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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소민 Feb 21. 2017

안나카레니나

+몇년 전, 뉴욕 여행을 하면서 안나 카레니나를 아껴가며 읽던 것이 여행의 핵심이었다. 한 페이지씩 곱씹어 읽고 챕터가 끝날 때는 요약도 했던 밀도 있는 독서였다.


여행에서 책은 정말 중요하지-

이번 여행에 어떤 책을 들고 갈까?

다섯 권 안에서 정리 하자.


나의 첫 유럽이, 프랑스가 아니라 왜 러시아가 되었는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면 더 잘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직관적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지금 내게 프랑스는 흥미를 가지고 있는 언어. 프랑스어를 공부하게 하는 대상의 의미,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여름에 친구들과 모로코- 프랑스에 가기로 작년부터 약속했고. 실현여부는 그 때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아는 것이지만. 잠정적으로 프랑스는 보류.


러시아는 지금 아니면 갈 수 없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한다!


러시아는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솔제니친, 푸쉬킨, 체홉 등...대문호들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금박을 벗기면 색깔이 보이게 만들어진 내 세계지도에서 가장 큰 땅을 차지하는 러시아. 다녀오면 흥분된 마음으로 그 커다란 부분을 전부 드러나게 할 수 있겠지.


러시아 문학이 좋은 이유는 인물들 각각의 깊이와 철학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얼음 속의 불이다. 그리고 치밀한 구성미. 순식간에 빨려들어 영혼을 지배하는 서사. 나는 오래전 죄와벌을 읽다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밤을 꼬박 다 샜던 첫 경험을 기억한다.


러시아 문학만이 가진 그 아름다움과 지독함은 차가운 대륙의 공기와 밀도가 그들의 유전자 속에 남긴 흔적이 아닐까? 그 땅의 남다른 기운이 그들을 더 깊고 강인하게 만든 것은 아닐까?



나는 그곳에 가서 온 몸으로 내가 상상만하던 것들을 체험하고 싶다.

좋은 보드카를 매일 실컷 마시고, 말이 잘 통하는 러시아 친구도 사귀고 싶다.

여행에서 내가 느낄 많은 것들을 글로

남겨오고 싶다.


지난 여행에서, 안나카레니나를 읽으며, 인물들의 모든 개성들이 내게도 내재한다는 걸 느꼈다. 그 때문에 톨스토이의 위대함을 새롭게 배웠지만, 요새는 아무래도 '레빈'을 더 자주 생각한다. 어떤 소설 속 캐릭터를 보면서 내가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들킨 기분일 때인데, 레빈은 자주 그랬다.

키티나 안나의 모습에 내가 비칠 경우는 간혹 있었지만, 모두 전근대적인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인들이라 오히려 동떨진 느낌이었다.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처리하려는 편이니까.

특히 안나라는 캐릭터를 그리 사랑하지 않는다. 안나와 레빈이 내 눈앞에 있었다면... 레빈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아마 레빈은 오래 오래 살면서 다양한 놀라움을 키티에게 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레빈 같은 남자를 만나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레빈을 뛰어넘는 캐릭터로 나의 이 다이나믹한 인생에서 정신 승리 ㅎㅎ 하길 바란다.

레빈이 톨스토이 자신을 투영한 것이란 건 읽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었다.

모순에 가득찬 인간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위대해졌으니까. 고통과 열망으로 이뤄낸 완벽한 인간 승리.



가만보면, 난 러시아 소설들에 나타난 ´남자' 캐릭터들의 정신 세계에 보다 흥미를 느끼고 있다.

깊이를 잃어가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요즘 시대에... 가끔 소름이 돋고,

환멸을 느낀다.

차라리 세상이 뒤바뀌어 우리가 조금 더 인간적이던 시절로 돌아가기 바란다. 그런 바람으로 나부터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이반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를 다시 읽어야겠다.

그리고 몇년 전 사라진 죄와벌... 제일 좋은 번역본으로 다시 사야겠다. '악령' '가난한 사람들' 등도 서점가서 최신 번역으로 살펴보기.




나는 어제 응급실을 나와 찻길 옆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있을 나의 친구들과 고된 창작의 시간들을 보내는 수 많은 문학가들...의 얼굴.


그들을 위한 향을 두 대 피워 하늘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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