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산지미냐노
어쩌면 여행이란 예상하지 못한 일의 합이 아닐까. 세세한 일정까지 준비하는 여행자도 여행지에서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겠다는 여행자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소매치기를 당하는 억울한 일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여름, 니스를 지나다 우연히 재즈 페스티벌을 만나는 즐거움일수도 있다. 어떤 사소한 우연이든 우연은 여행의 기억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우연은 좋든 싫든 강한 추억이 되는 전제조건인 셈이다.
토스카나 소도시 중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산지미냐노였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을 일컫는데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 피노키오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토스카나는 따뜻함이 서려있는 듯 상처도 괜찮다고 품어주는 엄마 같은 이미지다. 특히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들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빼 놓을 수 없는데 산지미냐노도 그렇다.잘 알려진 시에나보다 작고 덜 알려진 12-14세기 중세도시, 왠지 그렇기에 더 좋은 곳이랄까.
해발 300여미터 위에 세워진 성곽도시답게 완만한 언덕을 따라 올라갔다. 산지미냐노 입구를 마주하니 시간여행의 시작에 선 듯 기묘한 느낌이 든다. 바로 그때 포스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흑백 사진과 함께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전을 알리는 포스터였다. 동공이 커지고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강력한 느낌이 왔다. 산지미냐노를 엄청 좋아하게 되겠군.
여행지에서 예술을 만날 기회는 많다. 더군다나 유럽여행이라면 반드시 가야하는 박물관 미술관 리스트는 얼마나 많은가.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라면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구태여 볼 필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꼭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뭐 할 말은 없지만 길게 줄 서서 들어가서 아무 감동 없이 그저 “봤다”는 것이 남는 결과의 전부라면 안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루브르가 내겐 그랬다. 다른 것도 아니고 루브르를 보고 별 감흥이 없었다는 것이 맘에 걸려서 런던여행 할 때는 하루를 통째로 대영박물관에 할애해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후로도 파리에 몇 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루브르 굳이 찾아가지 않는다. 아마도 루브르가 진심으로 궁금해질 때 언젠가 루브르만을 위한 여행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제대로 만나더라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반면 예술을 찾아가는 여행도 있다. 여행은 항상 예술을 필요로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여행지에서 만난 음악, 우연히 지나던 길거리의 연주자에서도 영혼을 느낄 수 있다. 여행에서 수퍼에서 산 차가운 샐러드 도시락을 꺼내어 먹던 중 저 멀리서 들리던 클래식 선율, 가장 저렴한 티켓으로 꼭대기 자리에서 본 공연, 작은 미술관들을 찾아다며 느낀 이름 모를 작가들의 그림들도.
유명하다는 그 어떤 것 보다 아름다웠다. 예술이 주는 진정한 힘은 여행자인 우리에게 말을 건다. 예술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예술사조나 화풍을 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결국 내면과 대화하게 되고 타인을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게 되는 것. 예술의 본질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따뜻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산지미냐노에서 만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특별했다. 1900년대, 그러니까 20세기를 통째로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사람을, 인생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계의 거장. 작은 중세 도시와 브레송의 조합이라니. 이탈리아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당당하며 남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게 된다. 브레송은 우리나라에서도 두 번이나 전시를 했었다. 브레송의 전시는 넓고 커다란 상업적인 공간에서보다 황금빛 산지미냐노 건물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빛과 어울림이 더 자연스러웠다. 흑백사진들은 그 자체로 반짝였고 주변은 고요했다. 한참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브레송의 시선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우연으로 만난 그가 건넨 말,‘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우리는 그토록 꿈만 꾸며 언젠가는 이룰 거야. 그러고 싶어 라고 외치기만 하고 있지 않은가. 바로 지금이 결정적 순간은 아닐까.
강력한 우연은 마치 필연처럼 느껴진다. 내 앞의 우연은 설령 고통이라고 할지라도 필연적인 메시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60번의 입사지원, 10번의 면접에 떨어지면서 시작된 버릇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방법이 없었던 거다.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해서 이제까지의 불합격이 있었던 거야!’이런 생각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자 합리화였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어떤 실패나 좌절에도 힘들어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는다면 성장의 실마리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실패했는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이유를 알고, 수정하고 다시 도전하는 일. 같은 실패 앞에서 어떤 이는 실패를 빛나는 경험으로 만들어낸다. 넘어져 본 사람은 넘어졌을 때 실컷 울고 난 후 넘어진 그 자리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다. 찾아내고야 만다는 표현이 저 적절할 것 같다. 넘어진 우연이 주는 필연을 찾기 위해서 주어진 운명을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다.
산미지냐노에서 만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우연히 여행 안으로 들어와 필히 마주쳤어야 하는 인생의 필연처럼 남았다. 인생의 결정적 순간을 선사해준 브레송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