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퇴사, 유학

결혼하고 혼자 떠나는 패션유학

by 윤 Yoonher


결혼, 첫 직장 퇴사 그리고 유학을 떠났다. 홀로.


3년 동안 패션MD로 회사를 다니는 동안 점점 독해져갔다. 승진을 하고 성과를 낼 수록 어쩔 수 없이 남을 채찍질 해야 하는 일 투성이인 현실이었다.

하루는, 물건 납기를 못 맞추게 되었다며 죄송하다는 나이 지긋한 업체 사장님께 정신나간 사람처럼 몰아부쳤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주 인민재판 주간회의의 단두대는 내 차례가 확실했다. 휴 이러다 성격 버리는 건 시간문제 같았다.


4년차가 막 되었을 때, 팀장으로 발령받은 팀은 아동복팀이었다. 직책이 주어졌지만 아직 파릇한 29살 내게 아동복은 지루하게 느껴졌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해' 신호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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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생활 중 결혼도 했다. 둘이 똘똘하면 부모님처럼 무난하게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닐꺼라고 생각했다. 순진했다. 남녀차별 없이 컸고, 남자에게 기댄다는 생각을 싫어했다. 20대 연애할 때 남자가 돈 자랑을 하면 어찌나 싫었던지. 그 꼴을 못봤다. 참....성격이다.


평생 처음, 내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20평 오피스텔 전세를 계약했다.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봐 말씀을 늦게 드렸다. 엄마는 신혼집에 와 보시더니 한숨을 쉬며 살 가구가 없구나...하셨고, 시댁식구들은 신축 오피스텔이라 호텔같다고 했다. (참 좋은 분들이다. 그 당시 상황을 풍자) 같은 해 결혼 한 친구의 타*팰리스 신혼집에 다녀와서 앓아누웠다. 그냥 뭔지 모르겠는 삶의 무게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가 선택해서 만들어가는 인생, 도전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정해주는 나와 맞지 않는 업무를 하며, 하루하루 삶을 살아가며 30대를 그냥 그렇게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할래.

유학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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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했으니 1년 이상은 힘들었다. 이태리에 있는 학교의 패션바잉 석사코스로 정하고 합격통지를 받았다. 학비는 퇴직금에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다. 생활비는 남편이 매월 월급의 일정금액을 보내주기로 했다. 마침, 남편 후배가 이태리에서 학업 중이어서 자리를 잡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다. 대책은 없었다. 그냥 그러기로 했다.


이쯤에서 남편이 대단하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듣는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얘기하면, 남편은 전형적인 사수자리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고, 자기만의 길이 중요한 사람이라 1년 쯤 떨어져 있는 지내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 였다. 물론, 생활비를 보내 준 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에 있어도 같이 썼을 돈이었겠지만.


시댁에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에 내가 자랑스럽게도 뽑히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의 끼니를 걱정하셨지만, 뭐 어쩔 수 없었다. 성인이니 본인 밥은 본인이 해서 먹어야죠. 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엄마, 아빠는 큰 딸의 꿈을 항상 지지해주셨다.

스물 아홉, 첫번째 회사를 퇴사하고 이탈리아 밀라노로 혼자 유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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