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흔적 없는 하루들
업무상 미팅을 위해 차량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있었다. 당시 불안과 초조함이 약으로도 잘 조절되지 않을 때였다. 안전벨트가 나를 '조여 온다'는 생각에, 자동차 안에 '갇혀있다'라는 생각에, 긴 터널이 나를 '삼켜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자동차를 거부했다. 이를 모르는 당시 팀장은 나 혼자 미팅을 다녀오라고 했다.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했다. 불안장애가 있어서 자동차를 운전하지 못한다고. 지하철조차 타지 못한다고. 그나마 버스는 창문을 열 수 있어서 버스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직접 운전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함께라면 버틸 수 있다고.
"왜 지하철을 못 타지?"
팀장은 혼잣말로 읊조렸다. 내가 예민해서일까, 바로 앞에 앉아서일까.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같이 갑시다"라는 팀장의 말에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팀장이 내뱉은 말이 나의 뒤를 따라왔다. 그 말은 한동안 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게... 난, 왜, 지하철을 못 탈까.'
당시보다는 많이 좋아졌다. 아직 완전한 평범함을 누리진 못하지만,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는 딸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까운 곳에 놀러 다니기도 한다. 지금은 웃을 줄도 안다.
휴직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울퉁불퉁 아스팔트를 달리는 버스 때문에 머리는 징징 울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창문에 무거운 머리를 기대고 있는 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일까. 요즘 다시 심장이 갑자기 벌렁거린다. 숨구멍이 간혹 막혀온다. 숫자를 세며 깊은숨을 들이쉬고, 가슴에 손을 꾹 얹으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공포는 잔불처럼 몸에 여운을 남겨 내 근육들은 긴장을 여전히 풀지 못한다. 당장 복귀하는 것은 아니니 진정하라고 스스로 달래 본다.
약을 조정했는데도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는 것이, 통제되지 않는 상태의 내가 회사로 돌아간다는 것이 걱정된다. 복직 후에 증상이 예전과 같이 심해지면 다시 휴직을 해야 하는 건가. 업무를 잠깐 맡다가 빈자리를 만들고 나오느니, 차라리 돌아가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에 이은 생각은 머릿속에 눌러앉아 웅덩이처럼 깊어졌다.
이미 알고 있다. 몸의 소리를 따르면 된다.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스스로 달달 볶고 있는지 의문이다. 회사에서 과장이기 전에, '나'다. '과장'은 나에게 속한 여러 이름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왜 계속 타인의 눈초리를 신경 쓰며, 오히려 가공해 가며, 없는 눈초리에 기가 눌린 채로 혼자서 부담을 갖는 것일까.
회사에서의 내가 '온전한 나'인 줄로만 안 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잣대를 지금의 나에게도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본다. 아니, 스스로 상사가 되어 주 단위 또는 월 단위로 완치를 향해 가고 있는지 KPI를 측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평가의 대상이 아닌데. 성과를 낼 필요도 없는데.
지하철을 타기 전 자기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옆 사람, 뒷사람은 아무렇지 않잖아. 그래 보이잖아.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들어 올려 노란 선을 넘었다. 곧 갇힐 통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자리를 노렸다. 닫힌 문 틈으로 지하철이 달리는 속도로 만들어진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보았더라면 지하철 문 냄새를 코에 그득 담으려고 킁킁대는 이상한 사람이었겠지.
두 손으로는 가방 줄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이 노래질 때까지. 뒤꿈치와 발가락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출렁이는 바닥 위에서 힘을 주었다. 신발 속 발가락 등을 한껏 굽힌 채. 두 눈은 쉼 없이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난 쫓기는 중이었다. 내가 죄를 지은 적 있던가. 이어폰조차 꽂지 못했다. 귀에 꽂는 순간 불현듯 찾아오는 먹먹함이 나와 세상을 갈라놓을 것만 같다.
외상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은 나의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 못할 거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 하나 내가 직접 겪었다. 내가 겪은 것에 '왜'라는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 문장에 내가 느낀 모든 공포를 담을 수는 없지만 설명은 할 수 있으니까.
아직 회복 중이다. 오히려 이런 증상들이 아직 나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 그로 인해 회사에 돌아가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 휴식을 조금 더 허락해야 한다는 이유는 아닐까. 복귀해야 할 휴직자라는 생각을 잠시 옆에 내려놓는다.
지금의 나는 쉬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