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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Apr 21. 2019

[보] 누군가와 결혼하는 두려움에 대하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해답을 얻은 이야기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후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인 커플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평생 함께 살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쩌면 기적 같은, 생각만 해도 든든한 느낌이 든다. 허나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면 한 가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 두려움은 결혼을 하는 동시에 그것은 곧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로서의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20대 중반쯤 오래 만난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 남자 친구는 나를 그의 집에 데려가는 걸 좋아했는데, (그땐 그게 불편하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집에 가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지 못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어머니와 만나는 일이 많았다. 그의 집에 놀러 간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하다가 그의 어머니가 ‘요구르트 제조기를 하나 살까 하는데’ 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도 역시나 소비활동이 활발했던 내게는 몇 개월 전에 샀으나, 두어 번 사용하고 더 이상 쓰지 않은 채 먼지만 쌓여가는 요구르트 제조기가 하나 있었고 나는 괜찮으시다면 그걸 드리겠다고 했다. 흔쾌히 수락하셨고 나는 며칠 후 그를 통해 요구르트 제조기를 그의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와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던 어느 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는 길에 내가 집에 잠깐 들르면 어떻겠냐면서. 그날 나는 그의 집에 들렀고, 그의 어머니는 나를 대문 밖에 세워둔 채 요구르트 제조기를 가지고 나와서 이걸 굳이 안 줘도 됐을 거 같았다며 내 손에 다시 들려주었다. 그의 어머니에게 이걸 굳이 돌려주는 진짜 이유에 대해 따로 묻진 않았지만, 나는 따로 묻지 않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건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과 결혼도 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온 나에게 주는 언짢음의 경고 같은 것이었음을.


30대 초반 제법 오래 만난 또 다른 남자 친구가 있었다. 벚꽃이 활짝 핀 봄날, 한강이 보이는 어딘가를 걸으며 벚꽃만큼 활짝 웃고 있는 나에게 남자 친구가 말했다. “우리 결혼하면 정말 좋겠다. 나 근데 아침밥은 차려줄 거지?” 아침밥이라... 그래 차려줄 수 있다. 누가 차리면 어떠랴. 사실 나는 아침을 거의 먹지 않지만, 프리랜서인 내가 쉬는 날이라고 한다면 이른 새벽부터 출근하는 그를 위해 얼마든지 아침밥을 차려줄 수도 있다. 허나, 그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취업을 한 이후에는 너무 이른 출근시간 탓에 집에서는 도저히 아침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했고, 대신 회사에서 매일 아침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거기서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너는 지금, 너 스스로도 챙기지 못하고, 너의 부모님도 챙기지 못하는 아침식사를, 아니 심지어 너 스스로와 부모님을 대신해 회사에서 챙겨준다는 아침식사를 마다하고 굳이. 진짜 진심 굳이. 꼭 내가 차린 아침식사를 먹겠다는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 이건 결혼을 하자는 은근한 프로포즈인가, 아니면 바깥 밥에 지친 자신에게 평생 뜨끈한 집밥을 차려 줄 식모를 고용하기 위한 노련한 면접인가. 당시 그 이야기를 듣고 발끈하는 나에게 남자 친구는 네가 너무 민감하다면서, 자기는 진짜 아침밥을 차려달라는 게 아니었고, 그냥 말이라도 밥 차려준다는 얘기 좀 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냐고 서운해했었는데, “그럼 네가 말이라도 결혼하면 나한테 매일 아침밥 차려준다는 얘기는 왜 못해?”라고 했더니 그제야 아무 말 대잔치를 펼치던 그 입을 다물었고, 그날 데이트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참으로 구질구질했던 연애 스토리를 두 건이나 늘어놓다 보니 이걸 쓰는 지금도 기분이 상당히 언짢고 씁쓸해지는데, 이 와중에 한 가지 긍정적인 부분을 애써 한번 찾아보라고 한다면, 그들 덕에 나는 최소한 ‘결혼하는 사람이 나에게 특정한 역할을 강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결혼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 하나를 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최애 에세이 작가인 김하나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 사실 김하나 작가의 책이라면 그게 어떤 내용이든 나의 구매 결정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평소 작가님이 진행하는 책읽아웃까지 애청하는 나로서는 이번 책의 내용 역시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다.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황선우 작가와의 동거담을 담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에세이를 썼다는 것. 결혼만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라고 했다. 처음엔, 오 이런 식의 가족의 모습도 있겠구나! 평생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여행을 제외한 잠깐의 독립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는,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은 나는 전혀 새로운 감상이 들었다. 이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부부든, 친구든, 연인이든, 부모님이든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공감되어야 할 책이라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설거지 하나 돕지 않고 망나니처럼 산다든지(사실 이건 현재 내 얘기라 마음 한켠이 조금 찔린다. 아니 좀 많이. 엄마 미안해.), 부부가 함께 살기 때문에 남편은 경제적 부담을, 아내는 가사의 부담을 진다든지, 연인과 함께 살기 때문에, 혹은 친구와 함께 살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기대와 역할로서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살든 함께 사는 사람들이 염두에 두고 생각해봐야 할 공통적인 어떤 것이 이 책에 담겨있었다. 이 책에서 두 명 이상이 살면 그것도 단체생활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의 결혼도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조금은 덜 두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윤호와의 결혼이 평생 동안 반짝거리는 핑크빛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결혼 때문에’ 우리 관계가 지금보다 나빠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윤호에게 건넸다. 다행히도 윤호도 나와 비슷하게 ‘친구 둘이 사는 이야기’의 관점보다는, 어떠한 관계든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이야기’의 관점에서 책을 읽었던 것 같았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둘 모두에게 커다란 용기이자 위안이 되었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고, 누군가와 함께 살 예정이고,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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