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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May 12. 2019

[윤] 여자 친구의 축구 도전기_2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커플로, 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보람이가 연락을 취했던 날로부터 3일 후에 팀 연습이 예정되어 있어, 보람이는 인생 최초로 축구를 하러 갔다.  만약에 나중에 자식이 생겨서, 그 아이를 스포츠클럽에 처음 보내면 이런 마음일까? 정작 직접 하는 사람은 덤덤한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가 오히려 더 긴장되었다. 어땠어...?


"재밌었어. 그런데 아무래도 축구화를 하나 사야 할 것 같아."

첫 경험에 대한 소감으로는 굉장히 강렬했다. 뒤이어 종목을 떠나서 몸을 쓰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다는 소감을 밝혔고, 신고 갔던 운동화가 축구화가 아닌 탓에 너무 미끄러워서 크게 한 번 넘어져서 축구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 모름지기 운동을 하려면 장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왠지 내가 더 신나서, 주말에 바로 동대문으로 축구화를 사러 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_iaHlun364&t=17s

축구화가 마음에 들면! 좋아요와 구독 부타....ㄱ.....



축구깨나 좋아하는 사람들(대체로 남자들이겠지만)이라면 선수가 아닌 '축구하는 여자'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굳이 성별을 바꿔서 얘기하자면 온갖 화장품을 종류별로 꿰뚫고 각 제품들을 이용해서 화장하는 방법까지 아는 남자를 만날 확률 정도일까?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단연코 축구여도,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었다. 각자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를 즐기면 되지, 꼭 내가 좋아해야 하는 것까지 무조건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나도 요즘에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 학생 때보다는 살짝 식어서, 보람이에게 축구를 같이 즐기자(=관람하자)라는 얘기는 거의 꺼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 여자 친구가 직접 축구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걸 바라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내심 기대가 되었었다. 


하지만 어디 축구라는 게 보는 것만큼 쉬운 스포츠였던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22명이 공 하나 보고 우르르 뛰어다니는 운동 같지만 생각보다 정교하고 해야 할 것이 많은 복잡한 스포츠가 축구다. 취미로 1주일에 한 번 정도 축구를 즐기는 나도 운동장에 서면 늘 실수하고, 커리어를 걸고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 때로는 부담스러운 감정까지 느낄 정도로 어려운 운동(사실 쉬운 운동에 어디 어디 있겠냐마는)이 축구다. 보람이 역시 초반에 여러 번 어려움을 토로했었다. 이게 재미는 있는데, 공도 제대로 못 차겠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조금만 뛰어도 너무 숨차고 힘들다, 등의 어려움 말이다. 


사실 축구를 '배운다'는 개념은 최근에서야 취미로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냥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서 놀다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 케이스였다. 그러다 보니 기본기도 없고, 워낙 운동신경도 없는 편이어서 '축구를 좀 배워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몇 년 전부터 몽글몽글 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보람이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으니 부족하나마 내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람이가 축구를 지금보다 잘하게 되면 더 재미있게 즐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보람이도 좋다고 해서 두세 번 정도 같이 연습도 했다. 


축구 연습을 위해 (나의 열정을 대변할) 접시콘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하러 나갔다가 서로 대판 싸웠다. 보람이는 그냥 재밌게 공이나 차고 나랑 놀고 싶었는데 너무 연습이 과하다는 의견이었고, 나는 '운동을 하러 왔는데 이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의 20% 정도만 담아 연습을 했는데 일어난 참사였다. 보람이는 '내가 좋아서 하는 축구인데 네 욕심이 너무 과하다'라고 말했고, 나는 '나대로 나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서 너를 도우려고 하는데 섭섭하다'라고 했다. 부부끼리 운전 가르치다가 화나서 싸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부부도 아니고 운전도 아니지만 우리가 딱 그 모양이었다. 결국 둘만의 축구 연습은 그 날로 끝이 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재개되고 있지 않다. 


생각해보면 축구를 문자 그대로 '즐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 할 수 있는 러닝이나 헬스 등의 운동이라면 내키는 대로, 이를테면 500미터 정도만 걷거나 아령을 서너 번 들었다가 놓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승패가 결정나는데다가 팀 스포츠이기까지 한 축구는 다르다. 팀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하면서, 상대 팀과 경쟁을 하는 것은 물론 팀원과도 주전 경쟁(취미 수준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학창 시절에는 분명 존재했었다)을 하기 때문에 운동 자체를 오롯이 즐기는 것이 어렵다. 나는 이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축구는 열심히,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었고, 보람이는 축구를 막 시작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이런 내 생각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 우리가 싸웠던 원인이었다. 



다툼이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 뒤, NIKE에서 주최하는 페스티벌에 갔다. 페스티벌 내용 중 하나로 아마추어 여자 풋살 대회가 있었고, 보람이네 팀도 참가를 해서 구경을 갔었다. 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대회를 많이 참여할까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한국에서 축구하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았나 새삼 느꼈다. 재미있게도 축구하는 사람들 특유의 껄렁껄렁함(?)을 느낄 수 있어서 그 문화는 성별과는 상관이 없나 보다 싶었는데, 남자 축구대회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즐거움과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경쟁이 있기에 어느 정도 팽팽한 분위기는 있지만 과열되지 않은 따뜻한 느낌이랄까? 보람이네 팀은 신생 팀이어서 경험 삼아 출전했기 때문에 아쉽게도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하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우리 슈팅 한 번 제대로 하고 나오자'는 목표를 외치고 씩씩하게 경기장에 들어서는 그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축구라는 같은 운동을 하지만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었구나, 그리고 실력과 상관없이 저렇게 즐겁게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슬며시 보람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고,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즐거워졌다.




보람이는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왕십리 채지단' 이 되겠다는 야무진 목표가 있었는데, 신입으로 들어온 회원(심지어 유럽 용병도 세 명이나 들어왔다고 한다!)들이 운동을 너무 잘해서 지단은커녕 주전도 못하겠다고 시무룩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즐겁게 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잘하면야 좋겠지만 조금 못하면 어떠랴, 보람이가 새로운 운동을 하면서 재미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녀와 그녀의 팀원들 모두 다치지 않고 즐겁게 운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난 후에, 보람이에게 조심스럽게 다시 연습을 하자고 제의해볼까 한다. 보람이가 너무 부담스러워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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