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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것, 그래도 사랑스러운

by 윤 Yoonher

밀라노에서 며칠은 아쉽기만 했다. 스물아홉의 창창한 젊음이 떠올라 반가웠다가 그리워지는 감정패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곤 했다. 10년의 세월동안 이탈리아는 크게 변하지 않은 듯 했지만 밀라노는 변한 부분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우선 관광객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두오모 성당 앞 광장에는 다 어디서 왔을까 싶을 정도의 사람들로 붐볐고 유일한 백화점인 리나센테 백화점 안도 무척이나 분주했다. 밀라노에게 변화와 성장의 시점이 한 번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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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료품 전문점과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이탈리 (Eatly)에는 밀라네제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꼬르소 꼬모 근처 지역에는 신식건물들이 높다랗게 지어지고 있었다. 마침 그 길 앞으로 노란색 뜨람이 지나가며 겹쳐졌다. 밀라노의 고집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중일까.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한 채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밀라노가 어쩐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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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장인정신을 이어가는 작은 가족기업을 기반으로 산업을 성장시켜왔다. 그러다보니 백화점보다는 로드샵들이 발달해왔다. 우리나라처럼 백화점이 독식하는 유통구조를 갖고 있지 않아 리나센테도 무늬만 백화점인 식이었다. 2011년 태국 내 최대 유통 재벌인 센트럴(Central)그룹에서 리나센테를 인수, 투자하여 상업화를 추진해왔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안타깝게도 사실 이런 사례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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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코바 (Cova), 펜디 (Fendi), 캐시미어로 유명한 로로피아나 등몇년 전부터 프랑스 명품회사가 사들였다. 이탈리아는 좋은 것을 개발하고 상업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어쩐지 미숙하다. 크게, 재빠르게, 체계적으로 이런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니까.


이탈리아 사람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대부분 말이 앞서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다는 점이다. 비상식적인 이런 특성이 신기하게도 일반적이라 몇 번 당하고 나면 놀랍지도 않다. 버스시간, 기차시간, 심지어 체류허가증을 하러 간 공공기관 운영시간도 본인들 마음대로니 뭐. 모든 일에 철두철미한 독일 사람들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 기절한다는 우스개소리도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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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운 점은 큰 기업의 직원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비슷하다는 것. 회사 대 회사로 물건을 구매했을 때 제대로 된 날짜에 물건을 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다. 대체 어떻게 하면 매번 납기를 안 지키는 게 가능한지를 오히려 묻고 싶을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캐릭터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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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다보니 노란 박스를 뒷자리에 실은 자전거가 왔다 갔다 한다. 자전거 택배란다. 제때 배달은 될까? 빠른 배달을 위해 생긴 이탈리아답지 않은 시도.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고 가는 택배아저씨의 등을 바라보며 응원을 해야 하는 건지 웃어야 하는 건지 망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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