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고민
토스카나 소도시 여행자, 여자 넷의 궁합은 착착 잘 맞았다. 한국에서 미리 만나 인사를 했던 자매는 퇴사여행으로 한 달간 유럽여행 중이고, 다른 여행 메이트 B는 추석연휴 동안 혼자 여행하는 직장인이었다. 비슷한 나이에 다들 유쾌한 성격으로 오히려 낯가리는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 그녀들.
여자 넷은 토스카나 여행시작을 피렌체에서 하기로 했다. 난 서둘러 밀라노에서 아침 기차로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으로, 자매는 피렌체 여행을 마치고 호텔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B는 피렌체에 하루 더 머물 예정이라 다음 날 산지미냐노에서 만나기로 했다.
B와 우선 피렌체에서 만나 렌트카 픽업을 위해 렌트카 회사에서 지루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기운을 깨기 위해 질문이 오갔다. “무슨 일 하세요?”“아 저는 OO 다녀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애정도 없는데다가 하는 일이 나를 설명해 줄 수 없어서 약간의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B가 화들짝 놀라며, “어 저도 아는 사람이 그때 그 프로젝트 했었는데요.”
“앗. 누구요?”역시 세상은 좁다. 아니 좁아도 너무 좁다. 직장 상사였던 K양의 소식을 피렌체에서 렌트카를 기다리며 들을 줄이야. 10년 만이다. 여행메이트 B의 상사이기도 했던 K양에 대한 기억은 우리 둘 다 유쾌하기 보단 씁쓸한 기억이 많았다. 달달한 핫 쵸컬렛의 씁쓸한 끝 맛 같은 기억을 더듬으며 서로 말을 아꼈다. 곧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여행 중 매일같이 한 끼도 거르지 않고 와인을 마셨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래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삶의 철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마냥 화이트, 레드 가리지 않았다. 와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30대 중반 이후의 싱글 - 나를 제외하고 - 들의 고민이 비슷하듯 일과 사랑,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일이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직장인의 비루한 삶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 하다가 K양에 대한 추억을 소환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 이외의 것, 이를테면 자신의 단점에 대한 욕심을 갖는 순간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인위적이고 추해지는 것 같다. 단점은 단점대로 인정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단점을 갖고 있다 한들 뭐 어때.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켰다.
일이란 진정 무엇일까. 노동일까. 즐거움일까. 자아실현일까. 돈 버는 수단일까. 행복의 근원일까. 아님 아무 것도 아닐까. 일은 위에서 언급 한 모든 특성을 갖고 있다. 미묘하게 서로 얽혀 때로는 돈 버는 수단의 괴로움으로 때로는 자아실현 도구로 가끔은 행복의 근원으로 말이다. 일의 노동을 통해 즐거울 수는 없는 걸까.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 이것이 모두의 간절한 바람 아닐까.
지난날을 돌아보니 난 일을 사랑했었다. 너무 사랑하지 않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싸이코패스를 만나 허울만 좋은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지금 삶이 그리 갑갑한 일이 아니었을지도. 물론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겉모습의 견고함에 가치를 두면서 안정적인 삶이라며 자위하기를 몇 개월. 가능만 하다면 나쁜 삶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서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이 대기업에 들어오고자 하는 신입사원들의 얘기를 들으면 내가 배가 불러도 한참 불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며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다는 우리 회사. 미안하지만 앞으로 그들이 겪을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쨌든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나답지 않은 일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숲속을 혼자 헤매는 날들 속에서도 이건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아는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 나 자신을 속이는 건 곧 무너질 모래성 같다는 것을. 얼마 안가서 무너질 때를 대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나의 무의식이 무언가를 대비하도록 움직였고 토스카나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곧 나였다. 줄곧 그래왔기 때문에 일이란 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자체에 큰 불편함을 느꼈다. 그야말로 생경했다. 일을 주도할 수 없다는 것도 일에 의견을 내지 않고 그저 처리만 해도 되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도 외계에 온 듯 했으니까. 가장 신기했던 것은 조직의 누구도 열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부심이 넘치는 이 회사에. 일의 기준은 상식적으로 - 물론 내 상식이 남의 상식이 될 수 없겠지만 -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에 대한 고민이라고 믿어왔다.
이전 직장들인 대기업도 외국계도 중소기업도 모두 그랬다. 이곳은 다른 논리로 움직인다. 누가 지시한 일이냐는 질문을 서슴지 않고 한다.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의 기준, 일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해야 하는 노력의 정도는 정치 역학 관계와 인맥으로 정해진다. 핵심은 없고 겉을 포장하는 온갖 기술들만 난무한다. 이렇게 까지 얘기하는 걸 보니 난 정말 이곳에 애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게 맞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고 할 때 하루 종일 보내는 사람들, 하는 일, 나누는 대화는 곧 현재 내 인생이 된다. 일은 자신을 대변한다. 무엇이 되었든 자신다운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강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이탈리아에서 줄곧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