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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Sep 01. 2020

걷는 사람 하정우에게 배우는 '나'란 사람

텍스트를 좋아하는 여자





웬만하면 걸어 다니는 하정우!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 이동거리를 말할 때 편도 몇 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만의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는가 했더니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하는가 했더니 이제는 또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나면 그대도 그를 따라서 바로 반바지와 티셔츠를 걸치고 동네 한 바퀴 돌고 아쉬운 대로 5천 보라도 찍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일으킬 것이다. 꼭 필요하지만 정말 하기 힘든 '걷기'를 일상 속에 제대로 넣어서 걷지 않는 하정우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걷기에 미친 열정을 가지고 있다. 하정우에게 얻은 에너지로 나도 무더위에 집밖을 나가서 5000보 이상을 찍었다! 이 책은 독자를 집 밖으로 내보낸다.

 




하정우는 예술가는 일탈과 방황, 내면과의 갈등 끝에 분열을 거쳐 남들과는 다른 삶과 작품을 보여준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한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무명시절 헬스클럽을 다니며 몸을 만들고, 건강하고 맛있는 집밥을 직접 해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휴식이 생길 때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쩔쩔 매면서도 끝까지 가 보는 사람이기도 하다. 피로에 절어 움직이기도 싫은 날 스스로를 조금씩 달래서 러닝머신에 앉아 있다가 일어서서 한 발자국을 떼 보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서 걷도록 스스로를 잘 리드하는 사람이다. 일단 땅 위로 걸음을 딛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땅이 그의 발을 올려주고 그의 몸이 대답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




하정우를 ‘암살’, ‘신과 함께’, ‘베를린’에서 만났던 나는 이 배우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게 뭔지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무엇. 그의 아버지인 연기자 ‘김용건’에게도 그런 무엇이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연기자는 작품 속에서 그때마다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지만 다른 사람을 살아도 한결같은 그 무엇이 투영된다. 심지어 비열한 사기꾼역할을 하고 있어도  나는 이 사람을 미워할 수가 없다.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투영하는 법이다. 그가 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사람을 매력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는 '반듯한 사람'이다. 이 반듯하다는 것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반듯함'은 이런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사람은 ‘절대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내려놓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 또 ‘끊임없이 자신을 채울 사람’이라는 것도. '천만 관객의 보증수표인 하정우'라는 배우가 믿을 만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하정우라는 자연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스스로 자신을 '삶이 재미있어야 하는 사람'이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사람을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고 나는 연예인이나 스타를 오래 좋아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아꼈던 사람이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아니면 갑자기 삶이 너무 허망해니까. 이 책을 읽고 나는 하정우라는 사람을 한 번 좋아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인가 알아보려고 한다.


 



나의 소소한 일상은 이렇게 시작한다. 처음엔 책상에 앉아 책을 본다. 등쿠션을 대고 발을 쭉 뻗어본다. 발에 닿는 발바닥의 느낌이 편안하다. 아예 하체를 다 닿게 해 볼까 생각하고 늘어뜨려본다. 이제는 허리가 무거운 것 같아 스르르 방바닥으로 내려와 나의 피곤한 몸을 다 받쳐 줄 침대나 소파로 기어들어간다. 물론 베개를 받치고 누워서 책을 본다. 왠지 책이 천근만근 무겁다. 어느새 잠에 떨어져 있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TV로 그 다음엔 아이패드나 모니터로, 급기야는 스마트폰을 들고 벌렁 눕게 된다. 그러다 일어나면 웬걸~~ 일요일 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걸 거꾸로 해내고 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을...

 

자~ 이제 나로 돌아가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봤다. 나도 하정우처럼 뭔가에 남다른 열정이 있는 사람인가? 정말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유시민 작가를 잘 이해한다. 여행지나 박물관에서도 조그만 돌 속에 박힌 사진의 해설을 다 읽지 않으면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남편이 박물관에서 휘휘 사진 몇 장을 보고 저만큼 가 버릴 동안, 벽에 부착된 안내문을 빠른 속도로 읽고 있다가 결국 남편이 그 방을 나가면 일행에 뒤처질 세라 아쉽게 포기하고 나온다. 그리고는 못 다 읽은 텍스트에 뭔가 내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슬며시 화가 난다. 해설사가 작품을 해설해주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내가 직접 텍스트를 읽고 보고 느끼고 이해해야 만족하는 사람이다. 시키지 않아도 앞에서 읽은 것과 뒤에서 읽은 것을 연결하여 고리를 만들고 전체를 이해하려고 혼자서 부지런히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설명해달라고 한 사람은 여지껏 한 명도 없었다. 죄없는 남편이 나의 30분짜리 정리를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이런 내가 해외에 나가면 어떻게 될까? 나는 알지 못하는 문자를 만나는 데 스트레스가 있는 사람이다. 영어로 된 문자를 발견하면 그래도 안도감을 느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모르는 단어는 사전으로 찾아볼 수 있지” “아 이 걸 다 읽어봐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제한된 시간이 있으면 애써 텍스트를 외면한다. 떠날 때 너무 아쉬워질까 봐.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결론 내렸다.


'텍스트를 좋아하는 사람. 마음에 들어오는 텍스트는 읽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 읽고 나면 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사람, 머릿속에 텍스트가 채워지면 그 다음에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 ‘머릿속이 채워지면 말이나 글로 비워내야 하는 사람’이라고. 나도 움직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서는 하정우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도 하정우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다가 나를 바꾸고 삶을 바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텍스트를 좋아하는 사람인 나는 일상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1. 낯선 텍스트를 이해하는 기쁨을 주자-외국어 공부하기

2.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을 주자-글 쓰고 독서하는 시간 늘리기

3. 가슴속에 넘치는 말을 비우는 기쁨을 주자-브런치에서 작가되기

4. 여행지에서 텍스트를 읽을 시간을 주자-여행일정은 여유있게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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