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퇴사, 결혼 그리고 혼자떠난 유학

패션MD 이탈리아 밀라노

by 윤 Yoonher


20대 마지막 해 봄, 나는 결혼을 했고 3년 간 다닌 첫 직장을 퇴사했다. 다니던 대학원은 한 학기 남겨놓고 휴학을 했다. 대신 이태리 어학원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다.

주변에서는 결혼하고 혼자 먼곳에 간다고 걱정했다. 어차피 평생 살 껀데 1년 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반문했다.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아니, 반박하지 않았다. 결혼, 퇴사, 유학. 어떤 선택도 내게 강요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 스스로 내린, 야무지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그냥, 무언가에 이끌리듯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이태리 밀라노로.

결혼 5개월 된 남편은 휴가를 내고 자리잡는 것을 도와주러 같이 갔다. 남편의 친한 후배가 밀라노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도착한 첫 날 저녁, 앞으로 1년 간 내 방으로 쓰일 방 침대에 앉아보았다. 여름 끝 무렵의 텁텁한 공기, 모든게 낯설었다. 보장된 삶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설레였다.


IMG_3759.jpg


학교가 시작되었다. 일명 패션바잉 석사과정. 바이어로서 패션 상품을 엄선하여 구매하고 적정 마진을 붙이고, 높은 판매를 이루도록 하는 일련의 마케팅 수업이다.
과 정원은 20명으로 유럽 각국과 중국, 대만 학생들, 한국은 나를 포함하여 두 명. 수업은 이태리어로 진행되었고, 동시통역기를 귀에 꽂고 영어로 필기를 했다. 영국식 영어 악센트가 강했던 동시통역사의 발음을 받아 적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었다.

2주에 한 번씩 7과목을 시험봤다. 뒤늦게 공부 한다고 고3 때도 안 새본 밤을 새기 일쑤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친구들과 수퍼에서 사온 와인 몇 병 늘어놓고는 디자인에 대한 심오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열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패션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세계적인 패션의 중심지에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학교 정문을 나서면 밀라노의 명품거리, 지나가는 할아버지 마저 멋쟁이인 그곳. 몬테나폴레오네 였다.
어느 날은 운이 좋으면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Tom Ford)를 마주치곤 했다. 명품매장은 비싼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교재였다. 전 세계 패션인이 모이는 패션쇼, 밀라노 패션위크는 학교의 참관수업과 같은 존재였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IMG_2314.JPG


반면, 나는 생활비를 아껴 쓸 필요가 있었다. 일반 회사원 월급을 떼어 보내온 돈으로 월세를 내고,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문화생활까지 해야했으니 말이다. 화장품은 수퍼에서 사고 웬만하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녔다.

루꼴라 샐러드에 참치 한 캔 통째로 넣고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두르면 근사한 점심 도시락이 되었다. 도시락을 들고 등교 길에 몬테나폴레오네 거리의 쇼윈도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교가 끝나면 부띠크 호텔 단골 카페의 1유로 짜리 커피와 수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충분했다.
충분히 행복했고,
충분히 근사했다.
소박하지만 충분히 멋스럽게 사는 방법.

이렇게 하루 하루 꿈을 꾸는 동안,
어느 새 서른 살이 되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13316938.jpg?type=m3&udate=20180227


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 이기적 워킹맘의 자아찾기 나홀로 여행





매거진의 이전글서른 퇴사, 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