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감성 사진 입문기

by 오느

사진을 잘 찍는 SNS 지인이 있다. 그녀가 사진을 한 장씩 보여 줄 때마다 감탄했다. 미술을 공부하신 분이니 감각이 좋으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번아웃을 이겨내고 인스타그램에 등장했다. 자신의 일상과 감사기도, 명상, 만보 걷기 인증사진에 본인이 찍은 사진과 아이패드 그림을 한 장씩 올리기 시작했다. 건강과 마음 챙김을 위해서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고자 시작한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한바탕 이 세계에서 좌충우돌 이제 맛을 좀 본 나에게는 훌륭한 감성사진 갤러리를 열기에 충분한 재능으로 보였다. 그녀의 멋진 사진과 그림을 맨 앞에 포스팅하고 사진과 그림 갤러리로 만들어 보라고 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알아주던 그녀의 재능은 요즘 인스타에서 꽃피고 있다.





그런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좋은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 졌다.


꽃을 보기 힘든 황량한 겨울에도 어딘가에서 빛나는 작은 피사체를 발견하던 그녀! 그녀의 사진에 담긴 감성! 그런 따뜻한 감성을 나도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마음. 내 눈에만 보이는 그 무엇인가가 내게도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런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다. 고기능성 카메라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복잡한 기술을 배울 용기도 없는 내가 일상 사진이라도 내 감성을 불어넣어 찍을 수 없을까? 모자이크처럼 대충 찍은 사진 오려내서 포스팅할 게 아니라 정말 구도가 딱 일대일 피드에 적절한 사진. 필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멋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다.


남편과 1박 2일의 가을 경주여행을 떠났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 것은 유적지도 맛집도 호텔 브런치도 아니었다. 보문단지 호수의 경치에 넋을 놓고 헤매다 체크아웃 시간을 놓칠 뻔했고, 호텔 방 베란다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바쁘다 바빠를 연발하면서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는 여행만 다녔던 우리가 정작 놓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한 순간이었다. 고개를 들고 집 밖을 나서면 눈길 닿는 곳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었던 넘치는 자연의 선물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집에 가서도 가끔 보겠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고 사진 찍기 놀이에 이 여행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감성 사진을 배우기 위한 동기가 충분히 쌓였을 때, 앞에서 언급한 SNS 지인 반디숨님이 내게 원데이 사진 강의를 해 주겠노라고 제안해 주셨고, 사진 찍는 영상을 공유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사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주셨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몇 가지 기능만으로도 얼마나 감성 풍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공원에서 사진 찍는 영상을 공유까지 해 주셔서 굼벵이 이해력인 나에게도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레슨을 받은 날부터 집 앞 공원에서 사진을 찍어보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하루에 한 번 만보 걷기를 시작하고 있어서 건강도 챙기고 사진도 배우기로 했다. 그녀는 근사하게 나를 사진 수업에 초대했다.





사실 나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슬렁슬렁 산책을 나가면 한 바퀴 겨우 돌고 집에 온다. 그나마 게을러 하루 건너 한 번씩 하다가 일주일에 1~2번으로 자꾸 물러난다. 체력 저하에 면역력까지 약해져서 이런저런 잔병치레를 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운동을 미룰 수 없어 만보 걷기를 하러 갈 때는 명상음악과 애창곡을 챙긴다. 먼저 운동 목표인 공원 2바퀴를 돌고 가볍게 운동기구로 몸을 풀어 준 다음 사진을 찍을 주변 사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사진을 배우기 전에는 흔하디 흔한 들꽃에 지천으로 깔린 낙엽인 줄 알았는데 뭔가 색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늘 보던 물과 눈에 익은 가로수지만 햇빛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카메라를 놓고 보니 작은 토끼풀과 민들레가 바람에 살포시 흩날리고, 나뭇가지에 떨어질 듯 매달린 이파리와 굵고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얽히고설킨 하늘에 나뭇가지 사이 햇살이 살며시 비칠 때 얼마나 공원이 눈부신지 처음 이 순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나만의 은밀한 교감의 순간이 이런 것일까? 내가 어렸을 때 즐겨 읽은 <빨간 머리 앤>에 보면 그녀가 프린스 에드워드 섬(Prince Edward Island)의 경치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보기 좋다고요? 어머, 보기 좋다는 말만으론 부족해요. 아름답다는 말도 적당하지 않고요. 그 낱말들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아, 경이롭다. 그래요, 경이롭다예요. 제 상상력으로도 더 멋지게 만들 수 없는 걸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아주 이상하게,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통증을 느껴요. 아저씨도 이렇게 기분 좋은 통증을 느껴 본 적이 있었나요?" 앤은 매슈 아저씨와 마차를 타고 지나며 지명을 바꾸기 시작한다. 배리 연못은 '반짝이는 호수'로 가로수길은 '새하얀 환희의 길'로.


이런 교감은 신이 허락한 특별한 눈을 가진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에게만 허락된 비범함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을 읽고 '프린스 위드 섬'을 유튜브를 통해 본 적도 있다. 내게는 그저 그렇고 그런 남쪽의 제주도 비슷한 섬이라고 여겨졌을 뿐이다. 직접 가 보면 다를까? 하고 언젠가는 Green Gable 그 집을 방문해 보리라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작은 생명체가 그녀의 손에서 어떻게 감성 사진이 되는 지를 듣고 나서 내가 카메라의 렌즈를 들이대듯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니 내게도 평범한 자연 속의 숨 쉬는 생명체가 조금씩 문을 열어 주었다. 공원 한 구석에 볼품없이 서 있던 바위가 단풍 속에 쌓여서 참 고운 단풍 이불을 덮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반짝거리는 수면에 비친 건물의 모습이 때마침 햇살을 받으며 하늘빛과 물빛이 만나는 모습도 신비해 보였다. 바닥에 떨어져 이제 낙엽쓰레기로 포대에 들어갈 운명인 바스락거리는 이파리가 장미보다 더 고혹적인 색깔인지 처음 알아보는 날이었다.



나는 오늘도 '기분좋은 통증'을 느끼러 공원으로 떠난다.


사진을 배우지 않았으면 늦게 핀 작은 장미가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제 겨울이 오면 며칠이나 그 꽃을 피우고 있을지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자세히 보니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지난 여름에는 우울한 산책길에 쨍쨍한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로 왔다가 이제 나뭇가지에서 툭 떨어져서 바닥에 깔린 낙엽이 마지막 모습까지 이렇게 고와야 되나?


떠날 때도 이렇게 가볍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가을 감성 사진을 폰카에 담으면서 왜 그들이 숲으로 떠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나는 요즘 음악보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과 교감하며 걷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작은 움직임을 관찰하려면 음악에 마음을 줄 수가 앖다. 알고 나면 모든 게 달라 보이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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