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1. 2번째~4번째 타투
# Happyending is mine
#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 If I have lost confidence in myself, I have the universe against me.
나는 두 번째 ~ 네 번째 타투를 같은 날 동시에 시술받았다. 일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내 몸에 있는 모든 타투들은 레터링이라 비교적 시술이 간단한 형태이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개를 받는 것이 가능했으리라.
사실 이때 받았던 타투들은 조금 충동적으로 받은 면이 없잖아 있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방콕에서 시술을 받았는데, 어떤 문구의 타투로 가질지 고민의 시간을 가지긴 했지만 고민의 깊이나 시간은 첫 타투에 비해 짧은 편이었다. 물론 각각의 문구에 나름의 의미는 있었지만 퇴사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있었던 탓에 좀 더 심사숙고하지 못한 것이 살짝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또한 당시 내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기에 내 타투를 시술해준 타투이스트(그녀는 뉴욕에서 오랜 기간 동안 타투이스트로 일했던 경력이 있었다)와 명확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았던 것도 약간의 후회를 더해주었다. 특히 2개의 타투는 발등에 각각 새겼는데, 2달 여간 배낭여행을 하면서 계속 쪼리를 신었던 탓인지 한쪽의 타투 중 일부는 계속해서 지워지는 것이었다! 기껏 받은 타투가 한 달도 안돼서 지워져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었는데, 라오스 방비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한국 타투이스트께서 내 발을 보시더니
"그 부위는 관리가 어렵고 잘 지워지는데...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셔야 해요."
라고 하셨다. 절망스러운 기분으로 방콕으로 돌아와(다행히 여행의 in & out이 방콕이었다) 리터치를 받으며 타투이스트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응? 주름진 곳의 타투는 잘 지워진다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맹세코, 들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리터치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시 타투가 지워져서 체념하고 있었는데, 5번째 타투를 한국에서 받을 때 타투이스트께서 보시더니 리터치를 해주셨다. 그 이후로는 전혀 지워지지 않는다. 방콕의 타투이스트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정말 '기술'이라는 것이 있나 싶은 경험이었다.
2. 5번째 타투
# Life is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at all
5번째 타투는 첫 외국생활을 호주에서 보내고 와서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에 한 달간 한국에서 머무를 때 받았다. 상투적이지만 외국생활은 힘든 점도 있었던 반면 얻은 점도 많았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했고, 조금 더 도전해봐야겠다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때였다. 마침 헬렌 켈러의 "Life is a daring adventure or nothing at all"이라는 문구를 알게 되었다. 타투를 하나 더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시기여서 커트 코베인의 유서에 쓰인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이라는 문장 사이에서 고민을 잠깐 했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burn out'이라는 단어의 너무 의미가 센 것 같아서 헬렌 켈러의 문구로 결정했다.
이 타투를 받을 때는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내게 용기를 주는 문구여서 좋아하는 타투 중 하나이다.
3. 6번째 타투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
처음에는 이 문구를 '배달의민족' 포스터에서 보았고, CNN의 창립자 테드 터너가 한 말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첫 회사 부장님께서 이 문구가 쓰인 포스터를 사무실 문 앞에 붙여두신 덕분에 당시 부서 내 팀원분들 모두가 진저리를 쳤었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회생활에서 이만큼 좋은 말도 없지 않나 싶다. 불평을 하기보다는 리더가 되어 이끌든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마음가짐으로 물러서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조용히 따라가는 것이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이 문구를 왼쪽 팔에 타투로 새겼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회사에서는 일하지 않겠다는 치기 어린 다짐을 해서, 내가 가진 타투 중 가장 남에게 잘 보이는 곳에 받았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팔에 한글 타투가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게다가 타투를 받은 이후로 한국에서 1년 정도 일을 한 후 말레이시아에서도 한국 팀에서 일을 하고 있어, 굳게 다짐한다고 할지라도 꼭 생각처럼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교훈도 덤으로 얻었다.
이 타투 덕분에 이전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무언가 바꿔야 될 상황이 있고 불합리한 면이 있다면 목소리를 크게 내는 성격은 조금 더 강해졌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거나 상황이 이해가 간다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하며 이내 순응하고 어느 정도 상황을 따라가는 법 또한 배우게 되었다. 다만 마음 한켠에는 '뭐, 정 너무 이상하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첫 사회생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지 싶다.
사람들이 내게 타투에 대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Top 3
Q. 어디가 가장 아파요?
A. 타투를 받아보지 않았더라도 뼈와 가까운 쪽이 아프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나도 그랬었는데, 개인적으로 허벅지에 받았던 타투가 가장 아팠다. 어느 정도였냐면, 2~4번째 타투를 같은 날 동시에 받았는데, 왼쪽 발등 -> 왼쪽 허벅지 -> 오른쪽 발등 순으로 시술을 받았다. 왼쪽 발등도 물론 매우 아팠지만 '살이 없는 부위이니 당연히 아프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허벅지 시술을 받을 때는 3번 정도 'stop'을 외칠 정도로 아팠었다. 그다음에 오른쪽 발등에 타투를 받을 때는 상대적으로 덜 아프다고 느낄 정도였다. 나중에 허벅지에 타투를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다. 많이 아팠어요?
Q. 나도 타투 하나 갖고 싶은데...
A.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은 당연지사. 내가 추천하는 방법은 헤나나 타투 스티커를 이용해 보는 것이다. 물론 정확히 원하는 시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내 몸에 무언가가 그려졌을 때 어떤 느낌인지, 실제로도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이다. 비용도 타투에 비해서 저렴하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지울 수 있다.
Q. 타투를 더 가질 것인지?
A. 매번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외치지만 타투의 중독성은 정말이지 어마 무시하다. 다행히 도안을 가질 생각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다음 타투를 받게 된다면 역시 레터링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 중이다.
몇 년 동안 불기 자심(不欺自心)이라는 문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성철 스님의 휘호로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을 속이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까지 경계하라는 뜻이기 때문에 평생 귀감으로 삼을만한 문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이 문구로 타투를 받는다면 한자로 하고 싶은데, 어디에서 누구에게 타투를 받아야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