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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느 Feb 19. 2021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아로마 램프 하나도 쓸 줄 모르면서 아는 척은?


미러클 모닝을 날마다 실천하는 부지런한 SNS 절친이 있다. 그녀의 사진 인증에서 이 깜찍한 아이를 발견하고는 반해버렸다. 아로마 오일 램프였다. 요기에 불을 켜고 아로마향을 떨어뜨린 다음 아침의 모닝 루틴을 시작하는데 너무 좋다고 한다.

<반디 숨님의 미러클 모닝>


아로마 오일이라면 마사지샵에서 한 두 번 느껴 본 적이 있는데 그 산뜻한 향이 실내에 퍼지면 심신의 긴장이 풀리면서 아스라한 향을 따라서 기분 좋게 호흡을 내려놓을 수 있다. 집에서도 그런 걸 할 수 있겠다!


신이 나서 얼른 검색을 시작했고 비슷한 모양의 아로마 램프를 주문했다. 이 램프를 켜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에 신이 나서 금방 이 아이를 만나보려고 쿠팡 로켓 배송을 눌렀다. 다음 날 유칼립투스와 라벤더 오일이 도착했다. 혹시 향이 안 맞을까 조그만 아이들을 데려 왔다. 몸체가 안 오길래 며칠 기다리긴 했지만 며칠 후에  딸아이의 택배 꾸러미에서 찾아왔다. 딸과 내가 경쟁하듯 택배 주문을 하는 통에 이렇게 섞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대하던 택배 꾸러미를 열어보니 하얀 도자기 같은 뚫린 램프 스탠드가 보이고 도자기로 만든 손잡이 있는 작은 그릇이 딸려 있었다. 달리 설명서가 없기에 사용법을 카톡 채팅창에서 이웃에게 물어보았다가 금방 내 눈썰미로 알아냈다고 답을 보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데려오는 줄도 몰랐던 그녀도 잘 쓰고 있겠거니 했을 거다.




우리집으로 온 같은 모양의 아로마 램프는 이런 모양으로 설치가 되었다.  막상 써 보니 생각보다 사용이 너무 불편했다. 바닥이 오목해서 계속 양초는 좌우 옆으로 미끄러졌고 다 타고 난 양초를 손으로 옮기다가 '엇! 뜨거워'를 연발했다. 조금만 흔들려도 양초는 또르르 옆으로 굴러가서 촛농을 흘려서 이미 램프 안 바닥에도 군데군데 파라핀이 눌어붙었다. 그보다 더 가관인 것은 초가 다 타고나면 꺼내야 하는데 맨 손으로 다 타고 난 뜨거운 조그만 초를 옮기다가 옆으로 구르면 그 녹은 파라핀 물은 금방 탁자에 와르르 쏟아져서 닦기 어려운 파라핀으로 굳어 버리곤 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이번엔 또 무슨 이상한 아이를 데려왔나 의심의 눈길로 보던 남편이 참견을 시작했다. "이건 뭐야? 또 뭐 쓸데없는 걸 사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그래?"

"아냐? 그분은 불편하다는 말씀 없이 잘 켜고 있던데 내가 서툴러서 그래."

파라핀 용액이 거실 탁자에 떨어지자 거실 탁자의 절반 지분을 가진 남편은 불평을 했다. 성가시고 냄새도 이상한 데다  옆에서 뭘 쏟고 그러니 그 탁자를 쓰는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필경 불이나 낼지 모르는 위험천만 잡동사니로 보였을 테지. 뭐라고 하면 "이런 것도 내 마음대로 못 사!"라고 볼 멘 소리를 할 게 뻔했을테고.

급기야 나는 이 아이를 데리고 안방 내 책상으로 피신을 했다. 언젠가 이 아이에게 익숙해지리라 나를 달래면서.



오늘 아침에는 내 아로마 램프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슬며시 이웃님에게 불편함을 흘려보았다.


"이거 너무 서툴러서 끙끙~ 캔들이 미끄러지고 불 붙이기가 힘듦"


"왜 그렇죠? 제껀 쉬운데. 어무나! 언니 꺼엔 손잡이 그릇이 없다여? "요런 거 거기 넣어 캔들 안에 넣음 쉬운데."


하고 이 사진을 보냈다.



어무나! 내가 위에 올린 게 왜 양초 받침대가 되어 있나?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게 무슨 일이지??


"아~~ 있어요. 거기에 물 넣고 오일 떨어뜨림. 할 줄 모르는 듯~ 아! 그럼 물과 오일은 어디에 넣나요?"


"아고! 거긴 초 넣는 곳!  물은 맨 위에다 넣어요. 옴팍한 곳"

"아 !여기 위에 그릇이 또 있군요."


"거기에 오일 떨어뜨리고~~설명서가 없었나 봐요. ㅋ~~ 언니 덕에 웃었다^^"


"이거 물 넣는 그릇도 세트인가요? 저는 없던데."



마침 남편이 깨어서 왔다 갔다 하길래 그녀의 아로마 램프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건 일체인데?

"아냐. 여기 홈 봐. 같은 색깔로 하나 얹었잖아. 이건 별도 구매였나?"

내가 완강하게 주장하자 남편은

"그럼 당신이 모르고 버린 거 아냐? 아님 잘못 왔던지?"

"그럴 리 없는데....."


박스는 이미 어제 분리수거해서 다 버렸고 분리수거를 대충 하면 담당자인 남편에게 혼나기 때문에 손에 짚이는 건 다 훑어보는데 안 왔다는 건 말이 안 될 듯싶다. 구멍답게 포기하기로 했다. 야무지게 확인 못 해서 몸이 고생한다는 남편의 핀잔을 듣기 싫어서 그녀의 램프 위에 올려진 듯한 그런 모양의 그릇을 하나 찾아왔다. 마침 간장종지로 쓰는 똑같은 색깔의 아이가 우리 집에도 있었다.


"뭐. 이럼 됐지 뭐."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내심 나의 기지를 칭찬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이거 물 넣는 그릇도 세트인가요?" 하는 내 말에 뭔가 이상을 확실히 느낀 그녀는 급기야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그릇이 아니라~~~ 언니 꺼 함 뒤집어서 사진 찍어줘 보셔요"


아!!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그녀의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난 나는 초를 꺼내고 램프를 뒤집어 보았다.

아뿔싸!

아유 세상에 완전 망신!

밑바닥이라고 믿었던 그곳에 물을 넣을 수 있는 홈이 파여 있었던 것이다. 누가 봐도 여기에 뭘 담으라고 되어 있건만 한 번 바닥으로 보니 고려청자 도자기처럼 바닥에 받침을 한 용기로 보였던 것이다.



이제야 아로마 램프는 자리를 찾았다.

바닥이 아니고 천정을 바닥으로 놓고서 볼록 나온 바닥(사실은 오목하게 파인 용기)에 아슬하게 양초를 올려놓고 전전긍긍했다니! 이렇게 불안정한 바닥에 손으로 이 뜨거운 램프를 어떻게 옮기라고 이렇게 설계했지?

끝없이 오해를 하면서 내 근거 없는 착각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 볼 생각을 못했다니!

이 제품을 구입하고 어느 블로그에서 사진을 보니 손잡이 있는 그릇이 위에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 세트를 확인시켜 주는 사진이었던 모양이다. 그 걸 사용하는 모습이라고 착각을 했으니~~




이제 너무나 평평한 바닥에 손잡이 안에 편안하게 램프가 자리 잡고 있는데 한 몸이라 너무나 편안한 용기 안에 찰랑거리는 물에서 김이 조금씩 오르면 아로마향이 제대로 실내에 퍼진다. 이제 보니 요모조모 아이디어가 멋진 제품이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디자인에 넣기 좋게 한쪽을 튀어주고 위에는 오목한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서 용기가 필요 없게끔 만들지 않았나!


"당신은 도대체 내 말을 귀담아듣질 않아!"

"그러는 당신도 뭐 나 못지않아!"

의기양양해진 남편은 일체라고 주장하던 자기 말을 안 믿고 또 그릇을 하나 찾아와서 기어이 올려놓던 나의 바보스러움을 마음껏 비웃어 주었다. 끝까지 기죽지 않으려고 나도 한 마디 해 주었건만 사실 부끄러움은 내 몫이다.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판단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봐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잘 관찰했어야 했다. 한 번 믿으면 계속 내가 옳다고 끝까지 주장하고 보는 것! 이런 게 딸아이가 말하는 꼰대 기질인가? 누군가 나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는 먼저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 그 사람도 나처럼 이 지구촌에서 살아온 내공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나의 허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너무 잘 알면서도 착각의 늪에 빠지면 확증이 나올 때까지는 내 주장에 갇혀 살기 마련이다. 나처럼 이렇게 우기는 사람을 만나면 그럴 땐 길게 말씨름할 필요가 없다. 조용히 상대방의 말을 들어 본 후에 그 착각의 높에서 구해 줄 확증을 보여 주면 된다. 한 마디만!


 "그 거 뒤집어 보여 주실래요?"


사람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다. 똑같은 사진을 보아도 나처럼 그 아로마램프 사진의 감성에 취해서 아로마향이 퍼지는 실내를 상상하며 그 램프가 어떤 방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눈에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내 관심사는 이 아로마향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와 언제 이 아로마향을 켜면 좋을까, 이 램프를 어디에 두고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인 것이다. 아로마램프 사용법은? 그런 건 도착하면 그때부터~~ 총기가 통할 때도 꽤 있으나 요즘은 아닐 때가 더 많아진다. 그럴 때는 내 느낌대로 써 보다가 운이 나쁘면 이렇게 헤매다가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웃을 거리를 준 다음에 잠시 부끄러우면 된다.


반면 이런 물건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건만 아내가 들이미니 할 수 없이 봐주어야 하는 남편은 이 물건은 뭐하는 물건인지 형태에서 기능이 먼저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복잡해 보이는 물건은 남편에게 밀어놓게 된다. 끙끙거리면서 부속품을 뜯어보느라 머리가 아플 때 남편은 말없이 주물럭거려서 제 자리를 잘 찾아준다. 그나마 달라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살게 되어서 이만큼이나 사는 줄 알아야 한다고 감사하게 된다.


집콕이지만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것이 인간세상!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내 부족함을 깨치고
넘치는 구멍을 막으면서
오늘도 멀쩡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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