독일 등지에서 벌어지는 전통과 현대의 문화 충돌과 여기서 벌어지는 갈등과 변화에 대해 말해봅시다.
소설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현대 문화가 충돌하는 배경에서 전개됩니다. 이러한 충돌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특히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고립된 인물들의 심리를 중심으로 말해봅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어떤 문화적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살펴봅시다.
3. <소설의 서술 방식이 주는 감상>
기억과 꿈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특히 이야기는 비선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비선형적 서사를 사용하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특히 꿈과 기억이 중요한 서술 방식으로 채택됩니다. 이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이러한 접근이 읽는 동안 어떻게 느껴졌나요?
이와 같은 방법이 이야기의 주제나 인물의 심리에 다가서는데 어떤 도움을 받았나요?(혹은 방해했나요?)
4.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변론>
이 소설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작가는 소설을 통해 사회적으로 억압받았던 여성과 소수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스스로의 시점에서 자신들의 상황을 설득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와닿았나요?
5. <성적 소수자의 고립>
이 소설은 주인공이 성적 소수자입니다. 또한 사랑과 배신, 증오, 고립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주인공이 가족과 겪는 갈등과 트라우마, 주인공이 해외에 거주하며 느끼는 정체성과 이로 인해 겪는 사회적 고립감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봅시다.
6. <작가의 다문화적 시각>
천쓰홍은 대만 출신의 작가이자, 독일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인 인물이면서도 이방인입니다. 그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 귀신들의 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살펴보고, 작품의 세계관과 인물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다문화적 시각이 어떻게 소설의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지 말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