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호 그리고 보람 May 02. 2019

[윤] 여자 친구의 축구 도전기_1

축구... 좋아하세요? 눈으로 말고 몸으로요.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커플로,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어느 월요일, 점심에 회사 팀원들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는 월요병에 지친 직장인들의 단골 대화 소재니까, 그날도 어김없이 누군가가 내게 물어보았다. 윤호님은 주말에 뭐 하셨어요?


"저는 일요일에 여자 친구 축구팀에 가서 하루 코치해주고 왔어요."

"주말에 축구하셨고... 잠깐만, 뭐라고요? 여자 친구가 축구를 해요?"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한국에서는 굉장히 특이한 일이다. 축구라면 죽고 못살아서 십수 년째 취미로 축구를 하고 심판 자격증까지 딴 나도, 성별을 떠나서 누구나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축구하는 여자'라는 키워드를 접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국가대표 여자 축구선수들 뿐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day off를 받았던 어느 주말,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meetup을 통해 축구를 하러 간 날이었다. Pick-up soccer(번역하면 축구 번개쯤 되려나? 특정 팀으로 운영되지 않고 아니고 그때그때 사람들을 모집해서 하는 축구를 뜻한다)여서 남녀노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잔디밭에 모여있었는데, 여자들도 몇 명 보였고 심지어 모임의 호스트도 여자였다. 으응? 저 여자들도 남자들과 같이 축구를 하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남녀 혼성 팀이 형성되었다. '그냥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브라질 출신 여자에게 3번 정도 돌파를 허용당하면서 오만했던 나의 생각은 무참이 깨졌다. 덤으로 축구를 하는 여자는 선수뿐이라는 편견도 같이 깨졌다. 

호주와 캐나다에서 축구하는 여자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출처 : 구글)


호주를 거쳐 캐나다에서도 살아보니 특정 종목을 특정 성별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을 가슴으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남녀 모두 대체로 더 선호하는 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권투 글러브를 끼고 내게 겁 없이 달려들면서 스파링을 하는 여자나 남녀가 뒤섞여 아이스하키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운동을 즐기는 데에 성별에 따른 제약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 체육이나 클럽 스포츠가 발달해서 다양한 운동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양의 문화 또한 장벽을 없애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한국에서 학교 체육을 생각해보면 피구와 발야구, 축구와 자습 정도의 키워드로 마무리지을 수 있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람이도 내게 그런 어려움을 종종 토로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 운동 은퇴러(2달을 넘긴 운동이 거의 없다고 한다)지만, 왕년에는 운동 좀 했던 언니였는지 발야구 4번 타자로서의 활약상(타율은 잘 모르겠다)이나 손가락이 부러진 채로 출전했던 피구(부상으로 벤치에서 관전하고 있었는데 "답답해서 내가 뛰었다"라고 했다) 등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말 끝에는 늘 "그런데 요즘은 운동하려면 너무 부담스러워."라고 덧붙이며 울분을 토했다. 자세한 내용을 더 들어보면 이렇다.


나는 팀 스포츠를 하고 싶은데 도대체 한국에서 여자들이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나 모임이 얼마나 있어? 애초에 스포츠라고는 학창 시절에 했던 발야구나 피구가 전부여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고 싶어도 도대체 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헬스나 요가, 필라테스 등의 운동으로 주로 눈을 돌리게 될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나도 남들이랑 경쟁하고 협동하는 운동 하고 싶다고!

그래서 나의 여자 친구께서는 적합한 운동을 찾기 위해 그동안 많은 시도(=탕진)를 하셨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보람이는 글쓰기 모임에서 추천받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내게도 권해주었다. 축구를 좋아하던 여자(작가 본인)가 용기를 내어 여자 축구팀에 가입하면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쓴 에세이였는데, 축구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요소요소 잘 짚어내며 술술 잘 읽히게 쓰인 책이어서 나 역시 즐겁게 읽었다. 각자 책을 읽고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 보람이가 은근히 축구에 관심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 인터넷의 축구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가끔씩 여자 축구팀 팀원 모집공고를 보면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보람이는 '축구는 너나 하면 됐지 뭘 나까지 시키려고 해?'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하루는 초보자로서 시작하기에 적당한 팀을 발견한 것 같아 구인글을 다시 보람이에게 보내주었다. 팀의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았다.



- 한 달 전에 갓 창단한 신생팀

- 초보 대환영(코치가 있어서 강습 예정)

- 선출 없음, 앞으로도 안 받을 예정



보람이도 관심을 보였는데, 이유는 '새로 시작하는 팀에 들어가면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긴, 어느 팀에 들어가도 텃세가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고 '고인물'들이 뉴비들의 기를 죽이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 역시 보람이가 부담 없이 시작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보람이는 이내 모집글에 있는 번호로 연락을 취했고, 당장 3일 후에 있을 팀 연습에 나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때는 우리 둘 다 몰랐다. 보람이가 두 달이 넘도록 꾸준히 축구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2부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보] 누군가와 결혼하는 두려움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