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19
아빠친구 유태상 아저씨는 아빠와 베토벤 황제 때문에 친구가 되었다.
'이 노래 뭔지 알아?'라고 물으니,
'황제지 임마' 라는 대답에 아빠는 태상이 아저씨한테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래서 늘 대학 클래식 카페에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고. 그 유전자들이 전해져서 그 아빠들의 딸들은 클래식 애호가로 자랐다. 그 중 하나인 내 동생은 피아니스트가 되어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분투 중이고, 아저씨의 큰딸 단비는 MIT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하고, AI와 로봇윤리에 대한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 수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단비도 오래 피아노를 쳤고 훌륭한 연주 실력을 가진 아이였지만, 피아노를 전공하는 것은 태상이 아저씨가 반대했다고 했다. 내 동생이 언젠가 연주한 동영상을 단비네 엄마와 단비가 미국에서 본 뒤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타국생활의 어려움과 유학생들만이 아는 괴로움, 그 속에서 그 험난한 예술의 길을 이뤄낸 것에 대해. 그만큼의 성취와 실력을 갖추도록 동생은 손가락이 발레리나의 발처럼 될만큼 연습했다. 갈라진 손끝에 의료용 본드를 발라 붙여가면서.
아저씨 큰 딸 단비는 나랑 2살 터울 동생이었는데,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랐다. 단비네 역시 나처럼 책을 참 좋아해서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다닐 때도 책을 끼고 살았다. 지리산에 특히 자주 갔고, 경주며, 유명한 경상남도권 안의 사찰을 찾아다녔던 그 시절.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거의 매주 주말 창원과 부산을 오가며 만났고, 오래 못보게 되는 때에는 서럽게 울면서 헤어졌다. '이산가족이냐?'하는 아저씨 목소리가 얄미웠을 만큼 단비네를 그리워하고 아꼈다.
아빠는 클래식 라디오를 즐겨듣는 사람이었는데, 늘 메모까지 해가며 연구를 할 만큼 매니악했다. 나도 좋아하는 취미에는 남부럽지 않은 광기를 ㅎ 가지고 파고드는데... 이런 부분은 아빠를 닮은 듯 하다. 못구하는 엘피를 해적판으로 사모으기를 좋아하던 아빠는 어쩌다가 좋은 집안 규수라는 ㅎ 엄마를 만나는 일생 일대의 실수를 ㅎ 저질렀고. 아저씨는 아저씨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인 조아옹 피레스와 닮은 여성과 결혼했다. 아줌마는 국문학과를 나오셔서 선생님을 하셨던 분이고... 야무진 말솜씨와 센스 등 같은 여자가 봐도 참 멋지고 똑똑한 여성이지만, 아저씨와는 다르게 한국 가요만 좋아하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평생을 살다보니 서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그 두 분은 만나본 부부 중 가장 재미있는 분들이었다. 그와 같은 느낌은 한 작곡가 선생님과 만났던 건축가 부부에게서도 느꼈다. 대화가 언제나 중요하다.
우리는 언어로 키워져서 이뤄진 존재들이기 때문에. 언어는 우리의 세포이고 에너지이고, 마음이 맞는다는 건 대화 혹은 침묵의 언어 조차 통하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찾는 존재는 서로를 성장시킬 평생의 대화가 이어질 한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