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 fol:in 인터뷰
https://www.folin.co/story/1652
연초에 우연한 기회로 폴인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주제는 일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갭이어를 갖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나를 비롯한 몇몇 분의 인터뷰를 엮은 컨텐츠였다. 종종 이전 회사들에서 맡았던 런칭 프로젝트나, 소형 아파트 인테리어 등의 주제로 지면 인터뷰 경험이 있지만 온전한 내 이야기로는 처음이었다.
작업실에서 에디터 진영님과 만났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20여년의 커리어를 쌓으면서 가졌던, 그리고 현재 갖고 있는 갭이어에 대해서. 작년, 퇴사하고 홀가분한 마음과 한편의 복잡한 마음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름의 방식대로 정리되었다.
첫 번째 갭이어는 첫 회사를 퇴사하고 떠난 이탈리아의 1년 이었다. 스물 아홉. 아주 드물게 결혼하고 혼자 떠난 나의 첫 번째 갭이어는 불안 따위는 없이 그저 희망과 도전 같은 단어들로만 가득했다. 실제로 한국에 돌아와서 현실에서 가끔 막막해질 때 첫 번째 갭이어의 내 모습들은 큰 힘이 되었다. 어디에서 얽매이지 않는, 있는 힘껏 달려서 원하는 것을 얻고. 그 얻은 무언가의 겉이 화려해도 나 답지 않다면 내려놓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갭이어는 백화점 바이어에 합격을 고사하고 박사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던 6개월. 오랜동안 패션업계에 몸을 담았지만 내가 바라보는 패션은 브랜드이자 비니지스였다. 패션의 화려함의 비중이 커서 일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세계에는 애써 발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경험을 해 본 덕에굳이 욕심을 내지 않게 되는 어떤 영역이 생기는 건 아닐까. 결과가 좋거나, 겉모습이 좋다는 걸 알아도 끌리지 않는 세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갭이어를 계기로 커리어의 방향이 좀더 조직 리더, 기획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만약 그때 백화점에서 명품 편집샵 바이어를 했다면 지금의 커리어와는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세번째 갭이어는 지금이다. 두 번째 갭이어 이후 6년 동안 중견기업, 대기업, 스타트업에서 신규 런칭 프로젝트를 했다. 예전의 갭이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회사라는 조직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것. 잡오퍼가 들어왔을 때 진지하게 거절을 하는 것. 아무리 많은 돈이나 화려한 회사의 네임밸류, 직급 보다 일을 선택할 때의 기준이 그저 내 자신이 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어쩌면 지금도 학교를 다니고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갭이어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 이런 마음으로 세 번째 갭이어를 갖는 동안 한 일들을 리뷰해 보니
1. 두 번째 책 <기획하는 사람, MD> 를 출간했다.
2. 회사를 다니면서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던 박사과정을 7년만에 수료했다.
3. 이사를 했고 살림의 재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워킹맘 10년 이상 동안 살림은 남의 이야기였달까.
밀라노에서 공부할 때 처럼 작은 요리들을 이것저것 해보며 즐거워 하고 있다.
4.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직 적응중)
5. 강의를 하고 브랜드 컨설팅을 하고 있다.
6. 다음 학기부터는 모교에서 강의를 할 예정이다.
편한 마음으로 하나씩 해보는 중인데 참 감사한 일이 많았다. 가장 감사한 건 매일의 하루하루.
아무튼,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은 단순히 직업, 회사의 선택의 문제를 넘어 자신을 찾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폴인과의 인터뷰. 덕분에 옛날 사진들도 뒤적이고, 즐겁고 감사한 경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