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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19. 2020

성당결혼식

20170219

외할아버지의 첫 기일이 다가온다.


작년. 결국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엔 너무 놀라서 눈물도 안나오고 이상하리만큼 담담했다. 그런 자신에게 의아했다.

우리는 성당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받았고, 사람들의 눈물 속에 있자 그제서야 눈물이 났다. 나는 뒤에서 눈물을 흘려가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쓰며 지치지 않고 음식을 나르고 치우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할아버지의 제일 큰 손녀이자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내가 할아버지의 제일 마지막 가시는 길에서 든든히 버티지 않으면 안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이 바쁜 게 슬픔을 이기는 힘이었다. 내가 로봇처럼 일을 하니 내 착한 사촌 동생들은 더 열심히 따라주었다. 친척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울고, 연도미사를 시간마다 드리고, 밥을 먹고 하면서. 우리가 지극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 없이 느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차가운 몸 위...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드렸던 때를 마음 속에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장례미사때... 죽음이 더이상 무서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기도 하다는 걸 배웠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할아버지의 묘비명을 기억하며 나는 한번 씩...

삶을 못버티고 그냥... 영원히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 먼저 가계신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도와주세요.' 하고 불러본다.

그러면 항상 할아버지는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다' 라고 대답하시는 듯 하다.


오늘은 친가 쪽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축복받을 만한 의사부부의 새로운 시작을 사람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집이랑 가까운 방배동 성당에서 열린 예식은 겉치레가 없고, 엄숙하면서도 따뜻했다. 하지만 신부 쪽의 우리 친척들은 모두 눈꼬리가 촉촉했다. 서로를 쳐다보면 금방 눈물이 그렁했다. 삼촌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계셨기 때문이다. 사촌동생이 근무하는 여의도 가톨릭 성모병원에 아빠를 모시고, 병원과 가까운 성당을 찾아 식을 올린 딸. 친척들과는 인사를 나눴지만 사촌 동생과는 따로 만나지 못했다. 아빠와 함께 삼촌을 뵈러 병원에 서둘러 갔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암수술을 하신 뒤, 뇌졸중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와 한동안 의식이 없었다는 삼촌. 피가 몰려 눈에는 보라색 멍이 들어 있었다. 결혼식 동영상과 사진을 잔뜩 보여드리자, 조금 웃으시던 삼촌. 하지만 사람들이 위로와 기도를 건내자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처음으로 삼촌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나으실 거라고. 기도 많이 하겠다고.

아빠는... 조상님들 묘소를 파헤쳐 합장하고 선산을 판다는 말을 했던 삼촌을 원망하는 말을 가끔 하신다. 그게  무슨 소용이라고.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더는 무거워질  없다. 항상 우리가 죽음이라는 문을 마지막에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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