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위에는 책 세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중 한 권의 제목이 독특했다. <Milan is not expensive> 밀라노를 마냥 비싼 패션과 디자인 도시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었다. 밀라네제처럼 합리적으로 밀라노를 즐길 수 있는 비법들로 채운 가이드북이랄까. 지베르나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책 내가 쓴 거야.”와우. 여행에서 만난 모든 것들은 앞으로 인생을 풀어가는 실마리라는 나의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밀라노에서 책을 쓴 사람을 만나다니.
이솔라의 적당하고 알맞은 아파트에서 4일을 보낸 후 떠나는 날이 되었을 때 그녀가 쓴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메시지를 보냈다. “너가 쓴 책을 사려고 서점에 갔었는데 못 사고 돌아왔어. 혹시 괜찮으면 내가 테이블 위에 돈을 놔두고 갈게. 이 책 가져가도 될까?”
그러자 고마운 답이 돌아왔다.
“난 너가 내 책을 맘에 들어 해서 넘 기뻐. 책은 너에게 선물할게!”
밀라노의 선물. 단순한 책을 넘어서 고군분투하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탈리아 여성의 열정이었다.
작은 아파트가 지베르나의 삶이 담긴 공간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꿈, 희망, 좌절, 기대, 현실, 이상, 사랑, 이별, 탄생, 기쁨, 감사 모든 것들이 이 공간에서 이루어졌겠지.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녀가 포기한 꿈도 분명 있을 것이다. 지베르나는 예술학을 전공했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 인생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성찰로 이어지고 요가를 하게 되었다는 지베르나. 에어 비앤비에 자신을 소개했던 말 그대로 글을 쓰고 요가를 가르치고 여행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스스로 이상과 현실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적정선을 찾은 결과 아닐까.
우리는 때로는 인생에서 정답을 원하고 흑과 백을 논하고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지를 이야기한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모든 인생에 정답이 없는 건 아닐까. 존재하는 것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고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곧 인생일지도.
항상 자유롭게만 살수 없고 책임지는 삶이 항상 무겁지만은 않듯이. 어떤 길을 가보지도 않고 그럴 것이라고 장담하는 일처럼 애처로움을 느끼게 하는 일도 없다.
지베르나가 떠나고 작은 발코니 나무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삶을 피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사랑하며 부딪히며 살자고. 간단한 해답을 얻은 기분이랄까. 인생에서 한 가지 삶의 방식을 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찾게 될 것이다. 이미 정답은 내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