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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Jan 21. 2021

스마트폰이 싫어졌어요

-스마트폰 중독 예방 교육 동화 -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을까?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늘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올려놓고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스마트폰을 멀리 책상 위에 던져 놓고 잔다. 아니 이제 문자 확인도 잘 안 하게 되었다. 그전부터 엄마는 스마트폰을 밤에는 맡기라고 하셨지만 스마트폰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의 영상을 보든가 음악을 듣다 보면 혼자 있는 방안이 덜 허전하고 무섭지도 않았다. 작년까지는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잤었다.     


할머니는 요리도 잘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뭐든지 잘 뚝딱 만들어 주셨다. 할머니와 나란히 누워 내가 지어내 이야기를 해 주면 할머니는 “아이고, 어쩜 그렇게 이야기가 재미있냐?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됐어?” 하고 웃어주셔서 이야기 만들기도 신이 났다. 친구들이 나하고 꼭 닮은 도플갱어가 나타났다고 할 때에도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지낼 때는 무섭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몸을 뒤척이면 얼른 이불을 덮어 주시곤 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숙모가 아기를 낳은 후에 숙모가 일하러 가는 동안에 아기를 돌봐 주러 가야 한다고 삼촌 집으로 가신 것이다. 아기가 너무 어려서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가 없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제야 내 방이 생겼다고 내심 나는 신이 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내 방에서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놀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중학교에 가서도 쓸 수 있는 큰 책상과 침대를 사 주셨다. 새 침대가 들어오는 날 침대 위에서 팡팡 굴러보고 누워 보니 푹신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처음엔 모든 게 다 좋았다. 아이들이 내 방 생겼다고 놀러 왔고 내 방에 있는 새 가구를 뽐내는 기분도 최고였다. 그런데 밤이 문제였다. 천둥 치고 비 오는 날은 진짜 무서웠다. 한 번은 엄마 아빠 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서 사이에 끼어서 자기도 했다. 몇 번 밤마다 뛰어갔더니 이제는 중학교 갈 날이 멀지 않으니 혼자서도 잘 자야 한다고 부모님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 무섭고 외로운 밤에 스마트폰은 내 친구가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아프리카 TV를 틀어놓고 있으니 거실에서 부모님과 같이 TV를 볼 필요도 없었다. 채널을 부모님이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보시니까 사실 불만이 많았다. 그나마 저녁을 먹고 나면 “학원 숙제는? 학교 숙제는?” 그러시면서 가서 공부하라고 하신다. 게다가 카톡으로 친구들이 게임방에 들어오라고 문자가 오면 바로 폰으로 게임 화면에 접속할 수 있다. 혼자서도 같이 있는 것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가 있었다. 가끔 학원에서 만난 여자애들이 카톡으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어서 혹시 그 애한테 문자가 왔나 수시로 확인을 하게 되었다. 만나서 할 얘기는 없는데 폰으로는 대화가 술술 잘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한 가지 문제는 시험기간에도 스마트폰을 옆에 두었다 하면 계속 문자와 알림이 와서 집중이 잘 안 된다는 점이다. 자꾸 성적이 내려가니 아버지는 이번에 더 내려가면 벼르고 계시는 듯한데……. 에라, 모르겠다. 일단 놀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되지 뭐. 잠깐 게임을 하고 친구들하고 톡방에서 몇 마디 주고받았는데 벌써 새벽 2시가 넘었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눈이 안 떨어졌다. 요즘 누나 잔소리에 짜증이 나서 나는 집에서 눈에 힘을 좀 주고 다녔다. 말하면 쏘아붙여서 아예 말대꾸도 안 하기로 했다. 자기 스트레스를 죄 없는 나에게 푸는 것 같아서 아예 입을 다물고 무시했더니 이제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랬더니 엄마는 사춘기가 온 줄 알고 내 방문은 노크를 꼭 하신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맘대로 쓸 수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베갯속에 잽싸게 감추면 되었다. 게임을 안 하고 아프리카 TV를 볼 때는 문을 열어 두어도 엄마가 잔소리를 안 하셨다. 아빠는 무슨 말인가를 하시려고 했는데 엄마가 소곤거리면서 혼자 무서워 그러니 라디오 틀어놓은 것처럼 생각해야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엄마도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다고 하시면서 대신 아빠에게 변명을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베개 왼쪽에 폰을 놓고 매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다가 가끔은 아침에 방송이 꺼졌는데도 계속 방송이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DJ형이 드립 치는 게 재밌어서 계속 들었는데 중독이 되었나?  그 후에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이 방송을 들었더니 이제 환청인가 싶었다. 폰의 소리를 좀 줄여 볼까 하다가 내버려 두었다. 소리를 줄이니까 영 안 들렸다. 엄마는 조금씩 잔소리가 심해지셨다. 잘 때는 끄고 자야 되지 않냐고 가끔 엄마가 들어와서 끄고 가시는 날도 있었다. 무슨 방송이냐고 꼬치꼬치 묻기도 해서 점점 귀찮아진다. 성적이 내려가니까 자꾸 뭐든 태클을 거시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던 중 학교에서 건강검진을 하고 결과를 제출하라고 해서 미루다가 병원에 갔다. 이번 주까지 안 하면 안 된다고 담임 선생님이 단단히 말씀하셔서 더 미루진 못하고 몇 가지 검사를 했다. 그런데 청력검사를 하는데, 검사실 문을 열고 나오니까 거기 간호사 누나가 나한테만 말을 거는 거다. “학생! 부모님하고 이비인후과에 한 번 가 봐. 왼쪽 귀가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꼭 가야 돼.” “에이 뭐야? 귀찮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최근에 왼쪽 귀가 잘 안 들리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냥 주로 오른쪽 귀로 들어보듯 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걱정이 되어서 집에 가서 들은 대로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처음에 무슨 소린지 당황해하시는 것 같았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슨 청력이 낮아질 일이 있냐고 하셨다. 어쨌든 오늘은 늦었으니 다음 날 바로 병원에 가 보자고 했다. 다음 날이 토요일이어서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에 아빠도 함께 갔다. 의사 선생님은 검사를 해 보시더니 ‘난청’이라고 진단하셨다. 왼쪽 귀가 정상인의 30%도 안 들린다는 거다. 엄마 아빠는 표정이 삭 변하셨다. 놀라시는 눈치였다. 의사 선생님은 언제부터 소리가 안 들렸느냐고 하고 귀에서 삐 소리가 났느냐고 물어도 보셨다. 삐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언제였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옆에 있던 엄마도 “며칠 된 거야? 몇 달 전이니?”하고 다그쳐 물으시는데 오래전 부터라고 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잘 모르겠어.”하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니 선생님은 응급치료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귀에 맞아야 한다고 하셨다. 두어 번 귀 주사를 맞고 나서 경과를 봐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무것도 말고 푹 쉬어야 하고 일찍 자야 한다고 하셨다. 청각에 문제가 생긴 지 오래되었으면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고, 이 건 응급조치일 때 가능한데 일단은 시기를 본인이 모르겠다고 하니 해 보자고 하셨다.     


아빠가 회사에 조퇴를 하고 오셔서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귀 주사를 맞았다. 엄마는 스테로이드 주사가 무슨 부작용은 없냐고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해 보더니 무슨 여드름이 몸 전체에 확 날 수도 있다고 한다. 그 게 좀 독한 주사인가 보다. “에이~~재수없어” 그나마 얼굴에서 자신 있는 곳은 피부밖에 없는데 짜증이 났다. 아무래도 폰을 잘 때 늘 머리 왼쪽에 놓고 크게 들었던 것이 문제가 된 듯한데……. 그 얘기를 했다가는 엄마한테 잔소리를 엄청 들어야 할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폰을 끄고 잘 걸 그랬다. ‘이 거 군대도 못 가는 거 아냐? 에이 못 가면 좋을지 알게 뭐야? 이러다 보청기 끼는 거 아냐?’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혀서 밤새 잠도 설쳤다. 엄마는 이제 수시로 문 두들기고 들어 와서 내 폰이 어디 있는가만 보신다. 엄마가 뭔가 다 알아본 눈치다. 이러다가 스마트폰을 아예 압수하실 수도 있어서 이젠 문소리만 나면 폰을 꺼 버린다.      


오늘은 치료가 끝나는 날이다. 의사 선생님이 아무래도 난청은 응급치료가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늦어서 증세가 호전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더 이상 치료방법은 없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귀 전문 한의원이라도 가보면 어떠냐고 소곤거리시는 것 같다. 침이 효과가 있을지 아냐고 하고 엄마는 내가 이리된 것이 최근이 아닐 거라고 하고, 그동안 나를 말리지 못했다고 엄마 아빠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했다. 이제 영 글렀나 보다. 귀가 다시 들리는 것은!! 갑자기 짜증이 확 오르고 눈물이 날 것 같다.      


에이~~ 별 수 없다. 잔뜩 기분이 나빠서 세수나 하고 자야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갑자기 여드름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목에도 여드름이 여러 개 돋아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혼자 거울을 쳐다보는데 엄마가 뛰어와서는 내 목과 가슴팍을 들추어 보더니 깜짝 놀라신다. 스테로이드 치료에 부작용이 있다더니 진짜 피부에 부작용이 생겼다고 하신다. 머리끝부터 목까지 좁쌀 같은 여드름이 돋아난다고 하더니……. 그 게 시작이 되었나 보다.  이마부터 목을 거쳐 등까지 빨간 좁쌀같은 여드름으로 덮였다. 거울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도 피부 하나는 은근 누나보다도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 귀주사인가를 맞고 나서 귀도 안 낫고 이제는 여드름 빡빡 이까지 되다니…….’ 스마트폰을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해서는 안 되었던 모양이다. 지우개가 있다면 다 지우고 싶다. ‘엄마 말대로 잘 때는 맡기고 잘 걸’ 몹시 후회가 되어서 눈물이 또 흘렀다.      


스마트폰이 진짜 무서워졌다. 전자파가 어쩌고 하면서 학교에서 사이버 중독 예방교육은 받았지만 정신적인 피해인 줄 알았지. 진짜 몸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이 걸 가까이 두고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길 것 같다. 남은 귀까지 잘 못 될까 봐 무서워 이어폰도 집어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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